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위를 비우자 주의’인 그가 아침부터 다짜고짜 청소기를 꺼내 와 코드를 연결한다. 평소보다 좀
늦은 식사를 하던 중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상도 안 물렸는데 청소기를 돌릴 거유?”
멋쩍은 듯한 웃음을 날리며 TV 앞으로 일단 후퇴한 그, 내가 설거지 모드로 들어가자마자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다. 기분 내키면 한 번씩 도와주던 그였기에,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가 보다고 짐작만 하였다.
후다닥 물걸레 청소기까지 밀고 난 그가 선포하듯 한 마디를 던지기 전까지는.
“얼른 준비해! 엄니한테 갔다 오자.”
호캉스 가느라 명절에도 못 갔으니 뭐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평일이라 차도 안 막힐 것이고, 핑 하니 다녀와도 괜찮겠다 생각은 들었지만, 뭘까? 이 개운치 않은 기분은. 하루 이틀 전이라도 미리 언질을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딸아이도 같이 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중요한 일은 사전에 의논하여 시간을 맞추는 게 순서일진대, 난 통보했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당일 아침에야 말하다니!
“혼자 가도 되는데, 혼자 가면 왠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청소기까지 돌리며 동행을 권유한 그의 궁색한 변명을 이해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칠보단장까지는 아니어도, 머리 감고, 찍어 바르고, 선글라스와 양산을 챙겨 그를 따라나섰다. 마침 코에 바람 쏘이기에도 딱인 날씨였다.
시어머니를 모신 곤지암 실촌 수양관까지는 좌석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길동사거리에서 1113-1번을 타고, 차멀미가 올까 싶어, 운전석 뒤쪽으로 두 번째 좌석을 골라 앉았다. 양산을 좌석 옆구리에 꽂아 두고,
매사 걱정이 많은 사람답게 찰칵- 소리가 나도록 안전띠부터 도킹하듯 잠갔다. 매사 태평인 그는 고속도로
진입하면 매어도 된다고 손을 놓고 있기에, 옆구리를 자꾸 찔러 기어이 매게끔 만들었다.
차창 밖의 가을빛 풍광을 감상하는 나와 달리 그는 핸드폰 탐색에 열심이다.
'핸드폰 없을 때는 무슨 재미로 살았던고, 창밖 구경이나 하면 좋으련만......'
굽이굽이 산등성 사이사이로 오목조목 숨어드는 골짜기, 구름이 그늘을 드리워 군데군데 얼룩진 초록빛은
애틋함을 띠고 단풍 옷을 머리에 덧쓰려 하는데,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가을 잔치 준비로 한창이다.
인간 세상이 궁금해 달려왔는가, 산줄기에서 한참을 벗어나 마실 나온 꼬마산은. 개구쟁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산. 저런 완만한 산이라면 열 번이라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초월 읍과 광주 시내를 돌고 돌아 도착한 곤지암 역 사방에는 그러한 낮은 산들이 많아, 수더분한 동네
아낙들의 계모임이라도 보는 듯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살포시 졸았던가. 아니, 눈꺼풀이 무거워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가 흔들어 깨운다. 곤지암 엘지 아파트 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들리고, 부랴부랴 카드를 태그하고 하차했다. 다리를 건너는데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양산을 펴 볼까......
“아차, 내 양산! 양산을 놓고 내렸나 봐. 어떡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 거야.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는데. 생일 선물로 딸들에게 받은 건데.'
아까웠다. 발만 동동 구르며 부리나케 버스 회사를 검색했다. 대원고속 경기사업부를 검색했더니 동원대학
영업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 번호를 눌렀더니 AI상담사가 나왔다.
‘이런, 나는 기계와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요. 사람이 나와야 내 급박한 상황을 설명할 것 아니냐고요.’
타들어가는 심정, 프로그램에 입력된 대로 응대하는 로봇의 단조로운 기계음!
혹시 몰라 114에 직통 전화번호를 물었으나, 점심시간이라고 1시 이후에 다시 하라고, 역시 AI 상담사의
친절한(?) 음성만 나올 뿐...... 그까짓 양산 그만 포기하라고, 속을 긁어대는 야속한 옆지기의 말, 말, 말.
