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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내야 비로서 보이는 마음의 공간

by 조정미

집 안에 쌓인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비워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깝다는 마음이 버리는 걸 망설이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비워내고 나면 공간이 생기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더는 설레지 않고, 애써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제는 조용히 내려놓는 시기를 고민해봐야 한다. 억지로 붙들고 있는 인연은 결국 내 마음을 더 지치게 할 뿐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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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꾸만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만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지고, 함께 있는 내내 애써 밝은 척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는다. 그런 감정은 우연히 찾아오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 마음과 어긋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괜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편안한가’를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함께 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그런 사람 몇 명이면 충분하다. 노력한다고 모든 관계가 깊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애써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천천히 놓아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미안함에 스스로를 묶어두곤 한다. 조금 불편해도 감정이 식었어도 ‘그래도 함께했던 시간이 있는데’라는 이유로 쉽게 놓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는 오히려 마음을 더 지치게 할 뿐이고 더 깊은 외로움만 남긴다. 마음은 노력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그 관계는 깊어지고 오래간다.


사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오가는 감정’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곁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그런 사람이 몇 명 곁에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만남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웃고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나답게 머물 수 있었느냐다.


사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다. 물건을 덜어내면 공간이 생기듯, 관계를 덜어내야 마음에도 여백이 생긴다. 그 여백 속에 비로소 진짜 소중한 사람들을 담을 수 있고, 그 공간은 내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준다. 자리를 비워야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감정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


휴대폰에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가 쌓여 있다면,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부터 천천히 관계를 돌아보자. 답장조차 망설여진다면 그 인연은 이미 마음에서 한 걸음 멀어진 것이다.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그 시간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붙들고 있는 건 어쩌면 나 스스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를 둔다고 해서 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 거리가 나를 위한 선택이자 그 사람을 위한 배려일 수 있다.


삶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사람과의 관계는 단순하고 가볍기를 바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이.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관계. 이제는 그런 사람들로 내 마음을 채워보는 것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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