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아도 될까, 피어도 될까
세상은 저리도 시끄러운데.
눈 여겨 보아줄 이 있을까?
봄 같지 않은 봄, 어찌 견디나
외로이 떨기는 싫어
외로움에 떨기 싫어
좁은 창살 틈 비집고
앙증맞은 주먹 펼쳐 보이는
아가 민들레
사진 좀 찍어 달랠까?
나왔구나, 민들레
기특하다 민들레!
기특도 하여라
뒤꿈치를 밟혀도
운동화 끈이 풀려도
무표정한 사람들 멈출 줄을 모르고
한결같은 기다림
진정한 봄 기다리는
민들레가 한껏 쪼그라든 심장을 향해 손짓을 한다. 사진 좀 찍어달라고. 가로수 가장자리의 수목 보호판 틈을 용케도 비집고 나왔다. 생각할수록 기특한 아가 민들레. 두어 컷 찍어서 가족 단톡 방에 올렸다. 즉각 반응이 온다.
"머리(꽃)는 어딨어?"
"얘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아가야.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단다. 조금 자라면 잎사귀 한가운데에서
줄기가 나오고 화관 같은 노란 꽃이 나올 거야."
"그래? 나는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줄 알았네."
미소로 던져보는 말 한마디.
"민들레에게 사과해! 무관심해서 미안하다고."
"민들레야, 미안해! 너무 무관심해서 정말 미안해."
동화 같은 얘기를 하는 순간도,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벚나무의 가지가지를 살피면서도, 잿빛 구름은
마음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어야 할 것 같은 4월이 왔는데, 하루
하루는 왜 이리 암울하고 힘든지. 그날의 후유증으로 미소는 사라지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일마저 의미를 잃어갔다. 꽃은 피고 연둣빛은 사방으로 번져가고, 새들의 지저귐마저도 연둣빛으로 채색된 듯 싱그럽기만
한데, 눈빛을 빛내며 그들을 반기기가 겁난다. 이 작은 행복마저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날 이전에는 참새 울음소리에서도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찾고는 했는데...... 그날, 그런 날은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꽃들아, 연초록 잎들아, 미안하구나. 내일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 내일이 오는 게 기대되면서도 두려워. 내일이 지나면 민들레에게도 눈맞춤을 더 해 줄 것이고, 사진도 더 많이 찍어 줄 수 있을 거야. 진달래 화전까지는 못 만들어도 벚꽃구경은 할 수 있을 거야. 너른 들판으로 나가, 햇살을 움키며 푸르름을 마음껏 들이마실 거야. 그리고 베르테르의 편지 대신 도서관에서 대출한 돈 까밀로를 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