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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Jan 08. 2023

그와의 이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20230101

"넌 유튜브로 어떤 걸 찾아보니?"


 저를 난감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많이들 물어보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브 영상을 주로 보고, 역사나 인문학 관련된 정보도 얻고, 카메라에 담긴 반려동물들도 보긴 하는데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이걸 원해서, 정말 좋아해서 '보는 건지' 아니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켜놓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마디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영상들을 나는 좋아했던 게 맞을까요? 노래야 좋으니까 듣는 거고, 정보는 필요하니까 동물들은 귀여우니까 보는 거지만, 진정으로 그 영상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글쎄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한 대답일 것 같습니다. 보통은 영상을 켜놓고, 드문드문 보기만 할 뿐 정작 저 자신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상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아닌,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배경음악이었으며 필요한 소리였을 뿐이었던 거죠.


 좋아한다고 생각한 영상들을 볼 때에도 의문은 존재합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영상 콘텐츠들이 즐비합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콘텐츠가 많다는 건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이고,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똑같은 돈을 내고 더 많은 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친구보다 나의 취향을 잘 아는 '똑똑한 알고리즘'이 숱한 영상들을 추천해주면서 저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보고, 찾는 영상들은 이전에 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관성처럼 익숙한 영상과 익숙한 재미를 찾는 것이죠. 수천, 수억 개의 영상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문제는 동일합니다. 영상 자체를 온전히 즐기기보다 켜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집중할 필요도 부담도 없으니까요. 패턴이 반복될 때마다 찾아오는 회의감은 저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악행으로 다가왔습니다. 점점 '그'에게서 벗어나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쉽다는 것입니다. 터치 몇 번이면 원하는 영상을 원하는 지점부터 볼 수 있죠. 시점을 앞당길 수도 뒤로 넘길 수도 있어요. 모든 시간을 아우를 수 있는 '신'처럼 말이죠. 그런데 정작 나의 시간은 그에게 잠식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간편함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그'를 찾게 만들었습니다. 잠깐의 틈만 주어지면, 어김없이 그를 눌러 틈을 채울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샤워 후 화장품을 바르기 전이나 자기 직전의 시간 혹은 출근 준비를 일찍 마쳤을 때 등등 습관적으로 그와의 만남을 통해 영상을 봤습니다. 아니, 봤다기보다는 켜놨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 같군요. 영상을 켜고 나면 어느덧 나가야 할 시간은 지체되기 마련이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 불필요한 시간을 보냈어요.


 숏폼이 강세인 요즘 잠식되는 시간은 점점 더 늘었습니다. 30초 남짓한 영상을 무의식적으로 넘기다 보면 30분, 1시간은 우습게 지나가곤 하죠. 일요일 밤, 12시에 잠을 청했던 저는 한 시간이 넘도록 쇼츠를 넘겨보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영상들이 좋아서 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보고 싶은 영상이 아니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들을 그저 처리하고 있을 뿐, 그 어떤 감동이나 감흥은 없었죠. 짧은 것에 익숙해진 저는 영상이나 음악을 즐길 때에도 하이라이트부터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길이가 긴 영상은 둘째 치고, 3-4분짜리 음악의 앞부분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가는 저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책과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약이 되지 않은 긴 글을 보고 괜스레 화를 내는 저를 보면서 이젠 정말 그와 이별해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습니다. 가치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별을 다짐했던 시간은 길었고, 그와의 이별은 어려우면서도 쉬웠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했던 것을 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더군요. 우리가 카카오톡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막연한 걱정이 앞섰거든요.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면? 그들의 무대를 볼 수 없다면? 흥미 있는 정보들을 볼 수 없다면? 그땐 어떡하지.라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채웠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그에게 발목 잡히기 싫었습니다. 저 스스로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별의 순간을 더 빨리 앞당겨야만 했습니다. 이미 10년이 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에 오히려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정말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요. '그'는 단 두 번의 터치로 저의 휴대전화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그를 떠나보내고 3주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별의 순간은 생각보다 희미합니다. 당시에는 그만 없으면, 신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낭비되었던 시간을 더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크게 체감되는 부분은 사실 없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더 이상 궁금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영상을 무의미하게 스와이프 하면서 시간을 죽이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수확입니다. 여전히 보고 싶은 영상들이 있지만, 다시 그와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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