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층 여자(2)

by 임지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그녀가 어린이집 특별활동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그날도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금세 다른 이야기로 번져갔다.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힘든 일들, 이혼 고민, 얼굴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까지… 그녀의 이야깃거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불행을 모아놓는 주머니가 있는 듯, 온갖 사연들이 그녀에게 흘러들어왔고, 그녀는 그 주머니를 활짝 열어 누구에게든 나누어주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아픔에 많이 공감했다. 그녀에게서 듣는 동네 소식은 신기했고, 그녀의 입을 통해 미리 알게 된 이웃들과는 금세 친해지기도 했다.


잠깐 올라온다는 마음으로 앉아있던 시간이 어느새 점심 무렵이 되어 있었다. 피곤했다. 슬슬 일어서고 싶었다.

“어머,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저 내려가 볼게요.”

“그러게요, 밥 먹어야겠네. 짜장면 드실래요? 짬뽕 드실래요?”

“네? 아… 저는 집에 가서 먹을게요.”

“어차피 먹을 건데 여기서 먹고 가요. 요 앞에 새로 생긴 중국집이 괜찮더라고요. 여기는 전화로 주문해야 해.”

그녀는 휴대폰으로 통화목록을 내리더니 금세 통화 버튼까지 눌렀다.

“여기 OO 아파트 O 동 O호인데요, 짜장면 하나하고요, 잠시만요. 서희엄마는 짜장면? 짬뽕?”

“… 그럼 저는 짬뽕 먹을게요.”


음식을 기다리고,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우리 남편은 요즘 회식이 너무 잦아요. 주말에도 잠만 자고. 맨날 힘들다 힘들다 난리야. 서희엄마는 남편이 퇴근도 일찍 하고, 주말에도 애들하고 잘 놀아줘서 좋겠어요.

“아니에요. 저희도 다 똑같아요. 남편도 일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 자주 해요.”


그 말을 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어머, 서희 아빠도 힘들어하는지 몰랐네. 어디 회사 다닌다고 했죠? 들은 기억이 없네.”

“시내 지나서 있는 작은 회사예요.”

“작은 회사? 회사 이름이 뭔데요?”

“큰 회사 아니라서요.”

“그래서 이름이 뭐예요? 검색해 보면 다 나오잖아요.”

“…OO요.”


그녀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어 검색했다.

“음… 여긴 뭐 하는 데지? 요즘 주식은 많이 떨어졌네… 남편은 거기서 무슨 일 해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영업팀이에요.”

“아, 영업사원이구나? 힘들겠네. 여기저기 운전 많이 하죠?”

“영업을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주로 사무실에 있어요.”

“그래요? 그럼 월급은 얼마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선뜻 묻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그녀는 거리낌 없이 물었다.

“글쎄요, 뭐 회사원 월급이 다 비슷하죠.”

“그러니까 얼만데요? 이백? 삼백? 우리 남편 회사에 자리 있는데 소개해줄까요? 옆동사는 선호네 알죠? 그 집 남편도 제가 소개해줘서 다니거든요. 토요일에 격주로 출근해야 하는데, 그것 빼고는 몸 안 쓰고 편하대요.”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그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여보, 혹시 이직할 생각 있어요? 18층 엄마가 남편 회사에 자리 있다고 소개해주겠대요.”

“엥? 또 무슨 대화하다가 거기까지 갔어?”

“남편 월급을 물어보더라고.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아, 미안. 당신이 일 힘들어한다는 말도 했어요. 말해주기 싫어서 남편 월급 모른다고 하니까 몇 번이나 더 물어보더라고.”

“하… 그 사람, 정확한 금액 들을 때까지 물어볼 텐데, 차라리 그냥 말해. 월급 맞춰줄 수 있으면 생각해 본다고 해.”

“그 엄마가 알게 되면 동네사람들 다 알게 될 텐데 괜찮아요?”

“거짓말도 아니고 뭐. 그냥 말해줘.”


그녀는 그다음에도 두어 차례 더 남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물어보니 저희 남편 월급 오백만 원에 상여금도 일 년에 네 번 받는데요. 남편이 월급 비슷하게 맞춰주면 한 번 생각해 보겠다 하더라고요.”

순간 그녀 얼굴이 확 굳었다.

“영업사원인데 그렇게 많이 받아요?”

“영업팀 팀장이에요. 오래 다녀서 그런가 봐요.”



얼마 뒤, 집 앞 놀이터에서 그녀와 선호네 엄마가 보여 다가가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가 대뜸 선호네 엄마에게 말했다.

“서희네 아빠도 취직시켜주려고 했는데, 엄청 잘 벌어. 월급이 오백만 원이래. 또 뭐 암튼 월급 말고도 더 받는대.”

아… 이 맥락 없는 말들. 그녀는 예상보다도 더 투명했다.



그녀와의 관계가 벅차다고 느껴질 때 친정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냥 끊어. 서서히 거리 둬. 사람은 안 바뀌어.”

"한 동네에 살면서 매일 마주치는데, 그게 될까?"


그 후로 그녀가 밥 먹자, 차 마시자 연락하면 약속이 있다며 조금씩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루 두세 번 오던 연락도 자연스레 줄다가 이내 끊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힘들었던 감정도 조금 옅어졌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고, 그녀가 악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절이 바뀐 어느 평화로운 오전,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두 달 만이었다.

- 서희엄마 뭐해요?

