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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Dec 26. 2022

스물 여덟번째 크리스마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20221226

스물여덟의 해를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쉬는 날 그 이상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했던 기억은 전무하다. 우리 집은 서양 명절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변의 친구들도 파티보다는 그저 마음 편히 게임할 수 있는, 휴일로 여길 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연인과 함께 보냈느냐? 그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명예로운 솔로 타이틀을 지켜냈다. 그나마 대학생 때는, 빨간 옷을 입고 쓸모없는 선물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냥저냥 한 이벤트였는데, 이마저도 없다고 생각하니 나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희미한 날로 기억될 것만 같다. 올해는 일정이 없는 친구와 함께 보내기로 했더니만, 친구는 약속 3일 전 코로나에 감염돼버렸다. 다행히 새로운 약속도 생겨 혼자 보내지는 않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예수의 생일일 뿐인 12월 25일. 이 날만큼은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인식이 전반에 깔려있는 듯하다. 가족이나 연인,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친구라도 만나야 하는, 혼자인 사람들은 어쩐지 제대로 된 1년을 보낸 것 같지 않게 여겨지는 날.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질 때가 많다. 불필요한 질문들을 끊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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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낸 성탄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2020년의 겨울을 기억해 본다. 그 해는, 오피스텔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첫 자취를 시작한 역사적인 해였다. 수많은 자취 로망이 있었지만, 어김없이 나는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그런데 다른 해와는 달리 이상한 설렘이 차올라 평소에 입기 힘든 새빨간 니트를 샀고, 냉동 피자를 어여쁜 그릇에 데워 먹었다. (니트는 다음 해 12월이 되기도 전에 헌 옷수거함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마카롱을 무려 4개나 구입하여 영화와 함께 먹어치웠다. 그날을 사진으로 남겨,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었다. 다시 보니 흑역사처럼 참 민망하지만, 당시에 난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혼자서도 잘 즐기고 있다고. 나는 혼자서도 괜찮다고.


시간을 거슬러 중학생 때로 거슬러가면, 꽤나 귀여운 기억이 남아있다. 학교에서 늘 만나는 친구 3명과 어김없이 친구집에 모였다. 우리 모두 솔로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뭐 있나? 그냥 노는 날이지" 라며 어설픈 위로와 함께 동네 탐험을 나섰다. 게임을 좋아했던 우리지만 그날만큼은 뭐에 씐 듯 야외로 향했고, 아파트 뒤 이름 모를 산을 올랐다. 날씨가 좋아 옷차림이 얇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가 어려 추위를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2시간 정도 걸으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우리는 꽤나 합이 잘 맞았다. 매일 보는 사람과 쉴 새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게 벌써 10여 년이 지나버렸다.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그 해의 크리스마스가 참 따듯하게 기억되지만, 그들도 나와 같을까 아니면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을까. 증명할 수 없는 궁금증만이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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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늘 그랬듯 집을 나서 늦은 점심을 햄버거로 해결하고 광화문의 일민미술관으로 향했다. wlsks '한국 상업사진전'이 좋아서 이번에는 '한국화 전시'를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한국화의 정적이면서 고즈넉한 멋은 나완 어울리지 않는 듯,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되려 전시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왜 좋아하지도 않는 그림을 보러 여기까지 왔지?"라는 단순한 물음으로 시작해 "나는 왜 전시를 보는가"에 까지 다다랐다. 꽤 진지한 질문이었지만, 이내 곧 새로운 글감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묘연했고, 습관적으로 다음 미술관의 전시도 해치우고 덕수궁까지 이르렀다. 덕수궁은 5달 만인 것 같다. 유달리 덥고 습했던 올여름, 부산에 사는 친구와 함께 야간개장 구경하러 왔다. 소나기가 내려 찝찝했던 그날과는 달리 하얀 눈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아직 밟히지 않은 눈 위를 걸으며,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추운 날씨였지만, 눈을 밟던 순간만큼은 잠시 그 추위를 잊은 듯했다. 그리고 덕수궁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 눈 덮인 덕수궁을 찍어 보냈다. 솔로인 나의 친구는 매의 눈으로 사진 속 한 쌍의 커플을 찾아낸다. 유쾌한 능력의 소유자인듯하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엔 성탄축제가 한참이다. 거리를 채운 사람들을 바라보다 새해 소원이 적힌 트리에 눈길이 갔다. 간절한 마음으로 적은 소망들을 하나씩 열어보다 어설픈 글씨에 눈이 멈춘다. “2023 반배정 잘되게 해 주세요 “ 이름도 얼굴도 모를 아이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거리를 빠져나왔다. 희미할 것 같던 스물여덟 번째 크리스마스는 한 아이의 바람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다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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