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반려견 시루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석이 있다.
그 방석은 푹신하고 값비싼 쿠션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거실의 푹신한 소파나 침대 위의 따뜻한 이불도 아니다. 바로 나의 두 다리 사이가 시루의 최애 방석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내가 앉아 있기만 하면 시루는 틈새를 놓치지 않고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면, 어느 순간 슬그머니 다가와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얹고 눈을 감는다. 때론 책상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도 얌전히 기다리다가 내가 잠깐이라도 다리를 풀고 스트레칭이라도 하려고 하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내 두 다리 사이를 차지해 버린다.
심지어 바닥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어느새 시루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앞발로 내 다리를 툭툭 친다. " 엄마, 빨리 내 자리 좀 만들어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것이다. 무언의 압박에 굴복한 내가 두 다리를 둥글게 모아주면 시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다리 위로 올라와 얼굴을 올린다. 그 작은 얼굴이 내 다리에 닿는 순간, 나는 얼음땡 놀이를 하듯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내가 애정을 담아 마련한 시루의 전용 방석은 먼지만 쌓인 채로 거실 한 귀퉁이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고, 시루는 여전히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올린 채 편안하게 쉰다. 그 어떤 편한 방석보다도 내 다리가 시루에게는 가장 완벽한 방석이 되어버렸다.
" 시루야, 엄마 발이 너무 저려." 가끔 너무 오래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려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하면 시루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잠시 일어나 준다. 그러나 내가 자세를 바꾸기를 기다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빠르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밤에도 예외는 없다. 침대에 누워 자려고 다리를 쫙 펴고 누워 있으면 언제 왔는지 모르게 시루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 번은 주말 오후에 바닥에 누워 편안 자세로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나에게 시루가 다가와 앞발로 내 다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마치 내 다리가 자기 자리인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결국 내가 두 다리를 동그랗게 모아주면 시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다리 위로 올라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질투 어린 농담을 던졌다. " 엄마 다리가 그렇게 좋아? 아빠 다리도 푹신한데."
사실 남편은 시루에게 가장 많은 간식을 주고 애정을 듬뿍 표현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 언제나 내 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남편이 간식으로 유혹해도 시루는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가 얼른 달려가 간식을 먹고는 바로 다시 내 다리 위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이런 시루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 엄마 다리는 시루의 전용 방석이야!"
남편은 그런 시루를 보며 조금은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와 시루의 이런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사실 나 역시 불편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 행복감을 느낀다. 시루에게 내 다리는 아늑한 쉼터이고, 나에게도 시루의 따뜻한 온기와 사랑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루는 나의 두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시루에게 내 다리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방석이고, 나에게는 시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피로 회복제다. 앞으로도 나는 이 약간의 불편함과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