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내가 말보다 글을 좋아하는 순간들

by Napolia

1. 텅 빈 집에서 나를 만나는 법
아이 셋이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고, 텅 빈 집은 때로 낯선 적막으로 나를 눌렀다. 간혹 아내와 마주 앉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눠보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이 감정을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럴 때면 나는 나만의 작은 공간으로 찾아 들어가 끄적이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왜 공허했나.' 하얀 백지 위에 내 마음을 쏟아낸다. 말은 감정의 배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글은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흩어진 나를 모으고, 내 안의 목소리와 가장 정직하게 대화한다.

2. 아내의 식탁 위에 놓인 쪽지
오랜 세월 함께 산 아내와의 다툼은 언제나 사소한 말에서 시작된다. "당신 말이 맞아." 그 한마디가 목구멍에서 턱 걸린다. 퉁명스러운 내 한마디에 아내는 등을 돌린다. 닫힌 방문 앞이 천근만근이다.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이겨서도 안 되는 침묵이다. 책상에 앉아 생각해 보니, 펜을 쥐고서야 비로소 솔직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보, 미안해. 요즘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공허해질 때가 많아지네.’ 말로는 반평생을 다퉜지만, 우리 부부를 화해시킨 건 언제나 내가 밤늦게 쓴 이 짧은 쪽지였다. 다음 날 아침, 묵묵히 내어주는 따뜻한 밥 한 끼. 나는 그것으로 안다. 내 글이 아내의 마음에 닿았다는 것을.

3. 아내의 생일, 카드 뒤편에 적은 고백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맞이하는 아내의 생일. 이젠 1년마다 돌아오는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큰딸이 그럴듯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작은딸이 소박한 케이크를 산다. 막둥이는 몸으로 때우고. "생일 축하해."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는 동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나 같은 무뚝뚝한 남자와 살아주느라 고생 많았어.' '당신 덕분에 아이 셋이 잘 컸고, 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하지만 이 말들은 너무나 무겁고 진지해서, 축하의 자리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이 휘갈겨 쓴 생일 카드 뒤편에 조용히 몇 줄을 더했다. 'P.S.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당신이었어.'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내가 쓴 카드 뒤편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4. 문을 닫고 들어간 아들에게
녀석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거실에 남은 것은 내 잔소리의 메아리와 어색한 침묵뿐. "아빠는 또 그 얘기야!"라는 녀석의 말이 가시처럼 박혔다. 분명 녀석의 미래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이었는데, 내 입에서 나간 말은 어느새 '꼰대의 훈계'가 되고 말았다. 말은 늘 그렇게 타이밍과 톤에 따라 본질을 잃어버린다. 한참을 망설이다 메일 한 통을 썼다. '아들아, 아빠도 너만 할 때가 있었다.' 차마 말로는 하지 못했던 내 젊은 날의 실패담과 불안을 적었다. 정답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혼자 걷고 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밥을 먹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걸로 되었다.

5. 딸아이의 생일
딸아이의 생일. 가족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잘랐다. "축하한다." 내가 건넨 말은 그뿐이었다. 한 바퀴의 삶을 더 산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얹는데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선물과 함께 건넨 카드 속에는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네가 처음 내게 온 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그날의 공기를 아빠는 기억한다.' 그날 밤,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 카드 읽고 울잖아. 고마워요.' 말은 그 순간을 축하하지만, 글은 그 순간의 역사까지 담아낸다.

6. 돌아가신 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편지
이제는 뵙고 싶어도 뵐 수 없는 아버지. 살아생전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를 못 했다. 쑥스러움 때문이었다. 이젠 돌아가신 아버지만큼의 인생을 살아온 무뚝뚝한 아들은 이젠 붕어빵처럼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었다. 뒤늦게 아버지 묘비 앞에서 중얼거리는 말 대신, 그때 편지 한 통을 썼더라면... 나는 그래서 오늘도 쓴다. 말은 공중에 흩어지지만, 글은 시간을 관통해 가닿을 수 있다고 믿기에. 그 후회 때문에, 지금 내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글을 쓴다.

7. 홀로 계신 어머니께
홀로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면 늘 "괜찮다" 하신다. "밥 잘 챙겨 먹고 있다" 하신다. 그 말이 진짜 '괜찮음'이 아니란 걸 알지만, 말로는 그 속을 파고들 재간이 없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물어도 "아들 돈 아껴야지, 다 괜찮다"는 말뿐. 말은 그렇게 서로의 진심을 맴돌다 끊긴다. 어느 날, 무심하게 보낸 꽃다발에 "내 평생 이런 걸 다 받아본다. 고맙다 아들아"라는 서툰 답장이 왔다. 말로는 안 다시던 그 속마음이 글자 하나에 툭 튀어나왔다. 나는 그날 이후, 전화 대신 짧은 손 편지를 사진 찍어 보내곤 한다.

8. 장례식장에서 하지 못한 말
친구 녀석의 부고를 받고 달려간 장례식장. "기운 내", "얼마나 상심이 커" 같은 말들은 그 깊은 슬픔 앞에서 너무나 가볍고 공허했다. 살다 보니, 위로의 말이 가장 무력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저 녀석의 어깨를 한번 꽉 두드려주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에 걸렸다. 그날 밤, 나는 녀석에게 긴 문자 메시지를 썼다. 고인과 함께했던 사소한 추억, 그가 내게 베풀었던 온기,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을 담담히 적었다. 며칠 뒤, '고맙다'는 짧은 답장이 왔다. 어설픈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그저 함께 기억하고 있음을 전하는 나의 글이 필요할 때가 있다.

9. 20년 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동창회에서 20년 만에 그 녀석을 만났다. 젊은 시절, 사소한 돈 문제와 자존심 싸움으로 격렬하게 다투고 연이 끊겼던 친구.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우리는 어색하게 악수만 나눴다. "잘 지냈냐", "애들은 다 컸고?" 같은 말만 오갈 뿐, 누구도 그날의 일을 꺼내지 못했다. 말은 그 세월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녀석에게 메일을 썼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 한 줄을 쓰는 데 20년이 걸렸다. 다음 날, '나도 미안했다. 우리 다음엔 둘이 보자.'는 짧은 답장이 왔다. 말로는 풀지 못했던 20년의 응어리가, 단 몇 줄의 글로 하얗게 녹아내렸다.

10. 엘리베이터의 귤 한 봉지
윗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 온 뒤로 며칠째 밤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와 나는 잠을 설쳤고, 나는 인터폰을 들었다 놨다 망설였다. 내가 직접 올라가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고, 감정이 섞여 이웃 간에 얼굴 붉히기 십상이다. 결국 나는 펜을 들었다. '아랫집 사람입니다. 이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밤 10시 이후에는 가구를 끌거나 발소리를 조금만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정중하게 쓴 쪽지를 현관문에 붙였다. 다음 날 저녁, 엘리베이터에서 그 부부를 만났다. " 쪽지 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흰 몰랐어요." 쑥스럽게 웃으며 건네는 귤 한 봉지. 만약 내가 그날 밤 말로 쏘아붙였다면, 우리는 이 귤 한 봉지의 따뜻함 대신 평생 서먹한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곤, 살포시 말 한마디 얹는다.

나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괜찮아”


B&J 32년 11월 겨울 문턱을 앞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