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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친구가 뭉쳤다!

by 나탈리 Mar 18.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겨울이 호락호락 물러가기 싫은 모양이다. 롱 패딩을 입고 나섰건만, 심청 궂은 바람 탓에 몸은 절로 

움츠러들고, 두 손은 호주머니를 찾아 숨기에 바쁘다. 이러다 넘어지면 큰일이다 싶으면서도 장갑은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둔 채, 자칫 위험한 자세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종종걸음도 걸어가며 수서역에 도착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 그런지 역사가 꽤나 붐비는 모습이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중하는 사람, 배웅하는 사람들의 아쉽고 설레고 반가운 마음들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 수서역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가는 사람’이 되어 설렘의 에너지를 뿜어내 본다. 대합실 이곳저곳을 느릿느릿 거닐다, 출발 십오 분 전쯤 승차할 때까지. 


서울 팀 둘과 고향 팀 둘, 네 친구가 정읍에서 뭉치기로 한 오늘! 혼자라면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조용히 

휴식을 취해도 좋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예감......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서 기다리던 친구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야기보따리부터 뒤적거리는데, 품위와 익살을 지닌 친구의 말발에는 뭔가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이 존재했으므로, 나로선 경청의 자세만 잘 갖추면 되었다. 알고 지낸 시간에 

비례하여 화젯거리는 무궁무진! 그러니 다른 승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음성을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추임새는 간결하게, 열차 운행 시의 소음까지 감안해 가며 묵은 화제를 소화해 내는 조심스러움! 한 시간 반이  일 분 삼십 초처럼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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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향은 좀 따뜻하겠지, 내심 기대를 품은 채 도착해 보니 웬 걸, 성난 기세로 나그네를 밀어붙이는 찬바람이 기대를 일거에 날려버린다. 난폭한 환대. 입춘도 우수도 지났지만, 내가 그리 쉽게 자리를 내줄까 보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겨울이 엄포를 놓는 것만 같다. 그래도 마중 나온 친구로 인해 마음은 금세 봄바람처럼 훈훈해진다. 친구의 얄따란 옷차림이 자못 신경 쓰여 점심을 해결한 후 곧장 카페로 직행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친구가 오기까지, 셋이서 한층 강화된 수다를 원 없이 떨기로 했다. 묵고 묵은 얘기,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단골 메뉴부터 따끈따끈한 신상까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수다의 진수란! 접시가 깨어진들 대수랴, 뜨거운 음료가 식어간들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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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 그림 : 여인들의 마음만은 이팔청춘......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우리 넷은 공동으로 보험을 들었다. 우정이라는 종신보험을. 한 번 들면 영원히 해약 

불가(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이고, 중도인출이 무제한 가능하나 원금은 전혀 축 가지 않을뿐더러 

갚지 않아도 되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는 보험을. 우정을 빌미로 구속하지 않으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행운을 빌어주기. 생각날 때 편지나 전화로, 카톡으로 안부 물어주기. 만나면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기. 사십 년 넘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보험을 유지해 왔다. 연락이 뜸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항상 거기에 네가 있어서 참 좋아.” 

이런 마음으로 살았는데, 삶이 우리를 속여 온 때문인지, 아쉽게도 벗들의 결혼식에는 참석을 못했었다.

그래도 서운한 감정은 키우지 말기로 했다. 서운함이 우정을 야금야금 갉아먹지 못하도록.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우정을 바라며......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우정을 바라며...... 


오늘의 주인공인 친구는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모친상을 당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셋 다 참석을 못하고 

부의금만 보내게 되었다. 애도의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하고 열적은 마음을 달래려 이번 

만남을 계획했고, 하필 이렇게 추운 날이 그날로 낙점이 된 것이다. 셋이서 주인공을 기다리며 꺼내 보는 추억 조각들은 빛바랜 종잇장처럼 아련 아련...... 그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 겨끔내기로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고 서로 네가 이쁘니, 내가 이쁘니 거울 앞에서 난리법석을 떨었던 일을 한 친구가 끄집어낸다. 세월을 좀 탄 듯한 웨딩드레스였지만 심플한 순백의 드레스는 꼬마아가씨들을 마냥 설레게 했다. 한 번은 넷이서 다른 친구 집(과수원집)에 단체로 몰려 가 친구 어머니의 빨래도 도와주고, 친구 동생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도 

먹고, 사과도 한 보따리씩 얻어 왔었다. 무거워도 무거운 줄 모르고 모시고(?) 왔던 친구네 사과. 사각사각, 

달콤도 하였다.


