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는 오늘도 간식 투쟁을 당당히 시작했다.
올해로 열 살이 된 시루는 강아지 나이로 치면 꽤 중년을 넘어 노년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지만, 그의 간식 요구는 여전히 패기 넘친다. 더 이상 귀여운 애교나 부탁의 차원이 아니다. 시루의 태도는 마치 오랫동안 은행에 맡겨 놓은 예금을 찾으러 온 고객처럼 너무나도 당당하다.
처음에는 시루의 귀청이 떨어질 듯한 짖음 때문에 서둘러 간식을 주곤 했다. 혹시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루는 점점 더 간식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간식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시루의 간식 투쟁은 우리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시루는 소리 없이 다가와 내 곁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치 “나는? 내 밥은?”이라며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하다. 처음엔 애써 무시하며 식사를 이어가지만, 시루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발로 내 다리를 툭툭 치며 재촉하기 시작하고, 그래도 내가 꿈쩍하지 않으면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듯 "멍! 멍!" 하고 짖어댄다. 결국, 나는 매번 이 당당한 요구에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다.
시루는 사실 우리가 시키는 말 중에 제대로 행동하는 것이 몇 가지 없다. 그의 기술 목록이라고는 겨우 ‘앉아!’, ‘기다려!’, ‘손!’ 딱 이 세 가지뿐이다. 그것도 그의 기분이 좋을 때만 특별 서비스라도 하듯 시늉만 내줄 뿐이다.
사실, 우리가 시루에게 엄격한 훈련을 시키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작은 몸집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루에게 엄격한 규칙이나 훈련을 강요하는 것이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남편의 지나친 시루 사랑 때문이다.
우리가 시루에게 간단한 훈련이라도 시키려고 하면 남편은 단호하게 말한다.
“강아지가 사람처럼 말을 척척 잘 들으면 키우는 재미가 하나도 없잖아?”
남편의 이런 엉뚱한 논리 앞에서 결국 우리의 훈련 계획은 항상 무산되었다.
얼마 전 남편이 출장을 간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작은 욕심이 생겼다. 간식을 좋아하는 시루에게 기본적인 훈련이라도 한번 시켜보고 싶었다. 나는 시루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계란을 들고 방에서 자고 있는 시루를 불렀다.
'시루야, 기다려!'
시루는 예상외로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얌전히 앉았다. 너무나 놀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계란 껍질을 까서 노른자를 조금 떼어 준 뒤 다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루, 기다려!'
하지만 시루는 긴 하품으로 나의 엄숙함을 날려버리고 곧바로 참을 수 없다는 듯 짖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 훈련도 실패였다.
'시루야, 정말 예쁘면 다야?
나는 투덜대면서도 결국 남은 노른자를 모두 시루에게 주고, 그의 얼굴에 폭풍 뽀뽀를 퍼부었다.
아마 시루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가족들이 얼마나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말이다. 눈치 하나만큼은 시루는 이미 천재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당당하게 간식을 요구하는 시루를 보며 웃음이 난다. 시루는 작고 귀엽지만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배짱과 당당함으로 우리 집의 진정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가끔은 시루가 너무 버릇이 없어진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매일 집안 곳곳을 신나게 활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걱정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시루야, 그냥 아프지 말고 네가 편한 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줘!'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며 시루의 당당한 간식 요구에 기꺼이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