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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생들과 '라떼'를!

by 나탈리


앞치마를 두른 요양보호사 실습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두셋씩 모여 담당자들의 지시를 따르거나

어르신들의 휠체어를 밀거나 하며, 주어진 시간을 사위려 애쓰는 모습! 바쁜 와중에도 살포시 감정이입이

되어서 지난날을 반추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나...... 그래도 저 실습생들은 여러 명이서 같은 곳으로 배정이

되었으니 심적으로 의지가 되어 덜 외로울 것 같다. 나란히 모여 식당도 가고, 왁자하게 떠들며 카페도 가고,

옥상에 가 해바라기도 하는 것이 단란하여 참으로 보기가 좋다.



젊은이들이 기겁하는 라떼 한 잔 마셔 볼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라떼 한 잔을...... 2019년, 그러니까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여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서 교육비를 반 정도 감면받고(한 푼에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주부이기에) 가까운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등록했다. 교육생들은 5, 60대 연배의 중장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막내는 50대 초반인 나였다. 50분 강의에 10분 휴식으로

8교시(8교시로 기억하는데 좀 가물가물.....)를 소화하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원장님을 비롯한 명

강사님들의 강의는 유머러스하고 흥미로웠으나, 앉아 있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쉬는 시간마다 경직된 허리를 펴고 돌리느라 진지하던 모습들. 8교시를 무난히 마치기가 쉽지 않은 연배의 학생들에게 스트레칭은, 수강을 위한 중요한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교육생들은 4주의 교육을 다 이수하고 서너 명씩 흩어져, 실습 점수를 얻기 위해 현장으로 떠나야 한다.

일주일은 요양원, 일주일은 재가센터나 데이케어센터에서 요양보호사의 실무를 익히고 체험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유익한 강의와 스트레칭과 웃음으로 만발하던 배움의 시간이 무르익더니 어느덧 그날이 다가왔다.

한 달 동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려니 제법 섭섭했다.

"모두들 시험 끝나고 만납시다."

약속처럼, 반가운 해후가 있을 예정이어서, 우리의 발걸음이 석별의 아쉬움으로 마냥 얼룩지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네 명이서 한 팀으로 배치되었던 대한**요양원에서의 실습 기간은 일주일, 정확히 말해서 5일이었는데,

긴장과 떨림의 연속인 데다 시간은 거북이보다 몇십 배는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사방에 CCTV가

감시의 눈을 번뜩이는 곳에서 더디고, 지루하고, 할 일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시간을 견디는 것도 교육의 한 과정이었을까.


할 일을 정해주면 좀 나았다. 어르신 방방마다 있는 화장실 청소나 복도 청소, 어르신 식사시중이나 식판

처리, 앞치마세탁 같은 일, 어르신 목욕 후 머리 말리는 일, 세탁물 정리 같은 일을 정해 주면 신나라

해내었다. 어르신들 목욕이 끝나기 전까지는 어르신들 감기 들까 봐 에어컨도 틀지 않았는데, 그럴 때

화장실 청소를 연거푸 하고 나면 땀으로 멱을 감을 정도가 될 지경이었다. 땀 많은 나로선 그 시간이 제일

고역이었다. 때문에 실습생으로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흘린 땀방울은, 자격증을 떠올릴 때마다 농도와 향내를 더할 거라 감히 확신한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어르신 다섯 분이 누워 계신 방에서 말벗 내지는 어르신들이 혹 위험에 처하지 않나

살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이 심한데 그때마다 적절히

대답을 해 드려야 했고, 등이 가렵다는 어르신 등을 긁어 드리기도 했으며, 자녀를 기다리는 탓에 날짜를

자꾸만 묻는 어르신께는 손가락으로 셈까지 해 보이며 날짜를 알려드렸다.


세수를 자주 하던 한 어르신이 그날도 머리를 반복하여 감기에 닦는 것을 도왔는데, 곧장 침상에 누운 어르신이 기척도 없이 너무 조용한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다가갔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고, 시선이 날아가 꽂히는 손가락 가락마다 퍼지고 있던 청보랏빛!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청색증? 바로 뛰어나가 데스크의 선생님에게 보고했다. 사색이 되어 뛰어들어온 주임선생님, 뒤이어 간호사 선생님이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애쓰는

가운데 119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원장님의 다급하고 화난 듯한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119 대원들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승강기 사용을 한시적으로 통제하는 메시지였다.



언제라도 그러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라지만 생생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보니 순간적으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곁에서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날짜를 자꾸 묻던 어르신이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 안심하시라 별일 아니다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르신은 어느새 그럴싸한 소설의 한

대목을 지어, 궁금해하는 다른 어르신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르신의 창의적(?)이고도 즉흥적인 얘기를

들으며 황당한 뇌의 마술에 속은 기분과 함께 치매에 관한 무섬증이 우럭우럭 일었었다.


119를 타고 가신 어르신은 그 후로 어찌 되었는지...... 요양원 실습을 마치고 데이케어센터에 가서 어르신

목욕시키는 일과 여러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며 동참, 식사 도움을 실행하는 동안에도 어르신에 대한

궁금증은 뇌리에서 영 떠나지를 않았다. 마지막 관문인 재가센터에서의 실습은, 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어르신의 일상을 돕는 가벼운 일이어서, 다른 곳보다 제일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자격증 시험까지 무사히 마치고 모인 교육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처럼 극적인 체험을 한 교육생은

없었던 듯했다. 어느 어르신 댁에서 깻잎김치를 담갔다거나, 베란다 유리창을 닦았다거나 하는 일들을

나누며, 우리는 자격증을 위해 쏟았던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수고를 치하하고 위로했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던 초겨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한솥밥을 먹으며 교육을 받았던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를 꺼려한 데다, 자격증 취득 후 바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다. 당시

코로나가 주던 공포는 가히 상상 이상의 위력으로, 한솥밥 교육생이라는 애착의 고리를 무참히 끊어내기에

충분했으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그 밉살스럽던 바이러스가 오죽 드세었으면 코로나 이후로

요양보호사 실습도 온라인으로 대체되었을까. 지금은 코로나 공포로 떨던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또 얼마나 다행인가,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인연을 이어가기에 거리낌 없는 지금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실습 기간 동안, 체험 요양의 현장에서 실습을 잘 마치고, 성실하고 마음 따뜻한

요양보호사로 거듭나시길!

실습생들의 앞치마로부터 시작된 사념들을 반추하고 또 반추해 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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