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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 : 진짜 브랜딩의 시작

by 김석민

회의실에서 자주 듣는 답변들


"저희 타겟은 25-35세 여성이고요, 대졸 이상에 연소득 4000만원 정도 되는 분들이에요. 건강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으시고..."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듣는 말이다. 클라이언트들은 자신 있게 답한다. 시장조사도 했고, 페르소나도 만들어봤으니까.


그런데 다음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당황한다. "그분들이 새벽 3시에 잠못들고 생각하는 게 뭘까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


15년간 브랜딩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성공하는 브랜드와 그렇지 않은 브랜드의 차이는 타겟 설정의 정확성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차이는 '이해의 깊이'에 있다.


코카콜라가 "Share a Coke" 캠페인으로 전 세계를 휩쓸 수 있었던 이유를 보자. 그들이 파악한 건 단순히 "젊은 세대"가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의 특별함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었다. 콜라병에 "민수"라고 적혀 있으면, 그 순간 평범한 콜라가 '나만의 콜라'가 된다는 심리를 꿰뚫어본 거다.

share-a-coke-history-02.jpg https://www.coca-cola.com/kr/ko/offerings/brand-story/share-a-coke-history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최근 화장품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는 "20대 후반 직장 여성"이 타겟이라고 했다. 구매력도 있고, 뷰티에 관심도 많고,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인터뷰해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화장품 살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가격이에요. 좋다는 건 알겠는데, 이게 정말 내 피부에 맞을지 확신이 안 서니까요."


이런 진짜 속마음들은 어떤 시장조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런 마음이 구매 결정을 좌우한다.


도브가 "Real Beauty" 캠페인으로 20여년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이 읽어낸 건 "화장품을 사고 싶어하는 여성"이 아니라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여성들의 마음"이었다. "자신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여성은 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그 증거다.


dove-real-beauty-campaign.jpg https://thebrandhopper.com/2024/01/06/case-study-dove-real-beauty-brand-campaign/


질문을 바꿔야 답이 보인다


브랜딩 미팅에서 이제는 다른 질문들을 던진다.


"고객들이 여러분 제품을 사기 전에 뭘 망설일까요?" "그분들이 진짜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가 뭘까요?" "경쟁사 제품 대신 여러분을 선택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언제일까요?"


올웨이즈의 "#LikeAGirl"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8,5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파악한 건 "생리대가 필요한 여성"이 아니라 "사춘기 소녀들이 느끼는 자존감 하락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분노"였다. "여자아이처럼"이라는 말이 왜 모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거다.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


하기스의 2012년 "아빠들은 바보인가요?" 캠페인은 정반대의 사례다. 아빠들도 기저귀 갈이에 능숙하다는 점을 보이려 했지만, 오히려 아버지들을 무능하고 서툰 존재로 묘사했다.


이 광고의 문제는 현대 아빠들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육아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을 좋은 부모로 여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하기스는 편견에 기대어 아빠들을 일반화했고, 결국 타겟 소비자의 감정을 거스르며 광고를 철회하고 사과해야 했다.


성별 고정관념을 이용한 마케팅의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실패 사례로, 고객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브랜드가 사랑받는 이유


성공하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고객의 표면적 니즈가 아니라 깊숙한 감정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코카콜라: 소속감과 특별함에 대한 갈망

도브: 자존감과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

올웨이즈: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분노와 당당함에 대한 욕구

이들은 모두 '사람'을 봤다.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


브랜딩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는 일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표면적인 니즈가 아니라 깊숙한 곳의 진짜 필요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을. 심지어 본인도 모르고 있던 갈망까지.


이건 데이터 분석만으론 불가능하다. 직접 만나서 대화해야 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해야 하고, 때로는 그들이 되어봐야 한다.


진짜 브랜딩의 시작


클라이언트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브랜딩은 타겟팅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고객을 표적으로 보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그 한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려는 진심이 있을 때, 브랜드는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성공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증명했듯이, 진짜 마케팅은 세분화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심에서 시작한다.


그때 만들어지는 메시지는 광고가 아니라 대화가 되고, 브랜드는 상품이 아니라 동반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브랜드가 결국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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