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1
행선지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을 지나야하는 길이었다.
해당 칸에는 할아버지 4~5분이 계셨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양복을 빼입으시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모습이 시끄럽다기 보다는, 정이 넘치는 대화처럼 느껴져 오히려 듣기가 참 좋았다.
이윽고 전철은 고속터미널역에서 정차하여, 다음 여정을 함께할 사람들을 담아내기 시작했고
할아버지 중 몇 분은 여기서 내려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한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유독 귓가를 세게 울렸는데
"다음에 보자"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다음을 기약하는 "다음에 보자"는 정말 별 의미없는, 단순한 인삿말로 제격이다.
오늘만나서 즐거웠으니, 시간이 되면 다시 만나자는 거대한 마음을 다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말,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익숙한 일상의 언어란 말인가.
하지만 언어는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향을 내뿜는다.
저 날의 나에게 묘하게 다른 향미가 스며든 것처럼.
처음엔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음을 기약하는 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니까, '다음'이 정말 귀하고 값지지 않을까?하는 아주 무례한 생각.
거만한 나의 생각이 바뀌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려야 할 분들이 내리고, 전보다 조용해진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반성했다.
"나라고 해서 그 다음이 꼭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저들의 다음과 나의 다음의 가치와 무게가 과연 다를까?
나 또한 언제든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지 않나?"
죽음 앞에선 우리 모두 같은 입장인 것을, 저들보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인의 시간과 마음을 내 멋대로 판단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을 알 수 없는 삶이기에 더욱 있는 힘껏 안녕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안녕이 마지막 안녕이 아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