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력 2년 차 밖에 안되는 초보운전자다. 동부간선도로에서 80km로 달리고, 고속도로에서 100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다. 아직 120km까지는 엑셀을 밟아 본 적이 없다.
최근 운전에 관해서 너무 귀중한 경험을 했다. 그 날은 교회, 마트, 백화점, 친정 등 유독 이리저리 가는 곳이 많아서 집에 갈 때쯤에는 남편이 너무 피곤해하는 눈치였다.
"뒷좌석에서 좀 자. 내가 운전할게."
친정에서 집까지 왔다 갔다 한 경험이 많았으므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운전을 시작했다. 시내를 지나 동부간선도로에 접어들어 여느 때처럼 차선 변경을 위해 고개를 돌려 왼쪽 사이드 미러를 보았다. 내 차는 3차선에 있었고, 내가 움직이려는 2차선 뒤쪽은 갈라진 홍해 바다 가운데 모세가 지나갔던 길처럼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지금이다."
늘 했던 것처럼 지그시 엑셀을 밟고 속도를 높여 부드럽게 차선 변경하려는 순간,
"끼이이이익!!!"
1차선에 있던 흰색 차가 정확히 내가 가려던 방향으로 무섭게 진입하는 것이었다. 그 차도 2차선 절반 정도 머리를 들이밀었고, 내 차도 2차선의 반대쪽 절반 정도를 차지한, 아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부딪힌다.' 생각한 찰나, 나도 모르게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꺾었다. 늘 조심스레 운전하는 내가 그렇게 핸들을 홱 튼 것은 운전 인생 사상 처음이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사람이란 나도 모르게 방어를 하게 되나 보다.
"헉!"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번쩍 눈을 뜨며 외마디 소리를 쳤다. 동시에 나도 악 소리를 지르며 조금 뒤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그 차는 나처럼 역방향으로 피하지도 않았고, 차선을 본인이 차지하겠다는 각오인지 속력을 늦추지도 않았다. 3차선이 비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가족은 이미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운전자인 내가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차 운전석 옆에 그 차의 오른쪽 뒷문이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도착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명치가 답답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심하게 놀랐을 때 우황청심환을 먹는다던데, 집에 그것마저 없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원인 분석을 하려고 애써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분명 보이지 않았다!'
사이드 미러 속 뻥 뚫려 있는 차선만 보였을 뿐 1차선에 있던 우리보다 조금 앞선 그 차량이 차선 변경을 하는 게 보이지 않았었다.
골똘히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사각지대가 있었던 거다. 훤히 다 보이리라 생각했던 자동차 창문 속에 보이지 않는 구역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운전 선배이신 친정 부모님과 전화로 이야기해 보았다. 결국은 내 생각이 맞았다. 정말 사각지대는 있었고, 그 때문에 부모님도 사고 날 위험을 겪으셨다고 하셨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 운전자는 사각지대까지 고려해서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잃을 뻔한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운전할 때는 사이드 미러 뿐 아니라 자동차 창문 속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차선까지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우리는 창문을 닦을 때 손에 닿는 부분만 닦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깨끗이 닦는다 해도 모퉁이 어느 구석진 곳엔 늘 뽀얀 먼지가 앉아 있게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곳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내 아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기분을 알아차리고 싶다. 결핍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은 긍정적 마음들. 내 아이의 자존감은 수치로 나타내면 과연 얼마나 될까?
좀처럼 내색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직장생활 속 스트레스 쌓일만한 일이나 승진이 안 되어서 좌절하는 심정은 어떨까. 알아챌 수 있다면 그에게 화내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우리 주부들은 살림과 육아에 지친 나머지 남편의 SOS 사인을 무심히 넘기고 만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 힘든 부분을 바라보지 못했던 남편이 조금 이해된다.
자칫 스쳐 지나가기 쉬운 주변의 곤고한 이웃들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리어카를 힘겹게 끌며 폐지 줍는 노인, 한부모 가정, 불치병에 걸린 가족이 있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성탄절이 행복하지 않을 고아들과 아동학대 가정 아이들 등. 그들의 삶을 지나치지 않고 한 줄기 희망을 주고 싶다.
부모님의 케케묵은 오랜 꿈들을 알고 싶다. 자식 때문에, 세월에 쫓기듯이 살다 놓아버린 꿈. 어머니는 평생 대학 졸업장에 미련이 있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셨다. 아버지는 노래, 운동, 글쓰기 등 잘하는 것이 많으셨다. 지금도 명문 청주 중학교 입학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아버지시다. 두 손주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신 지금, 시간을 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가실 수 있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실까?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 키우느라 부모님께 신경을 많이 못 써드리게 된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비록 두 번 다시 사랑하는 이들을 못 볼 뻔했지만, 앞으로 운전 시 사각지대까지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리라 생각하니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더불어 그동안 내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