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는 소리 또 들어야 하나?
갈등
전진식
시를 쓰고 시인이라는 이름을 듣는데 오랜 세월이 흘렸다 시집 한 권이 책꽂이에 꼽히는데 버린 원고의 장수는 헤아리지 못했고
진흙탕 속을 걸으며
사랑과 고뇌와 인생본질을 이야기 하면서 경마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과거 시험이라고 절뚝거리며 한 달을 걸었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초라한 주막도 만났고
호롱불 속에 책장 넘기는 소리로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 바람 소리도 들었다
금수강산을 셈하다가 삼수나 사수라는 것도 있었는데 기억이 아득히 멀다.
속이 타서 원고지를 불태우며 하늘의 별을 헤아리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절박한 가슴이 다시,
"아니다"하고 필을 들었는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컴퓨터 자판 몇 번 두드리다가 합격 통지를 받았다는 아들 녀석은 내게 곁눈길 한 번 하고는 콧노래를 날린다
순례자에게 건네는 물 한 방울도 없이 모래바람이 덮인 우물 위로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휙휙 날리는 언어의 껍데기가 도로를 주행하고
광장을 가득 메운 시인들
詩라는 것의 깊은 우물이 말라가고 있다
나는 소주를 마신다
제기럴, 꼰대라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하나?
소주 몇병이 나동거라지고 새벽닭이 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캥긴 눈을 들어 책꽂이를 보니
달랑 시집 두 권
심장을 태운 나의 전신이다
쉬었다가 가자
억눌린 가슴에 돌아 앉으니
산꼭대기에서 하늘을 보며 울부짖는 늑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