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사용자는 왜 같은 페이지에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에 작지 않은 긴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비주얼도 잘 나왔고, 기능도 원하는 대로 구현했지만, 클라이언트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이거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 질문은 종종 기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대의 방향이 어긋난 데서 오는 충돌이죠.
PM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기능을 상세히 정리해주셨는데요...”
디자이너는 말합니다.
“그 문서대로 했는데,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셔서요...”
클라이언트는 말합니다.
“디자인은 예쁜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안 담긴 것 같아요.”
이 대화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풍경입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도, 디자인도, 기획서도 아닌 ‘공유된 기대’였습니다.
‘기대’는 보통 말로 다 전달되지 않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우선순위, 암묵적인 평가 기준, 조직 내부의 정치적 맥락까지
결정은 공유돼도, 기대는 공유되지 않은 채 시작되곤 하죠.
사용자 리서치처럼, 내부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에도
‘사건’이 아니라 ‘과정’을 봐야 실마리가 보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기에
디자인이 나오기 전부터의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복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회의에서 말한 "우리는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기획서를 만들면서 줄였던 문장들
디자인 초안에 대한 첫 피드백에서 나온 단어들
그 과정을 되짚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보였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본인의 기대를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좋은 협업을 위해 절제했고, 양보했고, 기대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결과물이 나오자, 감춰둔 기대가 기준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든 것’이라 단정지었습니다.
이건 내부 협업의 이야기이지만,
사용자의 경험 흐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합니다.
사용자는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데,
브랜드는 ‘우리의 철학을 먼저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는 ‘비교할 수 있게 보여주길’ 기대하는데,
브랜드는 ‘하나씩 스토리텔링해주길’ 기대합니다.
그 어긋남은 곧 이탈이 되고, 클레임이 되고, 기억되지 않는 브랜드가 됩니다.
사용자 테스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피드백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이건 나한테 맞는 구조가 아닌 것 같아요.”
“딱히 불편한 건 없는데, 불친절하다고 느껴졌어요.”
디자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경험의 흐름이 사용자의 기대와 어긋났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입니다.
그럼 기대는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모든 이해관계자나 사용자에게
“기대를 말해주세요”라고 한다고 해결되진 않습니다.
대부분은 본인의 기대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말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공유’보다 한 단계 앞선 ‘공명’의 전략을 씁니다.
공명이란, 말로 된 기대가 아니라 작은 프로토타입이나 흐름을 먼저 보여주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초기에 시안이 아니라 ‘사용자 흐름’을 공유해본다.
브랜드 핵심 문장을 여러 버전으로 던져 반응을 본다.
사용자에게 A/B 구조를 보여주고, 기대에 맞는 반응이 나오는지를 본다.
이 과정에서 진짜 기대는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반응 속에서 드러납니다.
디자인은 오해받기 쉬운 작업입니다.
‘잘 해놔도 아쉽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잘 모르겠는데 바꿔주세요’라는 말에 흔들리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 있습니다.
“모든 갈등은 기대하는 결과를 공유하지 않아서 생긴다.”
기대가 어긋나면, 경험은 갈등이 됩니다.
하지만 기대가 맞춰지면, 경험은 신뢰가 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쁜 결과보다 예상된 흐름 속에서, 기대를 만족시키는 경험을 설계합니다.
그게 디자인이든, 브랜드 전략이든, 사용자 리서치든.
Insight Note
말하지 않은 기대는 결국 판단 기준이 된다
디자인 갈등은 기능보다 감정의 문제일 수 있다
경험은 ‘정보’보다 ‘예상된 흐름’을 만족시킬 때 작동한다
내부 협업도 사용자 경험처럼, 흐름과 반응으로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