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 만들어주는 시대, 디자이너는 뭘 해야 할까?
2022년, 나는 Midjourney의 첫 베타 버전을 열어보며 “이건 그냥 시각적 실험이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뻔한 스타일, 기괴한 손가락, 균형 없는 구도.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매주 회의에서 ‘AI 시안’을 보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후배 디자이너가, 때로는 내 손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검토하고, 선택하고, 수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 내가 기획자라는 이유 외에 이 자리에 앉아야 할 명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위협감의 문제가 아니다.
역할에 대한 재정의, 기술을 이해한 사람만이 기술과 일할 수 있다는 압박감, 그리고 디자이너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으로 이어진다.
툴은 진화했고, 우리는 단지 그 툴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툴과 함께 작업 결과를 겨루는 시대에 들어섰다.
실무는 먼저 변했다.
디자인팀은 이제 Midjourney로 키비주얼을 뽑고, 기획자는 ChatGPT로 카피의 초안을 받으며,
UX디자이너는 사용자 인터뷰를 AI 봇에게 시킨다.
나는 그 모든 걸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며 자주 되묻는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결정한 건 무엇이지?” “방향을 제시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의 흐름을 만들었다는 뜻일까?”
도구는 늘 디자이너의 손끝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AI는 손끝이 아니다.
의사결정 그 자체에 개입하고 있다. 색상과 구조, 카피와 구성, 그리고 심지어 기획의 의도까지 AI는 추론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이건 어때요?”라고 제안하는 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AI가 경쟁자인 이유는 그가 결과물을 만드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이제 더 이상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말이 아니라 구조와 기획, 의도를 관통한 판단력으로 증명돼야 한다.
한 가지 사례. 2024년 여름,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의 시즌 프로모션을 준비하며 디자인팀에 Midjourney를 도입했다. “구름, 햇살, 파라다이스, 신비”라는 키워드만으로 수십 개의 이미지 시안이 생성됐고, 그중 두 장이 최종 후보까지 올라갔다. 회의실에서 논의된 건 디자인의 ‘퀄리티’가 아니라 이 이미지가 어떤 브랜드 정서를 유도하는가였다. 그 순간, 디자이너는 생성자가 아니라 큐레이터이자 설명자가 되었다. 우리는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결과물을 선택했는가. 그 선택이 브랜드의 톤과 결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이제 그런 설명이 없는 디자이너는 역할을 잃는다.
이 변화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다. AI는 기술적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장의 언어를 배우고,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하며, 브랜드의 일관성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문맥을 읽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도구 앞에서 디자이너는 “그래도 인간이 낫다”는 감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정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이 무엇인지 증명해 보여야 한다.
브랜드 디자인에서, AI는 수백 장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미지에 “왜 이 브랜드는 이렇게 보여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담고 가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진 배경과 흐름을 누가 설계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말을 단순히 시각화의 영역에서 꺼내와야 한다.
디자인은 기술의 속도와 양을 견디면서 그 안에서 어떤 가치와 기준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디자이너는 점점 더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결정의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툴이 하지 못하는 철학적 해석과 관계적 감각을 동반해야 한다.
나는 이제, 디자인을 한다는 말 대신 ‘의도를 설계한다’는 말을 더 자주 쓴다.
AI는 이미 우리보다 예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게 필요한지를 묻는 일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도구가 되는가, 경쟁자가 되는가는 우리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