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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스케치

소낙비를 기다리며

by 나탈리


일용할 간식을 챙겨 길을 나선다. 에코백이 묵직하면서도 든든하다. 무가당 두유, 구운 계란, 하루 견과

한 봉.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이 순간, 누군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일하기 위해 먹는다’

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것 같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바삐 움직이다 보면, 식사 말고 뭐 더 없소? 새참이

필요하오, 알림이 몸 여기저기서 울려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교통카드나 핸드폰을 점검하듯 아침마다

간식거리를 챙기게 된다. 건강을 생각하여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것부터 찾고, 즐겨 먹던 빵이나

과자류는 눈을 질끈 감고 저만치 밀어 놓는 것이 요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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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지가 무섭긴 무서운가...... 인쇄된 수치가 주는 중압감 – 당신은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입니다, 경종을 울리는 – 이 얼마나 크던지, 반드시 식습관을 고쳐 내년에는 검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게끔 하고 말 거야, 앙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심이 제법 다부진 탓인지, 빵과 쿠키가 식탁 위에서

하루 이틀 자리를 지키다가 냉동실로 직행을 하고 마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평소 같으면 냉장고

차지가 되기도 전에 벌써 소화되고 말았을 달콤한 간식들이, 냉동실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다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믹스 커피와 달달한 간식 끊고 근력운동 하기. 이 세 가지 과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피곤할 때나 식후, 또는 부침개 한 장이 간절히 생각나는 비 오는 날의 믹스커피 한 잔은

얼마나 오감에 만족을 주던가. 그 유혹을 매몰차게 끊고 허브차나 메밀 차 같은 밍밍한 맛을 음미하며

건강 과제를 수행해 내야 하는 하루 또 하루, 콜레스테롤 조절을 약에 의존해야만 하는 유질환자의 이

서글픔! 근력운동은 둘째치고 식습관이라도 고쳐야 하건마는 달콤한 것들의 유혹은 어찌 그리 끈질기기만

한지. 단호하게 손사래를 하나, 호시탐탐 달콤한 것에의 기억들을 들추어내는 뇌의 반작용에 무릎을 반쯤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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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완전히 끊기는 어렵고 차차 줄여 가자.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기 마련이니 끊어지기 전에 미리

줄을 좀 풀어줄 필요가 있지 않겠어? 이건 결코 굴복이 아니야.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고!’

이다지 완벽한, 합리화가 또 있을까? 의지도 약하기는! 그래도, 작심삼일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작심삼일을 연속해서라도 건강지표를 올려 보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다. 비 구경 몇 번 못하고 요상한 장마는 끝나버리고, 시원스레 한 줄금 소나기라도

내려 주었으면 싶은데 먹장구름은 어디로 숨었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소나기가 막 대지를 적실 때,

땅에서 폴폴 올라오던 잘 익은 수박 내음, 몰려오는 소나기를 피한답시고 안간힘을 다해 달음질치던

어린 시절, 어느새 쫓아와 나를 이길까 보냐고 툭툭 살갗을 때리던 굵은 빗줄기의 선득선득함을 기억한다.

그립다, 무더위로 달아오른 지구를 식혀줄 장대 같은 소나기가.


지하철로 향하는 동안도, 무심한 하늘은 뭉게구름만 피워 올리고, 간식거리와 접이식 우산과 교통카드와

핸드폰을 품은 에코백은, 응석받이 아기가 엄마 품 찾듯 어깨를 파고든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 소낙비를 그리는 정열의 여인이시어!’

든든한 응원군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여 하루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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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도 비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소낙비~ 정열의 여인 : 김동명 시인의 파초, 시 구절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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