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서 배운 믿음으로 아이를 지켜가는 일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낡은 온실을 복구하며 자신의 상처를 고쳐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책을 덮은 뒤, 오래된 한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나를 믿음과 사랑으로 감싸주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작품 속 주인공이 금이 간 유리창을 손수 고쳐가듯, 나 역시 부모님의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섬에서 태어나 자란 주인공 영두는 중학교 시절, 서울의 ‘낙원 하숙’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그곳에서 겪은 사건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성인이 된 그녀는 창경궁 대온실의 수리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으며, 마침내 오래된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영두는 시험지 답안을 미리 받아 시험을 봤다는 누명을 쓰고, 하숙집 할머니는 영두를 도우려 학교로 찾아왔다. 관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년주임은 이미 다 해결된 일이라 말했다.
“영두, 해결이 되었니?” 할머니가 물었고, 영두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내 답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을까. 내가 할머니를 믿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나는 아픈 사람이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나는 이 장면에서 한참을 멈춰 읽었다. 만약 그때, 그녀 곁에 진심으로 믿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그녀가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그녀의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 오래된 기억을 하나 불러왔다.
중학교 2학년, 과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우심방, 우심실, 좌심방, 좌심실… 다 적었지?”
나는 내용을 놓쳐 “아니요.”라 대답했다. 순간 싸늘한 목소리가 교실을 가르며 날아왔다.
“누가 대꾸했어? 아니라고 한 놈 일어나 봐.”
선생님은 싸늘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들고 있던 당구대로 내 팔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뭘 몰라? 네가 뭔데 몰라?”
그날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내 팔을 내려치는 소리만 교실에 울려 퍼졌다. 억울하고 수치심이 들었다. 그 일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다음 날, 반팔 블라우스 교복 사이로 선명한 멍이 드러났다. 엄마가 놀라 물었고, 나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른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때렸어.”
며칠 뒤, 과학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러 문제집 두 권을 던지듯 내밀었다. “공부할 때 써.”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왔다. 팔의 멍은 천천히 사라졌고, 나도 그 기억을 묻어두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정집 등기서류 문제로 예전에 그 집에 살던 아저씨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였다. 함께 서류를 살피던 아저씨가 불쑥 물었다.
“너 그거 기억나? 중학교 때 선생님께 대들어서 맞았던 거.”
순간 묻어두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제가 대들었다니요. 아니에요. 그냥 맞은 거예요.”
“그래? 난 불량하게 굴었다고 들었는데…. 아, 진짜 아니었구나.”
아저씨는 그렇게 십여 년 전의 일을 들려주었다.
그날 밤, 엄마에게 전해 듣고 내 팔의 멍을 본 아빠가 밤새 술을 드셨고, 발이 넓던 아저씨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하셨단다. 아저씨의 연락으로 교장 선생님은 그제야 사건을 확인했고, 과학선생님의 “불량한 태도였다”라는 말을 들었단다. 교장은 “그래도 너무 심하게 때렸으니 사과하라” 하셨단다.
엄마에게 물으니 그날 과학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온 게 맞다며 아빠와 나눈 대화를 전해줬다.
“수업 내내 불량한 태도를 보였는데 말대꾸까지 하다 보니…. 제가 너무 심하게 체벌했습니다.”
아빠는 단호히 말씀하셨단다.
“우리 딸은 그런 애가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애를 가르칠 분이니 이번은 조용히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한참이 지나서야 듣게 되었다. 부모님은 그날의 일을 단 한 번도 내게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내 편이 되어주셨다. 사과는 선생님에게서 받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믿음이 그 어떤 사과보다 큰 위로가 되어 마음 깊이 남아있던 그 날의 수치스러움과 억울함은 내 안에서 따뜻한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부모님의 믿음은 내 삶의 기둥이었다. 잠든 나를 바라보며 “참 잘 그린다, 우리 딸이 제일이다” 속삭이던 두런두런한 대화,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내 명함을 돌아가실 때까지 지갑 속에 간직하던 아버지, 살 곳이 없어졌을 때, 함께 짐을 옮기며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대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시던 부모님. 그런 순간들이 쌓여 절대적인 지지란 무엇인지 몸으로 배웠다. 덕분에 나는 실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넘어질 때마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 그 믿음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람은 혼자 단단해질 수 없다. 단단해지려면 누군가의 믿음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말 한마디에 무너질 때가 있고, 누군가의 평가 한 줄에 존재 전체가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 편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된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다. 비록 오늘도 “왜 이렇게 느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아직도 모르겠어?” 몇 번이고 아이를 다그치지만, 더 자주 “넌 잘하고 있어.”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사랑해.” 말을 건넨다. 내가 그랬듯 이 말들이 아이들에게 힘을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의 온실이 되고 싶다. 내 아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온실로. 그 곁에서 언제나 믿어주는 굳건한 어른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믿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건네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