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
대학교 4학년 봄, 나는 현장실습을 나갔다.
의상학과에 다니던 나는 몇 해 전 졸업한 선배가 운영하는 작은 의상실로 향했다. 공업용 재봉틀 세 대가 전부인 좁은 공간에서, 사장님과 두 명의 직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었다. 비수기에는 원단을 자르고 단추를 달며 하루를 보냈고, 오페라 같은 대규모 공연이 잡히면 군무진이 입을 옷 수백 벌을 다림질하는 게 내 주요 업무였다. 재봉틀 소음이 가득한 방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웃음도, 대화도 없었다. 오가는 말이라곤 “이건 내일까지예요”, “이것부터 해주세요” 같은 필요한 업무 지시뿐이었다. ‘사회란 이런 곳일까.’ 처음 맞닥뜨린 어른들의 세계는 낯설고, 묘하게 외로웠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될 무렵, 친구가 교수 추천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실습했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우리 이사했어. 훨씬 넓고 좋아졌어. 놀러 와. 밥 한 끼 하자.”
다음 날, 나는 조심스레 이력서를 들고 의상실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사장님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마침 오페라 의상 때문에 할 일이 많았는데 잘됐다. 바로 출근할 수 있어?”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생겼다. 수습 3개월은 월 60만 원, 이후엔 65만 원. 그 시절, 대기업 디자이너도 80만 원 남짓 받을 때였다. 적은 돈이었지만,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내 힘으로 얻은 첫 일자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초가 부족한 나는 자꾸 실수했고, 점점 단순한 일만 맡게 되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주말에도 쉴 틈이 없었다. 어느 점심시간, 사장님이 조용히 불렀다.
“어려운 작업은 아직 너한테 시키긴 좀 그래. 시킬 만한 일이 없거든. 퇴근 후에라도 재봉틀연습 좀 더 해볼래?”
그 말이 오래 귓가에 남았다. ‘시킬 만한 일이 없다’라는 문장이 자꾸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그날부터 퇴근 후 삼십 분씩 남아 재봉틀을 돌렸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출장에 밀려 연습은 금세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만한 몫을 하지 못했다. 학교 후배에게 기회를 준 사장님의 배려를 노력으로도, 실력으로도 채우지 못한 채 나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그렇게 4년의 대학 생활과 이천만 원이 넘는 학비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남은 건 ‘이 길은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씁쓸한 확신 하나.
그렇지만 다하지 못한 ‘노력’은 마음속에 오래 남아, 매번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번엔 조금 더,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렇게 나는 실패를 통해 멈추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그 후 새로 들어간 직장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조업체였다. 기숙사를 제공했고, 무엇보다 세금을 떼고도 월급이 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업무는 단순했다. 생산 실적을 엑셀에 입력하고, 합계를 내는 일. 모르는 건 옆자리 선배에게 물으면 됐다. 선배는 업무 중간중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해주며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금세 회사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평온한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모든 업무에 엑셀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상사가 새로 들어왔다.
“왜 하나하나 계산기로 더해? 엑셀 수식 써서 자동으로 계산되게 만들어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회사에서 엑셀을 처음 써봤고, 그나마 셀에 숫자를 입력하는 정도만 해봤던 터였다. 상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자꾸 새로운 지시를 했다.
“무턱대고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 다시 해.”
꾸중인지 조언인지 모를 그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방법을 모르니 야근이 이어졌다. 퇴근 후엔 엑셀 관련 책을 사서, 야근이 끝난 밤마다 한 장씩 넘기며 익혔다. 함수를 배우고, 매크로를 익히며 업무 처리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어느새 ‘엑셀 잘하는 사람’으로 불렸고, 내 퇴근 시간은 점점 빨라졌다.
그때 나는 알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자. 그리고 배우자.
버티고 익히면, 결국 답이 보인다. 그 경험은 나에게 부족함을 숨기기보다 배움을 택하는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이 댄스대회에 나갔다. 문화센터에서 함께 배우는 언니들과 참가한 대회였다. 이번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순위를 매기는 ‘진짜 대회’였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에서도 연습 좀 하자.”
“문화센터에서 다 했는데 왜 또 해?”
“혹시 틀리면 상 못 받을 수도 있잖아. 언니들한테 피해 주면 안 되지.”
대회 전날, 아이는 거실에서 열 번도 넘게 춤을 췄다. 노래에 맞춰 동작을 연습하고 기억하려 애썼다. 다음 날, 막상 무대에 오르자 언니들과의 실력 차가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작은 손동작의 차이, 잠깐의 머뭇거림은 큰 무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보는 내가 다 안타깝고 속상했다.
공연이 끝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딸에게 말했다.
“다음엔 더 많이 연습하자. 혼자서도 완벽히 동작을 외울 정도로.”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알겠어. 그래도 난 만족해. 최선을 다했어.”
8살 아이에게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최선을 다하는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겼을까.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초반의 흥미와 빠른 성장을 즐겼다. 하지만 정체기가 오면 언제나 멈췄다. 수영, 기타, 발레, 영어…. 시작은 늘 설렜지만, 끝은 미완이었다. 효율과 결과를 좇느라, 최선을 다하는 그 지루한 과정은 늘 건너뛰었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치열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진 적이 있었을까. 엑셀을 배우며 알았던 것처럼, 답은 늘 버티고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
《5번 레인》 속 아이들이 그랬듯, 내 딸도 자신만의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완벽을 향하던 나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제는 진심이 향하는 곳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