잠시 답장을 망설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 저는 커피숍이에요.

- M커피 갔죠? 그 골목 끝에 있는 김치찌개 먹으러 갈래요? 지금 나갈게요.

- 저는 오늘 떡볶이 먹으려고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

- 그럼 그 커피숍 바로 옆에서 눈꽃치즈 떡볶이 먹으면 되겠다.


… 책을 덮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냥 약속이 있다고 말했어야 했나. 머릿속에 얼른,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십 분 거리의 S떡볶이가 떠올랐다.

- S떡볶이 가려고요.

이쯤이면 눈치챘으려나?

-거기 어딘지 알아요. 지금 커피숍 앞으로 갈게요.

어림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떡볶이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가 보낸 문자를 몇 번이고 되짚어보았다. 대체 어디에 ‘같이 먹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예상치 못한 흐름에 미처 거절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어질 대화가 벌써부터 막막했다.

‘아, 그 방법을 써볼까?’

얼마 전 본 영상에서 정흥수 작가가 말했다. “험담에 맞장구치지 말고, 그 사람을 과거에서 현재로 데려와라.” 어쩐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상을 보게 됐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조금 낯설어 보였다. 말을 조심스레 건네며 내 표정을 살피는 듯도 했다. 그러나 잠깐의 안부를 지나자, 금세 본격적인 이야기로, 내가 알던 그녀로 돌아왔다.

“선호네 이사 간 거 알아요? 지난주에 갔어요. 길 건너 빌라촌 알죠? 거기로 갔어요.”

“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등원길에서도 못 봤네요.”

“내가 일주일 내내 가서 이삿짐 같이 싸줬잖아요. 짐이 어찌나 많던지.”

“그 집도 아이가 셋이니까 짐이 많았겠네요.”

“근데 왜 이사한 줄 알아요? 그 집 남편이 주식했다가 있는 돈 다 날리고 빚까지 졌대요. 그래서 집 팔아서 빚 갚고 빌라로 들어갔대요.”


아,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으로 나를 고른 거구나.


“어머. 선호네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나저나 얼굴 좋아지셨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셨어요?”

대화를 타인에게서 그녀로, 그녀의 현재로 데려왔다.

“살이 쪄서 그래요. 스트레스받으니까 밤마다 먹어서. 아니 그래서 거기 빌라는 전세금이 오천인데…”


몇 번이고 그녀를 현실로 데려오려고 애썼다. 기왕이면 긍정적인 이야기로 돌려보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야 이야기를 마쳤다. 입구가 벌어진 주머니 속의 이야기들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그날 나는 얼굴도 뵌 적 없는 선호네 할머니가 길 건너편에서 동태찌개 식당을 하신다는 것, 거기는 김치찌개만 맛있다는 것, 손목이 아프셔서 음식 서빙은 알바를 시킨다는 것, 설거지는 손이 느려서 알바를 시킨다는 것, 게으르면서도 까탈스럽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호네 아빠는 18층 아저씨네 회사에서 나와 더 변변치 않은 일을 한다는 것까지.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었다.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들과 등원버스를 기다리다 그녀와 오랜만에 마주쳤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등원 시간 바꾸셨어요?”

“저 지난달부터 아르바이트해요. 애들은 첫차로 보냈어요.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마침 버스가 도착해 대화가 끊겼다. 아이가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내려와 작은 선물 상자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 서희 앞으로 못 봐서 어쩌죠. 이번 주 까지라면서요? 학기라도 다 마치고 가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이건 아이들 주세요. 머리핀이에요.”


버스가 아이들을 싣고 떠나자 그녀가 물었다.

“서희 어린이집 옮겨요? 어디로요?”

“저희 갑자기 이사하게 되어서요.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고요.”

“이사를 간다고요? 아니, 왜 한마디 말도 없이… 언제 가요?”

“내일모레요. 급하게 결정됐어요.”


그녀의 표정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럼 밥 먹을 시간도, 인사할 시간도 없겠네요…”


이사 소식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러 번 고민했었다. 결국 적당한 때,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틀 뒤, 그 지역을 떠나며 나는 자연스럽게 18층 여자에게서 벗어났다.




이따금 그녀 생각이 난다. 뜬금없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친정엄마도 가끔 묻는다.

“그 18층 산다는 엄마, 지금은 좀 잘 살고 있으려나? 그때랑 똑같으려나? 연락 안 오지?”

“응. 이사 오고는 한 번도 없었어. 애가 셋이었잖아.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겠지. 지금은 애들 커서 좀 수월할 테니까 예전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렇게 그녀를 떠올리다 보면 생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녀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지금은 누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 주머니에는 이제 조금쯤은 따뜻함도 담겨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때 우리가 ‘누구 엄마’가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속내를 나누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까.



18층 여자에게서 벗어난 지 어느덧 2년. 여전히 나는 타인에게 나이와 직업을 먼저 묻지 못한다. 동갑은커녕 동생뻘의 이웃에게도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

“언니, 이제는 나한테 말 놓아도 되지 않아? 왜 나만 편하게 하고 언니는 계속 존댓말을 해?”

“민지씨, 미안해요. 내가 원래 말 놓는 데 좀 오래 걸려요. 일 년만 더 존대하고, 그 뒤에는 편하게 할게요.”


그 모든 시간들이 남긴 작은 후유증이다.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고집하는 건, 너무 쉽게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 18층 여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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