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를 갔다가 감기를 달고 왔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이었는데, 하필 옷차림이 좀 허술했던지 대번에
불청객이 따라붙어버렸다. 꽃들이 미리 언질이라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꽃구경도 좋지만 봄바람을
조심하라고. 기나긴 목을 특히나 잘 감싸고 다녀야 한다고. 겹매화꽃의 아담하면서도 소박한 미소가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던 그날의 한강시민공원! 그리 크지 않은 매실나무가 정답게 모여 앙증맞은 송이송이
겹꽃을 가지 가득 달고 있는 모양이,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축포를 쏘아 올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 손수건 한 장으로 감싼 목에 냉기가 스민다 한들 좀 서늘하구나, 넘어갈 수밖에, 더 신경 쓸 겨를이
있었을까? 아차산을 한달음에 평정하고 한강물에 목을 축인 바람이, 사진만 찍으려 하면 머리카락을 날리고, 옷자락을 흐트러뜨리고 심술을 부려도, 우리의 사진에의 열정을 결코 막지는 못했다. 눈으로 감상하기는
잠시, 찍고 찍히고 하며 사진에 올인한 사람들이 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르던 그 틈을 엄습한 감기란 놈!
감기 그까짓 거 무시하려 했다가, 작년 여름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로 지독하게 고생했던 기억이 나,
상비 약부터 얼른 챙겨 먹었다. 한데, 상비약은 좀 독한 모양으로, 약기운에 취해 일을 하려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콧물은 흘러내리는 대신 비강에 머무르며 점막을 간지럽히고, 마스크를 날려버릴 만큼 세찬 재채기가 수시로 발사되곤 했다. 어질어질, 그네를 타는 듯한 느낌, 바닥은 왜 이렇게 폭신폭신하고, 의식은 왜 또,
저만치 튕겨져 나가 힘들어하는 육신을 지켜보고만 있단 말인가? 열은 오르는 듯한데 체온은 삼십육 도
정상! 컨디션은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한데, 체온이 정상이라 상비 약만으로 그럭저럭 삼 일을 버텼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병원에 가자. 그래도 상비 약보다는 처방 약이 낫겠지.’
“엄마, 얼른 병원 가, 제발!”
약 기운 탓에 힘들기도 하고, 귀찮도록 외쳐대는 아이의 애원도 있고 해서, 이비인후과를 찾아, 항생제까지
포함하여 5일 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얼른 떨어지거라! 또 한 번의 꽃놀이가 예약되어 있단 말이다.’
사실 딸아이의 강권에 못 이겨 억지 수락을 했지만, 쉬는 날이라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것은 이 화려한
봄날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나들이도 가고 꽃놀이도 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이 봄날에는.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봄이기에, 봄에 대한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봄의 윙크에 소박한
미소라도 지어 보여야 하는 것! 그러니 콜록거리며 또 무슨 꽃놀이냐고,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는 하명만은
거두어 주시오, 옆 지기 님. 꽃구경 한 번 요란하게 한다는 핀잔도 말고요.
금요일은 완전 초여름이나 마찬가지였다. 23도라 하여 라운드 티셔츠 위에 남방셔츠만 살짝 걸쳤으나, 그
셔츠마저 벗어버릴 만큼 날씨는 장난이 아니었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낮의 태양빛은 강렬했다. 선글라스와 양산으로는 역부족일 듯하여 잠시 커피숍으로 피신,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사부작사부작 성내천 벚꽃 터널을 향해 걸었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평일이라 좀 한산할 거라는 바람과, 그래도 불금이고 주말의 궂은 날씨 예보도 있겠다, 꽃구경을 위해 오늘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반반이었는데, 바람은 한낱 희망사항에 그치고 말았다. 역시나 우리처럼 최적기를 놓칠세라, 만개한 벚꽃을 만나기 위해 행차한 사람들로 성내천 벚꽃 터널은 몹시 붐비고 떠들썩했다. 주인을 졸라(?) 꽃구경 나온 반려견들을 수도 없이 눈으로 쓰다듬어 보고, 유모차 안의 영유아에게는 사랑을 가득 담아
눈인사를 건네도 보았다. 꽃보다 예쁜 아가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찬사를......
꽃 무더기를 배경 삼아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는 자세로 포즈를 취하느라 열연 중인
배우들. 그 배우의 착실한 사진사가 되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지인들. 꽃송이를 오가며 신나라 조잘대는
참새들까지, 요란한 봄날의 잔치에 한 가락 하느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들 열정적이다.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열심히 딸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마도 이백 장은 족히 넘을 듯.
그날 저녁, 옆 지기에게서 정신이 외출 나간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차례의 꽃놀이 – 날씨가 실로 극과 극이었다- 가 남긴 후유증인 ‘감기’와 ‘정신의 외출’을 되돌리려 애쓰는 중. 외출 나간 정신이
낱장 꽃잎처럼 하롱하롱 우주 한 공간을 유랑하는 이 봄, 아까운 이 봄......
하프 선율로 꽃그네를 밀어주는 바람
가녀린 꽃잎 하늘하늘
우주를 떠돌아
하롱하롱 나에게 오렴!
꽃보라 휘날리면 모두가 어린아이
두 손을 모아들고 꽃잎을 받으려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꽃잎
마음을 비운 사람의 머리와 옷자락을 어루만지네.
겹겹이 뭉쳐 함박웃음
흩날릴 땐 비장함으로
쓰러져 누워서는
봄이 다 가도록 사라지지 않을
가슴속 연분홍 생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