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瞭思考

by luvornut

게으름을 부려 제때를 놓치고

어딘가 가야 하는 길에

간소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체하겠어요 하하)

의도된 건 아니었으나, 저의 이빨 모양을 보며

유리 이사금과 석탈해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남해 차차웅(신라의 왕)이 죽자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했었고,

그의 장남(유리)과 사위(석탈해)가

이빨자국을 통해 왕위 계승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석탈해가

새로운 왕으로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떡을 물어 이빨자국을 비교해

더 많은 이가 지혜로우니

그렇게 통치자를 정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빨자국이 더 많았던 유리가 이사금이 되어

유리이사금 - 탈해이사금 순서로

신라의 군주가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얼토당토하지 않고,

나라의 안위를 정하는

중대한 사안에 이럴 수 있나 싶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진 임금과

국가를 위한 믿음이 중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마음속에는 고유한 국가가 있고,

그것을 통치하는 것은 스스로가 되어

남에게 흔들리지 않고 올바르게 나아갈

어진 군주와 성인이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정답이다 연금술사)

마음속 한켠에 타인과의 관계로 남겨진

이빨자국 같은 상처가 많을 때

더 현명하게 나아가지 않을까요? 인생을

같은 실수와 고통, 상처를 반복하고 싶은 건

아무도 없을 테니까

최근에 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일지,

BDSM이라 불리는 인간의 특정 심리적 성향에 대해

사디즘의 경우 인간의 가학성,

공격적인 성향이 타인의 존중받지 못함에 따라

발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고

자기 자신이 무쓸모함에 따라

타인을 가학적으로 공격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숨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능력, 무쓸모, 열등감, 반항, 소유, 지배

프로이트는 이 가학적인 성향이

스스로에게 향할 때

마조히즘이 발현된다고 했는데요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닌,

고통을 겪는 상황을 원하는 것이며

예를 들면, 이는 고통의 가혹함보다

고통 이후의 쾌락이 더 강하게 존재하기에

(약속을 안 지키면 혼날 것을 알지만, 혼나면서도 반복하며 이후의 일탈이 더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등)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한 이유로

흥미롭다고 꺼낸 것은 아니며

위에서 상처, 고통의 반복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얘기로 돌아와,

위와 같은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왜 건강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가로 이어집니다

어찌 보면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제 모습이 겹쳐 보이네요

(거울을 보는 느낌, man in the mirror)

인간의 심리는 무척이나 다양하면서도

단순한 구조를 띤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집단은 가족입니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족 구성원 및 역할수행이 비슷하게 이뤄진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하며 비슷한 사회를 구성했을 겁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개인의 성향의 차이와 유년, 청소년기의 적절치 못했던 관계의 정립, 폭력과 과도한 보호 등의 이유로

인간은 다양성을 띠며, 이로 인한

결핍, 즉 위에서 실컷 떠들었던

가학적인 성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복잡해 보이네요

(원래 그런 걸까요?)

이것은 쇼펜하우어가 주장했던

인간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원하는 대로 원할 수는 없다 라는

내용과 비슷하네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함과

더불어 인지한다 할지언정 타인에 의해

나의 건강한 관계와 사랑을 거부하며

원하는 대로 원할 수 없는 것

자신 스스로를 고통받게 하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행위 하는 자가 되어

자신 스스로라는 국가를 망가뜨리지는 않는지?

쇼펜하우어에 대해 잠깐 더 얘기하자면

쇼펜하우어는

사랑의 본질은 성적인 욕구(외적인 부분)라 말합니다

그는 묻길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유년기로 나이를 돌려놓았을 때도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얘기하며

(코난이냐?)

저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며,

사랑에서 외모는 일정 부분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외적인 부분 중에서 체격이라는 요소를 볼까요?

만약 당신이 당장 생존해야 되는 원시시대라면

체격적으로 건장한 이가

식량을 구하는 면에서 유리했을 겁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생존을 위한 끌림(사랑)

이것을 쇼펜하우어는 사랑이라고 얘기하나,

지금은 아쉽게도 생존을 위한 것이

음식에 국한되지 않고

자산과 노화, 질병 등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인 기능이 추가되었기에

외적인 부분을 포함한

어느 정도의 재산과 성격적인 부분까지가

사랑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짐승과 인간의 다른 점이며

짐승은 더 강한 수컷, 더 영리한 암컷

더 생존에 유리한 종자를 남기는 것이

첫 번째 의식(意識) 혹은 본능(本能)이라면

인간은 좀 달라야 된다는 저의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사랑하지 않아야 하고

만약 상대방이 나를 존중해 주지 않으며,

내가 상대를 존중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과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그냥 물 흘러가듯 자신을 위해 살아가면 됩니다

네 이것은 저를 위해 쓴 글입니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사람을 또 믿을까 봐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여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원하는 대로 원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의 자유의지니까요

어딘가를 가고 있던 저도

곧 종착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때의 저를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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