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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전화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

자주 마주하는 UX 오해 유형

by 김석민

예전에 어머니께서 병원 홈페이지로 진료 예약을 시도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과정을 지켜봤다.

버튼은 있었지만 버튼처럼 보이지 않았고, 예시로 입력된 이름을 보고는 당황하고 계셨다.
무언가 잘못 건드릴까 봐 걱정하며, 결국 전화를 다시 드셨다.

당시는 단순한 해프닝처럼 여겨졌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디지털 격차의 축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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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전화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외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잃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시니어 사용자는 단순히 속도가 느린 사용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디지털 언어가 다르게 쓰이고, 다르게 해석되는 사용자입니다.

이들의 어려움은 기술 자체보다도, 기술이 내포한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사람은 스크롤을 ‘당연히’ 할 것이다.

버튼은 버튼처럼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시는 예시라고 인지할 것이다.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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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니어 사용자에게 이런 전제는 때때로 오해를 낳는 기제로 작동합니다.
그 오해는 단절을 만들고, 그 단절은 결국 ‘전화’로 돌아가게 합니다.


UX는 ‘이탈의 이유’를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다수의 디지털 제품은 기존 사용자, 자주 사용하는 사용자, 피드백을 남기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최적화됩니다.
하지만 문제를 말하지 못하는 사용자는 애초에 데이터로 잡히지 않습니다.

시니어 사용자의 이탈은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감지되지 않는 해석의 실패에서 발생합니다.

눈앞에 있는 버튼이 클릭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애니메이션을 따라야 할 절차로 오해했고,

스크롤을 하지 않아 중요한 내용을 보지 못했고,

질문형 문장을 ‘이미 실행된 일’로 착각했습니다.


이런 오해는 '느린 학습'의 문제가 아니라, UX 언어 체계가 일부 사용자에겐 낯선 언어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처음인 순간을 위한 설계

우리는 흔히 ‘시니어 UX’ 혹은 ‘접근성’을 특수한 사용자 경험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발상의 오류입니다.

시니어 사용자를 고려한 UX는 모든 사용자에게 더 명확하고, 더 단순하며, 더 인간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버튼이 명확히 보이면, 모두가 실수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시가 구분되면, 초보 사용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기능을 보완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니어만을 위한 UX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UX입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설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UX의 본질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브랜드가 놓치기 쉬운 시니어 UX

시니어 사용자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입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고령층’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충성도 높은 사용자군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불편한 UX는 단지 사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이탈, 브랜드 경험의 훼손으로 이어집니다.


“복잡해서 못 쓰겠어요”는, “이 브랜드는 나를 고려하지 않았어요”로 전환됩니다.


UX 디자이너에게도, 브랜드 기획자에게도 시니어 사용자 경험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닙니다.


UX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언어입니다

좋은 UX는 기술적 우월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않게 만드는 설계, 사용자가 멈추지 않도록 돕는 언어, 처음 만나는 사람도 떠나지 않게 만드는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그날 어머니가 겪은 조용한 ‘포기’는 수많은 시니어 사용자들이 매일 반복하는,

말 없는 이탈의 패턴일 수 있습니다. UX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왜 멈췄을까?

그리고 다시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떠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UX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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