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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하나가 되는 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적

by Soul Nov 30. 2024

매년 11월 21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이른바 ‘둘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 외우기도 참 쉽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지만, 아이가 아주 어릴 때 한 번쯤 이혼 위기가 오게 마련이다. 아내는 육아에, 남편은 바깥일에 서로 지쳐서 도통 소통이 되지 않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전에 없이 크게 부딪히며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둔 원망과 비난이 터지던 순간, 생겨난 걷잡을 수 없는 미움이 우리를 헤어지기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그러다 어떠한 계기로 아직 사랑하고 있으며, 아이가 우리를 연결해주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뒤, 다시는 마음속에 폭탄을 만들지 말자고 결심했다. 보송한 눈송이들이 쌓이고 쌓여서 산사태가 나는 법이니까.

  고민을 거듭했다. 대화하자. 아이가 없을 때, 단둘일 때가 좋겠다. 그래, 결혼기념일이다. 이날 만큼은 그냥 시답잖은 일상이 아니라, 진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깊이 있는 대화로 이끌 수 있지? 그 당시 남편은 속 깊은 얘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사회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분명히 있을 텐데 내게 내색하기를 꺼렸다. 재미있거나 좋았던 일만 이야기하려 했고, 휴식시간에도 웃긴 동영상을 찾아보며 애써 즐겁게 지내려는 모습이 보여 안쓰러웠다. 종일 아이에게 시달렸을 아내를 배려해 주는 것은 고마웠으나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속내를 터놓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처음 시도한 것은 5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이혼 위기 이후 첫 결기였다. 서로의 부족한 점이 보일 때마다 지적하면 싸움의 씨앗이 되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이 부지기수. 단점을 고치라고 하면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어떻게 에둘러 좋게 말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 부탁 형태로 하면 좋겠다. 

  “우리 향후 1년간 서로에게 바라는 점 말하기 해보자. 나한테 바라는 것 있어?”

  첫 운을 띄웠을 때 잠시 어벙했던 남편의 표정을 떠올리면 우습다. 하지만 이 질문은 해를 거듭해가며 우리에게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돌아보게 했고,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5주년 때,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쳤어도 소리치거나 짜증 내며 말하지 않기’를 부탁했었다. 평소 내가 얼마나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러댔으면 이런 부탁을 할까 싶었다. 

  “그건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체력이 떨어지면 짜증이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가 내게 고함을 지르던 날마다 변명처럼 말씀하시곤 했던 그 말을 내가 읊고 있었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던 결심도 떠올랐고,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반성했었다. 남편은 조용한 성격인 데다, 이성적인 어머님 밑에서 자라왔다. 나의 감정적인 격한 행동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날 이후 집안을 뒤흔들던 나의 짜증 섞인 큰 소리는 많이 줄었다.

  내가 남편에게 요구한 것은 ‘하루 1시간 아들과 시간 보내기’였다. 엄마와의 시간에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아빠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그 당시 아빠를 싫어하며 함께 놀기를 거부하기까지 했던 아들이었기에, 그 감정을 좋은 쪽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야 훗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부탁을 들어주었다. 1년간 목욕을 시키든 놀아주든 한 시간 이상을 충실히 아이와 보냈다. 그 결과 부자 사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아이는 아빠를 좋아하고 따르게 되었다. 다음 결혼기념일에 우리는 서로가 노력한 점에 대해 격려하며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우리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일상 대화가 겉돌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건네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고,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맞추며, 서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니, 말이 잘 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은 딱 한 가지뿐이었지만 매년 상황에 맞춰서 점차 진화해 갔다. ‘공부할 시간 확보해주기’ ‘내년에 경제활동을 하기’ ‘글 쓰는 시간 확보해주기’ ‘유치원에 결석하지 않고, 제시간에 보내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이에게 많은 경험시켜주기’ 등등…. 때로는 서로의 부탁이자 요구사항이 상충할 때도 있지만 대화로 맞추어 갔다. 그리고 일 년간 그것을 들어주려 노력했다.



  

올해 9주년 결혼기념일에는 몸이 아파서 식사를 일주일 미뤘다.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 내년에 급여의 앞자리가 드디어 바뀐다. 더불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남편이 내게 바라는 점은 이번엔 ‘학교에 결석하지 않고, 제시간에 보내기’다. “아무렴, 유치원도 아니고 학교인데, 나도 한다면 하는 엄마라고”라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남편에게 바라는 점은 작년과 같다. ‘아이에게 많은 경험시켜주기’! 올해 상반기에는 아이를 데리고 많이 다녔지만, 하반기에는 저조했던 것 같다. 해외여행 한 번의 지출이 컸다. 그래도 작년에 이어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준 것에 만족한다. 마흔에 접어들면서 남편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해서 “나도, ….” 라고 밖에 못 말했었다. 이제는 제법 자연스레 주거니 받거니 한다.


  “우리 앞으로도 잘 살자.”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밖에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 송이를 바라보며 내 가슴 속에 쌓인 것은 없는지 들여다보았다. 차창 밖에 떨어진 두 개의 눈송이는 이내 말캉거리다 합쳐져 한줄기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우리도 서로를 부둥켜 안아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 송이를 바라보며 내 가슴 속에 쌓인 것은 없는지 들여다보았다.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 송이를 바라보며 내 가슴 속에 쌓인 것은 없는지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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