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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 속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법

버려지는 시간을 모아 나만의 시간으로

by 임지혜

일주일간의 출장을 앞둔 남편이 말했다.

“가서 읽을 만한 책 두 권만 챙겨줘.”

책장을 훑던 내 손이 멈췄다. 몇 해 전, 둘째를 낳고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내 시간을 붙잡아준 책이었다. 그때 나에게 위로와 자극을 함께 주었던 《메이크 타임》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바쁘다, 시간이 없어”를 입에 달고 사는 남편에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말하는 건 단순했다. 시간을 ‘절약’ 하지 말고, ‘의미 있게 만들어 쓰라’는 것. 그 짧은 문장이, 매일 시간을 쫓기며 허덕이던 그 시절의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나는 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오늘·내일·다음 달·내년까지, 하고 싶은 일은 끝없이 쌓여 있고 하루는 늘 짧았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 짧음은 절망으로 다가왔다. 온종일 아이만 따라다니다 보면 먹고 자고 씻는 기본조차 제대로 해내기 어려웠다. 당장 오늘을 버티기도 힘든데 내일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럴수록 더 공부하고 싶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밤이 오면 육아서 한 장이라도 읽겠다고, 책 한 줄이라도 적어두겠다고 잠을 줄여가며 버텼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달랐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은 늘 하루를 꾸역꾸역 견뎌낼 뿐이었다.


큰아이 초등 입학 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마치면 어느새 점심. 오후 세 시면 첫째가 돌아오고, 숙제를 챙겨주고, 둘째를 데리러 가고, 저녁을 준비하고, 먹이고, 씻기고, 틈틈이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다 보면 어느새 밤 아홉 시가 됐다. 가끔은 둘째를 재우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잠깐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면 아침. ‘아직 내 시간을 시작도 못 했는데…’ 억울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누가 시간을 훔쳐 간 것도 아닌데, 내 시간은 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대부분은 아이들이 잠들면 조심스레 거실로 나왔다. 하루의 끝, 모두가 잠든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내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미 눈꺼풀은 무겁고, 책을 펼치고 노트북을 켜려면 또다시 잠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쥐어짠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면 더 초조해지고, 내 시간은 더 절실해지곤 했다.


이런 나의 시간 감각은 부모님에게서 왔다.

아빠와 엄마는 '젊음' 하나로 늦은 나이에 만나 배 농사를 시작하셨다.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도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때는 가을 수확 한철뿐. 매달 일정한 수입이 아닌, 1년에 한 번 들어오는 수입으로 또 1년을 버텨야 했다. 그래서 두 분은 새벽이 오기 전에 과수원으로 나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말 그대로 몸으로 때웠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시간을 아끼는 법,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를 쪼개 쓰는 법을 자연스레 배웠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시간은 아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소중한 걸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걸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이크 타임》의 세세한 전략보다, 나는 나에게 맞는 몇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먼저 하루의 하이라이트를 정하기. 하루의 수많은 '해야 할' 중에서 딱 하나를 정한다. 그리고 해낸다. 그러면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성취감이 쌓인다. 나는 매일 아침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다이어리에 적는다. 때로는 글쓰기, 때로는 운동, 때로는 아이와 한 시간 동안 놀아주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중을 돕기 위해 만든 나만의 규칙도 있다. 밤 9시 이후에는 휴대폰 알람을 끄고, 갑자기 떠오른 일은 메모지에 적어둔다. ‘검색하다 다른 검색으로 새는 시간’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집중이 흐트러질 틈을 줄이면, 비로소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제일 취약한 몸 챙기기. 여유가 된다면 딱 15분 낮잠을 잔다. 작은 휴식이 하루 전체의 효율을 바꾼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마지막으로, 나는 하루를 기록한다. 아침엔 계획을 세우고, 저녁엔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다시 돌아본다. 별것 없는 하루라도, 기록해 두면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확신이 남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시간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런 습관 덕분에 하루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고치지 못한 습관이 있다. 시간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잠을 줄이고, 끼니를 대충 때운다.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소진하지 않고 살아내는 법’을 고민한다. 이제는 나를 갉아먹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싶다.


《메이크 타임》의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당신을 활기차게 만드는 일, 그 일을 위한 ‘언젠가’를 기다리지 마라. 바로 오늘 시작하라.”

그 말처럼, 나도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정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그 시간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를 버티는 대신, 만들어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버리지는 시간을 모으고 있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늘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 시간을 쓰고 싶을까 궁금해진다. 그들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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