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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Mar 25. 2023

응가 맞기 전에

서울 로망스 #20230318


나의 주말은 언제나 외출이다.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읽고, 저녁까지 해결하는 루틴으로, 어디로 향할지는 나도 모른다. 일단은 집을 나와 지도를 보고 결정한다. 최대한 그럴싸한, 있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향한다.  반년 전만 해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는데, 1년 정도 살다 보니, 거기가 거기라는 생각뿐. 지금은 목적지 보다 집 밖에 나간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오늘도 그랬다.


아주 오랜만에 익선동에 왔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로 가득한 좁디좁은 골목길. 카페, 식당 가리지 않고 서있을 자리조차 없다. 이럴 걸 알면서도 온 내가 바보 같기도 하지만, 일단 이 거리를 빠져나가 한산한 곳으로 향한다. 이럴 땐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되려 재밌게 풀어나갈 수도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오로지 혼자서 이 심심함과 지쳐감을 감내해야만 한다. 늘 그렇듯이.


다른 사람이라면, 프랜차이즈 카페라도 들어갔겠지만, 이상한 객기를 보유한 나란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막연히 걷고 걷는다. ’ 나를 위한 자리 하나쯤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걸으면 30분은 우습게 지나간다.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다리가 아프고 한숨은 턱 끝에 도착해 토해내기 직전인 상황. 역시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다행히 자그마한 공원에 벤치를 발견한다. 여기가 창경궁인가.. 종로3가역에서 이만큼이나 걸어왔구나 싶은 순간, 멀리 돌아온 지금을 기록한다. 그제야 하늘을 바라보는 나였다.


옷 두께가 얇아진 요즘이지만, 이곳은 어쩐지 가을의 향이 짙다. 건조하게 말라붙은 낙엽들이 나부끼면 건조한 소리를 낸다. 빛바랜 나뭇가지들과 묘하게 탁한 햇살까지. 공기에서 느껴지는 묘한 따스함이 그래도 봄이란 걸 알려주는 듯 코 끝을 스치자 이내 곧 쓸쓸함 만이 고요하다. 글을 마무리하고, 주변을 다시 살핀다. 제비들이 나무 사이를 바삐 옮겨 다닌다. 벤치로 시선을 옮기니 하얀 얼룩들이 가득하다.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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