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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수 Nov 20. 2023

안전한 우리 사회를 위한 연대


                      

번지점프를 해보셨나요? 

자기 목숨을 남의 손에 맞기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줄은 끊어지지 않아야 하고 안전관리는 철저하게 집행될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지요. 이 믿음의 정점에는 국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국가를 믿는 것이지요. 당연히 국가가 잘 관리하고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2008년 나주에서 번지점프 줄이 끊어져 30대의 젊은이가 사망하였습니다.

2016년 강촌에서는 줄의 고리도 걸지 않은 채 아파트 14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게 했습니다. 당연히 줄을 걸어주고 점검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을 지탱하는 줄은 믿기 어렵게도 가끔 끊어집니다. 무서운 것은 이 줄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줄은 사용 횟수와 연한에 따라 수명이 정해져 있지만 관리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있는 고리도 걸지 않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실수로 치부하는 풍토 아래서 줄의 수명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지난한 일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돈벌이와 하나뿐인 목숨이 걸린 줄도 모르고 한번 해보는 현대판 러시안룰렛이 허가를 받아, 그러나 관리되지 않는 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시나요?

왜 그토록 우리 사회가 아파했던가요? 그리고 국가적 혼란 속에 대통령이라는 금기의 최고 권력에 책임을 물으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요? 그것은 얻어졌는가요?

우리는 연이은 화재 참사를 보면서, 시민의 일상을 덮친 타워크레인 사고에 놀라면서, 대학병원의 신생아 집단사망에 분노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수습은 결코 권력의 교체나 희생자 유족과의 합의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그토록 분노하고 아파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부패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만든 책임의 중심에 믿고 있었던 국가가 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요?

세월호의 무서운 경고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제천과 밀양의 화재참사의 기억, 이태원 참사에 이은 오송읍 지하차도 침수 참사 등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화재참사가 나야 소방법을, 지진이 나야 지진대책법을, 교통참사가 나야 교통안전대책을 강화하지만 원인을 치유하지 않는 뒷북행정으로는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첫 번째 이유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국민이 국가에 바라는 첫 번째 요구는 안전한 삶입니다. 이 안전한 사회는 국가 존재 이유의 첫 번째인 “공동체의 제대로 된 관리”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의 법과 규범이 지켜질 리 없고 법과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습니다. 

법과 규범을 지키는 것은 국민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리의 문제입니다. 

     

가까이 붙지 마세요. 적재물이 떨어져 다쳐도 책임 안 집니다.”

앞에 가는 덤프트럭 적재함 뒷면에 새겨진 글입니다. 한마디로 적반하장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입니다. 이 글을 보기 바로 얼마 전에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차에 철판이 날아들어 30대 가장이 숨지고 일가족이 다치는 참변이 있었습니다. 

정상이라면 적재불량 차는 도로를 달릴 수 없어야 하고, 보통의 사회분위기라면 적재불량이 염려되는 차의 운전자는 단속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하고 조심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양심규범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입니다. 관리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백주 대낮에 버젓이 협박 문구를 새기고 다녀도 될 만큼 우리 사회는 갈 데까지 간듯한 느낌입니다. 

멀쩡한 길을 가다가 횡액을 당하면 억울한 죽음이며 가정의 비극이요 국가에 배신감을 느낍니다. 고속도로에는 최소한 3중의 장치가 있습니다. 톨게이트를 통과해야 하고 수없이 많은 CCTV에 유급직원이 상황실에서 일합니다. 고속도로 순찰대도 있습니다. 그러나 버젓이 적재불량 차가 질주하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뒷정리도 없이 유유히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목숨이 달린 일인데 돈도 받으면서 관리는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요? ‘악마의 견제장치가 필요합니다.

선진국은 불법과 위반이 있는 곳에 반드시 법집행자가 나타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회의 기강을 유지시킵니다. 이것이 비극과 참사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재발의 고리를 차단하는 길입니다. 후진국은 사고가 나야 모습을 보입니다. 도덕사회가 못된 것을, 국민을 핑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급료를 받고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밥값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자기 할 일을 차질 없이 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견제장치가 상시 작동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견제장치는 피도 눈물도 없고 한번 물면 결말을 볼 때까지 결코 놓지 않는 ‘악마의 견제장치(Devil's Check)’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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