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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30. 2023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③

꿈의 학교 하랑 EP 4

아가씨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고 넋두리를 하듯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배려심도 많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곧잘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낙서처럼 슥슥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주기 시작하였던 재능의 싹이 우연히 미술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것은 그녀의 학창 시절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딱히 그림을 배우지 않았지만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녀는 곧 잘 아름다운 그림을 묘사해 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걸 그리는 게 마냥 즐거웠고 평범하다고 생각되었던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는 보석을 갈고닦는 일은 생각보다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교내 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미술실기 시간에는 항상 그녀의 그림이 맨 앞에 걸려 있었습니다. 



“인기도 많았어요.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몇 명이나 와서 편지를 주고 가던지~”



“자네는 입이 좀 무거울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잘 나가다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그녀의 말을 칼같이 자르며 숀은 이야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한참 동안 자신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일대기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숀은 궁금해졌습니다.)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평생의 라이벌이 등장한 거 있죠.”

빠밤 ~ 하는 의성어를 입으로 내며 그녀는 과장스럽게 손을 폈습니다. 양쪽으로 쭉 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 끝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2학년이 되고 갑작스레 전학을 온 전학생. 전학생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초인이었습니다.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부면 공부, 하얀 눈처럼 맑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외모는 sns에서만 보던 유명 셀럽 같았습니다. 마치 그 자리가 그녀를 위해 준비되어 있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교회장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엄친딸 같은 면모를 지닌 그녀는 곧 미술에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미술 선생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한 붓터치와 그녀만의 독특한 기법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고, 그녀는 곧 미술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전학생은 그녀와 다르게 조용하고 청순한 성격이었으나 (아 그렇다고 제가  청순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요. 상대적으로요! 그녀는 주섬주섬 뒤늦게 사족을 덧붙였습니다.) 자신과도 대화가 잘 통하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특히나 같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경쟁심에 불타올라 서로 밤늦게까지 미술실에 남아 고군분투를 하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재능이란 보석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닦았습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 이번 전국 미술대회는… 전교회장이 나가기로 했다! 모두 박수”



“와.. 쟤는 못하는 게 뭐냐. 근데 솔직히 쟤만큼 잘 그리는 애는 없지”



그러나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아가씨의 친구들이 아쉽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는 소리도 귓가에 맺혀 윙윙거릴 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그토록 재미있던 그림도 붓에 돌을 매단 듯 더 이상 잡을 힘이 생기지 않았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전학생은 친구가 아닌, 넘지 못할 큰 산처럼 보였습니다. 



‘쟤는 왜.. 나한테 아무 할 이야기도 없는 걸까.’



우린 친구가 아니었을까?



담담하게 전국 미술대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전학생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다 못해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걸까. 머릿속에 수백 번의 질문과 돌아오지 않는 대답이 녹지 않은 미숫가루처럼 덩어리 져 둥둥 떠다녔습니다. 



눈이 마주친 전학생은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그 시선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였고, 그렇기에 아가씨는 그 시선이 너무나도 거북했습니다.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한 건데 나는 왜 그녀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듣길 원했을까? 저 애가 잘못한 게 대체 뭔데? 



눈을 피했습니다. 한순간이었지만 미안함을 갈구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역겨웠고 그럼에도 이런 현실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그림이, 재능이란 벽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2등을 하였으나 그녀는 상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미술실 밖을 뛰쳐나갔습니다. 뒤에서 따라붙는 수근수근거리는 목소리들, 그리고 뒤를 돌기전 자신을 향해 뻗어있던 친구의 얇은 손이 마치 한여름밤의 꿈속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가씨는, 자신을 그저 2등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이 싫었고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던 친구의 눈빛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자신의 재능이, 재능 안에 감춰져 있던 비겁한 자신이 몸서리치게 싫어졌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았어요. 제 그림은 아무도 찾지 않았거든요.”

정말, 의지박약이에요. 우하하하~ 그녀는 비참함이 섞인 떨림을 애써 숨기려는 듯 과장스럽게 턱까지 젖히며 전보다 더 크게 웃어 보였습니다. 



숀은 말없이 그녀의 잔에 녹차를 따라 주었습니다. 그녀는 감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녹차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이내, 차가운 냉녹차에 머리가 찡한 듯 얼굴을 능청스레 찡그리며 작은 손으로 머리를 통통 두드렸습니다. 



“아우.. 머리 아파. 아저씨 제 이야기 너무 노잼이죠. 여기서 마무리…”



“아니. 난 끝까지 들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잠이 싸악 달아났는걸?” 



은근슬쩍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던 아가씨의 말을 자르며, 숀은 이야기를 마저 할 것을 재촉하였습니다. 엔딩이 없는 소설의 이야기는 숀도, 현실의 소년도 정말 싫어하는 장르였습니다. 독자도 그런 감정을 느낄 정돈데 그 결말 없는 소설의 주인공의 기분은 오죽할지. 그는 아가씨에게 자신이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듯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며 왼쪽눈을 한 번. 오른쪽 눈을 한 번 멋들어진 윙크를 날려준 후, 마지막으로 씨익 웃어 보였습니다. 



우와… 숀. 왕부담스러운데요. 아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작게 웃어 보이며 묶어두었던 이야기보따리의 끈을 마저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미술실에는 숀의 우비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뚝뚝 바닥을 적시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옵니다. 엉덩이가 축축해졌지만 숀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눈앞의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날개가 꺾인 새는 나는 법을 잊고 살게 되듯,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이후부터 다시 평범한 학교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붓을 잡게 되면 그날 느꼈던 강한 상실감이 떠오를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아가씨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입상했던 그림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 끝에서 피어났던 아름다운 그림들은 미술실에 쌓여 있던 먼지의 바닷속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이후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어요. 대학을 나오고 지금은 출판사에 들어가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답니다.”



지난달에 대리로 승진했다고요~. 그녀는 연봉이 얼마나 뛰었는지를 자랑하며 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소탈하고 장난기 많은 미소로 방긋 웃어 보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려 미술실 뒤편에 걸려 있던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미술실에서 숀이 아가씨를 만날 때부터 쭉 보고 있었던, 그녀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그렸던 마지막 그림이에요. ‘새 출발’. 그림 제목이랑은 결국 반대가 되었지만…”



프리지아의 꽃말처럼, 부드럽지만 강인하게 출발을 다짐하는 모습을 표현했다며 그녀는 미술관의 도슨트처럼 한참 동안 그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부드러운 소재인 꽃과 얇은 붓을 사용했지만 강한 색감의 유화를 이용하여 블라블라… 전문지식이 없는 숀은 절반도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그림을 설명하는 그녀의 표정은 숨길 수 없는 기쁜 미소를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때 2등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졌을까요?”

한참을 그림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하던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습니다.



-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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