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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Mar 24. 2023

너의 수술일

외동아이 엄마로 산다는 것

어느 날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었다. 바로 심하게 울 때 고환 위쪽이 불룩해지는 것이었다. 남자아이 몸을 잘 몰라서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는데 남편이 이상하다고 했다. 밤새 인터넷과 책을 뒤진 결과 소아 서혜부탈장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왔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발견하는 즉시 수술해야 한다.’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진찰의뢰서를 써 주었다. 응급실에서 소아외과 쪽 의사가 아기 고환 위 불룩한 부분을 만지자 ‘꼬르륵’ 소리를 내며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신기하기도 했으나 갓난아기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힘 줄 때나 울 때마다 탈장이 일어나니 너무 신경이 쓰였다. 집에서도 최대한 아기를 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하늘이 노랬다.


서혜부탈장은 선천적인 질환이다. 고환이 내려오는 길을 서혜부라고 하는데, 보통 아이들은 고환이 내려온 뒤 그 통로가 막힌다. 그런데 우리 아기는 태어날 때 서혜부가 막히지 않았기에, 자라면서 복압이 세지자 창자가 구멍을 통해 내려온 것이다. 정확히는 창자가 힘 줄 때마다 내려갔다가 힘을 빼면 원래 위치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후천적일 여지는 없는지 경우의 수를 모두 의사에게 제시해봤으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답변이었다.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못난 부모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 잘못도, 그 누구의 죄도 아니었다.

방법은 오직 수술뿐. 갓난아기에게 수술이라니 참담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창자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감돈이나 괴사가 되기 전에 아기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수술을 위해 심전도 검사,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를 찍었다. 피를 뽑는데 아기가 너무 울고 몸이 흔들려서 두 번을 뽑았다.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벌건 피가 시야에 들어오니 제정신이 아닌 채 눈물만 나왔다.

‘이 어린 것을 어른의 욕심대로 하려는 건 아닐까.’


수술 당일이 되었다. 새벽 5시부터 아기가 배고프다고 우는데 금식해야 해서 젖이 있는데도 줄 수 없다는 것이 슬펐고 애처로웠다. 한 시간 뒤 설탕물 20mL를 먹고 울다 지쳐서 잠든 아기 얼굴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 옷을 병원복으로 갈아입히면서 ‘정말 수술을 하는구나.’ 싶었다. 수술실에는 한 사람만 들어가야 해서 엄마인 내가 아기를 안고 들어갔다. 제발 이번에는 한 번에 라인을 잡길 바라면서 주사 놓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안 된다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고 해서였다. 아이는 아파서 울고 그 모습을 보는 내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수술이 30분 걸린다고 해서 나는 곧 아기가 회복실로 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불안했다. 조부모까지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수술이 잘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OOO 보호자는 회복실로 오세요.”

전화가 온 것은 1시간 반이 흘러간 뒤였다. 의사에게서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빨리 아기 얼굴을 보고 싶어서 급히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황야처럼 고독한 수술실 한복판에 우리 아기가 있었다. 그렇게 우렁찼던 울음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고 너무 울어서 쉰 목소리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간호사는 진정이 될 거라고 하며 내게 아기를 안게 해주었다. 아기는 생후 50일밖에 되지 않았었다. 힘든 수술을 오롯이 홀로 견뎌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죄스러웠다. 아기는 내 품에서 울음을 그치고 거짓말같이 잠들었다. 듣든지 듣지 않든지 나는 아기에게 울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수술을 시킨 부모를 원망할까 봐, 혹시 자기가 버려졌다고 생각했을까 봐.


“아가, 태어날 때 너의 고추에 고환이 내려오는 길이 있는데 원래 막혀서 태어나. 너는 그 길이 막히지 않았대. 그동안 힘을 줄 때마다 창자가 내려와서 너무 불편했어. 병원에 가니까 수술밖에 치료 방법이 없대. 그래서 엄마 아빠는 어쩔 수가 없었어. 혼자 차가운 수술대에서 외롭고 많이 아팠지? 절대 너를 버린 것이 아니야. 너를 위해서 그런 거였어. 어른들 맘대로 해서 미안하다. 잘 견뎌주어서 너무 고마워. 사랑해.”

설명과 호소가 섞인 말을 넋두리하듯 반복했다. 아기 입안이 바짝 말라 있어서 포도당 묻힌 솜으로 입술을 축여 주었다. 신생아 수술은 하루 입원해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아기는 먹을 것을 달라고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이제 완전히 목이 쉬어서 가래가 끓는 소리가 났다. 4시간 간격으로 한 호흡기 치료에 아기는 싫어하긴 했어도 울지 않고 담담히 임해주었다. 매시간 먹은 양, 소변 및 대변량, 상태를 기록했고 간호사가 수시로 체크 했다. 온통 아기 생각만 하느라 가슴이 아픈 줄도 몰랐다. 젖을 물리지 못해 젖몸살이 와서 가슴이 딱딱해진 것이었다. 산후관리사가 손으로 모유를 짜 주었다. 배고픈 아기의 첫 식사였다.


간밤에 아기가 열이 났으나 아침에 내렸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와서 수술 중 아기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기도 삽입을 했다는 말을 했다. 수술이 지체된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수술 끝나고 난 뒤 ‘기도가 예민하다’라고 했던 외과 의사의 말이 이런 뜻인 줄 몰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가, 너는 생사를 넘나들었던 거구나.’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겪은 큰 수술이었기에, 엄마인 내게는 시간이 지나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잘 견뎌준 아기가 대견했고 살아 있음에 감사했던 순간. 아직도 아이 목욕을 시킬 때나 옷을 갈아입힐 때 배꼽 밑의 수술 자국이 보이면 그때가 떠오른다.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던 내 소중한 아이. 발달이나 공부나 다른 것이 무슨 대수랴. 그저 살아 숨 쉬는 것이 행복이다. 세월이 흘러 배꼽 밑 자욱이 지워질 때쯤, 내가 오십 춘기가 되고 아이가 사춘기가 된다 해도 나는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곁에 살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리라.


"그저 살아 숨쉬는 것이 행복이다." /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수술 당일 우리 아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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