주인공답게 제일 늦게 나타난 간호사 친구는 근무를 마치자마자 달려오는 길이라 제일 대면할 시간이 적어 

아쉽기만 하다. 만학도로 젊은이들과 겨뤄가며 고생고생, 간호사 타이틀을 얻은 멋진 친구. 엄마처럼, 고향집을 홀로 지키시던 친구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한 달 정도 노환으로 고생하시다 가셨다 한다. 친구 부모님은 두 분 다 울 부모님과 연세가 같아 우스갯소리로 계 묻자 했었는데, 울 엄마와 꼭 1년 차이로 세상과 하직을 하직하신 친구의 어머니! 부고를 받고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엄마와 달리 오랜 병상 생활을 안 하신 점이 부럽지만,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을 친구에게 그것이 위로가 될 순 없으리라. 


감추듯 껴안고 살아오던 서러움을 내어 말리자, 꼬깃꼬깃했던 것이 반듯하게 펴지며 생기를 띠고, 해부된 슬픔에서는 유려한 비늘 같은 반짝거린다. 불편한 진실은 새로운 자극으로 치환되기도 하고, 그루터기만 남은 기억은 본체와 만나 한 편의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생성해 낸다. 

그 시절 너는 이러이러한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곤 했어. 어 정말? 그래, 내게 그런 꿈이 있었지. 

내가 그 말을 했었나? 아, 시간아! 왜 그리 급히 간단 말이냐. 당일치기는 너무 아쉽구나. 우리 다음엔 1박 2일로 모이자. 그러자꾸나...... 

한 상 그득 차려진 보리굴비 정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고풍스러운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전통 쌍화차를 홀짝이면서도 끊임이 없는 여인들의 수다! 헤어져야 할 시간은 다가오건만 누구도 먼저 일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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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동생 집이 찻집에서 지척이라 내시경을 받은 동생에게 죽을 배달시켜 주고는 현재 위치를 밝혔다. 깜짝 놀라 집에 오라고 난리인 동생도, 모임 특성상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나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수면내시경을 받아, 저는 운전을 못하고 제부를 시켜 언니를 바래다주고 싶어 안달인 동생을 말리느라 진땀깨나 흘려야 했다. 

“친구가 바래다 주니 걱정 붙들어 매고 죽 천천히 먹고 쉬어라. 꽃 피고 새 울면 한 번 내려 오마. 내일 출근해야 하니 이 언니는 간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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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말하라 해도 지치지 않을 익살쟁이 친구와, 음성이 어린 새처럼 날로 경쾌해지는 것이 세월이 저 혼자만 피해 가는 것만 같은 친구, 화통한 웃음소리에 수줍음과 터프함을 지닌 개성만점 친구와 다 같이 모인 게 얼마만인지. 엄마 살아생전, 텃밭의 들깨 타작을 걱정하시기에 해결 차 내려갔던 이후로 처음이니 거의 삼 년 만이다.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고 겨울 추위와 노인의 건강은 아무도 장담 못한다더니, 방안에서만 생활하실 망정 비교적 건강하신 듯 보였던 엄마의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줄이야. 끝내 우리 가슴에 깊은 우물 하나씩 떨궈 놓으시고 엄마는 떠나셨다. 친구의 가슴에도 깊으나 깊은 우물이 자리했을 것이다.  


벗들과의 시간과, 나누었던 대화, 꺼내 봤던 추억, 웃음, 사나운 겨울바람도 모두 차곡차곡 저장되어, 만기 

없는 우리의 우정에 복리이자를 선물해 주었음...... 그리고 다른 벗들의 어머니들 아무쪼록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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