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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Sep 24. 2023

어쩌면 사랑과 같은 것

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눈을 떠보니 이름 모를 곳에 있습니다. 이곳은 밝지만 차갑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모두 비슷한 모습이네요.

이상합니다. 저와 똑같이 생기거나 색이 다를 뿐 같은 키를 가졌어요.

같지만 다른 우리는 서로를 벗 삼아 추위를 달래 보지만,

이미 차가워진 몸이라 크게 달라지지 않네요.


사람들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데려갑니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앞'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투명한 창 너머 다양한 생김새를 한 친구들이 줄지어 있네요.

그들도 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전 누구 일가요? 모두 똑같은 모습을 했는데도

'나'라고 말할 수 있나요? 수많은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요?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 어떤 것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가까워진 발걸음 소리, 투명했던 창은 어두워지고 문이 열립니다.

바깥의 공기는 이곳보다는 따듯해서 잠깐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저를 들어 손에 쥡니다.

제가 짓지 않은 이름이자 다른 이와 이름이 같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결국 창 밖의 세상으로 나왔어요.

여태 차갑기만 했던 몸이 따듯해지고, 물이 맺혔습니다.

저를 쥔 손은 점점 젖어가고 있었죠.


"아, 덥다"


지친듯한 목소리, 찌푸린 얼굴에 흐르는 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저를 열고선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10초도 안 걸리는 시간, 전 껍데기만 남아버렸어요. 저의 몸은 빈 깡통과 다르지 않았고,

마음이 공허했습니다, 비어버린 제 몸처럼요.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어둡고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졌습니다.

눈을 떴던 곳과는 너무 달랐어요. 어떤 존재들이 느껴질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익숙한 친구들이 하나, 둘.. 한참이 쌓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왜 태어났고, 왜 내 이름을 타인이 불러줘야만 했는지를요.


"쿵.. 쿠쿵"


점점 어지럽고 힘이  빠집니다.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나 봐요.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세상엔 저와 똑같은 것들이 많겠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만큼은 저를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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