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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유미 씨

배려인가, 과잉보호인가?

by 나탈리


“유미 씨는 참 행복하겠어요.”

“갑작스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두 분이서 유미 씨를 아기처럼 감싸고 신경 써 주시니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게 어찌 된 거냐면, 한 번은 밥을 푸던 유미 씨가 접시를 놓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어요. 그 후로 편의 상, 밥과 국을 저희가 퍼 주고 있는 건데......”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스물여덟 아가씨를 오냐오냐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게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식사 시간마다 우리의 배식 도움을 지켜본 수많은 시선들은 한결같이 이 같은 우려를 맘 속에 품었던가......

사무실 직원이 어느 날인가는 작정하고 내려와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유미의 작은 키로는 밥을 덜기가

불편하고, 한 번의 사고가 있기도 하여 밥을 대신 덜어주게 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낸 모양이다.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유미가 반찬을 덜고, 밥을 푸는 데는 시간이 좀 많이 걸리므로, 유미로 인해 느려지는 배식시간을 좀 줄이고픈 계산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던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밥을 덜어주고 국을 떠

주느라 티 나지 않게 부산을 떨던 우리! 작고 귀여운 유미 못지않게 눈에 확 띄는, 조금은 볼썽사납고

우스꽝스러웠을 그 모습을 생각해 볼 적에,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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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는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고, 유미 씨를 고용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물론 급여를 여기서

주는 건 아니지만, 일은 여기서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유미 씨가 자립할 수 있도록 우리 센터도 나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도와줘 버리면, 유미 씨가 다른 곳에서 일을 할 때도

타인의 도움만 의지하게 될 거예요.”

“맞는 말씀인데, 어느 선까지 유미 씨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면 좌절이 올 것이고,

그러면 일에 흥미를 잃어버릴지 몰라 조심스러워요.”

“사실 선생님들이 두려운 것은 유미 씨가 실수하는 것보다, 실수하고 난 후의 일인 것 같아요. 뒤처리하는

일이 번거로우니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거죠.”


구구절절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뒤처리나 마무리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유미에게 어디까지 일을

맡겨야 하는가? 반복학습으로 인한 향상은 어느 정도까지일까? 이제부터라도 독하게 맘먹고 훈련을

시켜야 하나...... 배려가 지나쳐 과잉보호로 오인받게 된 상황, 첩첩산중에 들어선 양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디까지가 친절이고 어느 선을 넘으면 과잉보호가 되는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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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 작, 보리라 이름하는 모델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학대범죄 유무가 입사 시 필수 체크 사항일 만큼,

어르신과 장애인에 대한 친절은 중요한 행동지침일 수밖에 없는 직장이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 꺼내었다가

행여 학대자의 낙인이 찍히면 큰일이었다. 우리 직원들의 모토는 '말을 꺼냄에 있어서도 신중하면서도

친절하게,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따뜻하게!'일 터였다. 동료나 마찬가지인 유미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려

애쓴다는 것이, 어쩌다가 도를 넘고 말았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렇다! 친절이 능사는 아니다. 지나친 친절은 유미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유미의 자립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유미의 녹록지 않은 삶을 지탱하는 데 있어 자립보다

더 큰 지팡이는 없을 것이다. 동료 샘과 같이 유미의 지팡이가 튼실해지도록 노력하기로 다짐했고,

세탁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섭렵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전에는 접기 까다로운 것은

아예 제쳐두고 쉬운 것만 골라 밀어주던 것을, 이젠 얄짤없었다. 우주복이면 우주복, 매트리스커버면 커버,

부피가 크고 두꺼운 이불이며 시트 같은 것도 가리지 않고 해 보라 시켰다.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했음일까? 쉬운 것만 정리해 놓고, 어려운 세탁물은 아예 시도도 않고 멀뚱멀뚱 앉아 있던 유미가, 어려워 보이는 과제 앞에서도 열심히 수행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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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차를 타 주는 일도 중단하고, 정수기 이용 시 유의점과 함께 스스로 하게끔 가르쳤더니, 커피도

곧잘 타는 유미! 이렇게 잘할 수 있는데도 쓸데없는 친절로 자기만족을 해 왔구나, 반성 아닌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식당에서는 국이 담긴 보온통이 너무 깊고 뜨거우므로, 국만 떠 주기로

직원 분과 합의를 보았다.

발열체크도 직접 해 보라 권유했는데, 체온계를 지그시 이마에 밀착하고 몸소 행하는 의식에는, 타인의

손으로 행해질 때마다 앞서던 긴장감과 미세한 떨림이 일지 않아, 유미로서는 그 의식의 순간이 더없이

신선하고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적는 것이 어려웠던지, 36.1도를 3.61도로 적어 놓았다.

한 번 안 되면 두세 번 반복하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몇 번 일러주자,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실수하지 않고

능숙히 적었다. 그러고 나서는 파일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일도 척척!


안쓰러움과 연민, 앞장서서 해결해 주고픈 마음을 접어버리니, 어느 정도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유미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딸뻘 되는 유미를 너무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수저질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어리석음! 늦었지만 과잉보호를 끝내고 과잉친절도 더 이상 베풀지

말자. 유미가 직장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배려를, 그러나 격려만큼은 절대, 아끼지 않기로, 하자.

유미는 자립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유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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