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작가 May 12. 2024

오늘도 선크림

현대를 살아감에 있어 해야할 일이 참 많다. 번듯한 직장과 가정을 꾸리는 것은 기본이요. 노후를 지탱할 각종 영양제들과 운동, 건강한 취미생활 등등. 온갖 미디어들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삶의 구성요소들 중 내가 가장 귀찮아 하는 건 ‘매일 선크림 바르기’이다.


 자외선이 노화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하얗고 뭉근한 질감도 싫고, 손에 남아 있는 잔여물들은 3번은 씻어야 씻겨지는 기분이 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열심히 펴발랐더니 이제는 씻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며 온갖 세정 제품들을 필요로 한다. 깨끗하고 맑은 피부에 잔여물 따위는 없어야 하기에, 나 또한 클렌징 오일과 클렌징 폼으로 이중세안을 시작했다. 정말 필요한 일인가 묻는다면 아직은 물음표가 남는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이미 내 생활 깊숙하게 박힌 습관이 되어 버렸고, 나는 굳이 노화를 앞당기고 싶지 않으니까. 하루 안 바른다고 큰 일인가 싶어 ”늙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반론해보지만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자외선을 방어하고 있는 중이라 떳떳할 수가 없구나.


가끔 선크림을 생략하게 되는 날도 있다. 늦은 잠에 여유시간이 없을 때. 자외선 차단은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만다. 역시 생계유지만큼 중요한 일은 없구나 싶지만,  해야할 것을 놓친 기분이라 찝찝하다. 조금 더 일찍 일어 났다면, 빈둥거리지 않았다면 하고 화살을 나에게 돌려 본다.


 며칠 전의 아침에도 나는 노화 방지 단계를 생략하고 출근 버스에 올랐다. 그날따라 유독 볕이 드는 창가자리 뿐이었다. “아 선크림 안 발랐는데...  어쩔 수 없지” 3월 아침 햇살은 아늑하기 보단 피부에 깊숙이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피할 곳 없는, 가득찬 빛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 눈을 감아 버리고는 모두 받아 들인다. 나의 속눈썹과 두 뺨, 이마, 입술에 가득 머금어 본다. 잠시였지만 ,분명 내 안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든든한 햇살을 쬐며, 가끔은 실수인 척 생략해도 괜찮겠다는, 미소를 지어 본다. 피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제였나. 무슨 일이 있어도 선크림은 필수라는 친구의 말에 오늘도 하이얀 액체를 고르게 흡수시켰다.

주름과 빨리 만나고 싶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외로워서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