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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28. 2023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②

꿈의 학교 하랑 EP 4

“아저씨. 생각보다 겁이 매우 많으시네요?”



“아 글쎄… 놀란적 없단 말일세. 나 학교 경비아저씨야. 귀신도 때려잡는다고!”



기묘했던 대치사항이 있고 몇 분 후, 숀과 여성은 미술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숀은 교무실에서 가져온 현미녹차 티백으로 우려낸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그의 계속되는 발 뺌에 그녀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숀이 아까 했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으어어 살려주세요오~ 꿈이라면 깨라아아~”



“아 거 젊은 아가씨가 나이 든 아저씨나 놀려먹고. 내가 어.. 언제 그랬나.”   

숀이 투박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딴청을 피웁니다. 



“사.. 살려주세요 귀신님. 저 생긴 거보다 맛이 없단 말이에 요 오.. 아흑”

숀이 오리발을 내밀수록 더더욱 집요하게 놀려대는 이 아가씨.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다네!? 그리고 자네! 이거 무단침입이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놀림에 숀은 조금 치사하지만 무단침입을 들먹이며 아가씨의 놀림을 제지했습니다. 잠시 호호 웃어 보이던 아가씨는 멋들어지게 앞에 놓여있는 차를 들이켰습니다.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미술실. 조명 삼아 책상 위에 올려둔 손전등, 아까는 그렇게 시끄럽던 천둥은 이내 그쳤고, 그 대신 조용한 밤의 빗소리가 부슬거리며 미술실 창문을 두드립니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묘한 그리움을 담은 미소가 입가에 맺혀 반짝입니다. 



“자네도 하랑의 졸업생인가?”



익숙한 패턴에 이제는 추리 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게 된 숀은 제법 날카로운(본인이 생각하기에만) 눈빛과 기세로 자신의 추리에 대한 답을 아가씨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녀가 보기에는 천상 배고픈 곰의 얼굴이었지만 아쉬운 건 자신이었기에, 목젖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졸업한 지 한~참됐지만 하랑의 졸업생이에요. 나름 미술실의 에이스 였다니까요?”    

그녀는 미술실 뒤편에 걸려 있던 그림을 가리켰습니다. 



제 그림이라고요. 예쁘죠?

출처: 합스부르크전 유화


강렬한 유화로 그려진 꽃병이 그림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푸른색 장미와 붉은빛을 머금은 난초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얀 은방울 꽃에 맺힌 물방울은 금방이라도 생기를 머금고 떨어질 것만 같았고, 꽃의 색감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누가 봐도 잘 그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숀은 감탄을 하며 이 장난기 많은 아가씨를 조금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오.. 아가씨 화가인가? 항상 순찰을 돌면서 궁금했다네. 어떤 학생의 손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나왔는지 볼 때마다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어.”

숀의 계속되는 칭찬에 그녀는 볼을 살짝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에이.. 그럼 뭐해요. 이 그림, 결국 2등이라 지역 대회에는 나가보지도 못했는걸요.”

웃고 있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잠깐 사이에 사라진 우울한 미소를 숀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학교로 발걸음을 청하는 불청객들은 모두 하나 같이 그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결국 마음의 뚜껑이 달그락 거리며 내용물이 흘러넘치게 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이곳을 찾아 그들만의 이야기를 토해냅니다.



눈앞의 아가씨도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그는 가만히 녹차를 홀짝이며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때로는 어설픈 한마디 말 보다 그저 고요한 침묵이 위로가 될 때도 있으니까요.



달그락 



시원한 델몬뜨 유리병에 담긴 현미 녹차가 얼음과 부딪혀 소리를 냅니다. 유리병에 맺힌 물방울에는 멍하니 물방울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현실에서의 앳된 소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 투박한 곰상의 아저씨의 얼굴이 오늘따라 조금 더 낯설어 보였습니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그의 얼굴이 마치 누군가의 가면 같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만약 그때 1등을 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비가 내리는 , 고요한 미술실에 몰아치던 정적의 파도는 그녀의 말 한마디로 갑작스레 부스러졌고, 이내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녹아내렸습니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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