그래도 포기가 안 되었다.
하필 어머니 뵈러 가는 길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떨떠름한 기분을 떨려버리려 애쓰며, 실촌 수양관까지,
한낮의 가을 햇볕을 머리에 이고 걸었다. 대로변 입구부터 여러 기업들이 산골짜기 틈틈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지, 솔솔,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내음이 풍겨온다.
‘근처에 견과류 가공업체가 있나? 아니면 누룽지 가공업체가 있나?'
냄새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채, 오르막 길을 한참 걸어 큼지막한 여러 동의 수양관 건물 중, 고색창연한 본관 건물에 이르렀다. 문지기 강아지가 멀찍이서 달려와 우리 주위를 맴도는 것이, 경계는 해야겠고 따분하니
좀 친해지고도 싶은 눈치다. 매번 올 때마다 파수꾼은 바뀌어 있지만, 성묘객을 반기며 경계심이 약한 순둥이들 같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석실 열쇠를 집어 들었다.
"간식이라도 좀 챙겨 오는 건데, 아쉽네요."
"여러 사람이 음식 주는 것이 강아지한테는 안 좋아."
참말로 생각이 많이 다른 두 남녀......
석실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다름 들어가 묵념을 한다. 시어머니는 참으로 아깝게 가셨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사고로 머리를 다치신 후, 병상에서 한 달 정도 고생하시다 떠나셨다. 연세라 연세인지라 지병도
있었지만 사고만 아니면 그리 쉽게 가시진 않았을 것이다. 사고 전까지 노인복지관에 혼자 다니실 정도로
비교적 건강한 상태여서, 우리에게 크나큰 안타까움을 남겨 주고 가셨다. 고령에 고관절 수술을 한 보람도
없이. 그는 내색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진 느낌이었으리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를 껴안고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그.
‘어머니 덕분에 공기 좋은 곳에 왔다 갑니다. 편히 쉬세요.’
납골당을 내려오는 길, 한결 마음이 가볍다. 열쇠를 반납하고, 아까와 달리 친근하게 다가오는 강아지와
한참을 놀아준 후, 아쉬워하는 강아지와 헤어져야 했다.
"곤지암 시내에서 점심 먹고 가요."
"길동 가서 먹지."
'어머니 뵈러 올 때면 이따금씩 들리던, 청국장과 떡갈비와 보리밥이 나오는 맛집 기행은 물 건너가 버렸네.' 한 시도 훨씬 지나 배꼽시계는 울어대는데, 또 좌석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길동에 내려서도 그는 어느 식당에 가자는 말을 안 한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무너지듯 소파에 앉자마자 밥 먹으러 나가잔다.
‘헐! 이제야?’
뿔따구가 났다. 이미 세 시가 넘었다.
“나가기 귀찮은데.”
“그럼 밥 차려.”
아아, 그 순간의 기분! 약속이 다르지 않냐고 항변할 기력도, 의욕도 없었다. 그이만 차려 주고 생으로 쫄쫄
굶어버렸다.
‘아침에 시설광풍을 내던 그 여세라면, 어머니 뵈러 동행해 준 마누라에게 밥 한 끼 못 사 주나?
양산은 그만 잊어버려. 더 좋은 걸로 사 줄게. 이러한 위로는 그의 사전에 생성될 수 없는 문장이란 말인가?
왜 날 번번이 시험에 들게 할까......’
연거푸 밀려오는 파도에 허우적대는 내가 구차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먼저 식사하러 가자고 왜 말 못 하냐고. 하지만 양산까지 잃어버린 그때 그 상황 속에서, 난 기대했다, 한 마디 위로를. 양산을
잃어버려 쓰라린 속을 감싸 줄 따뜻한 밥 한 끼를!
딸아이에게 불편한 심정을 고대로 들키고 말았다. 안타깝고 쓰리고 화나는 심정은 며칠 뒤, 그대로 한 장의
그림으로 창조되기에 이르렀다. 제 언니가 그린, 엄마의 뿔난 표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이 작은애의 심금을 울렸나 보다.
“엄마, 아빠 대신 내가 양산 사 줄게,”
골리앗 만하던 분노가 겨자씨만큼 졸아드는 순간.
“화성에서 이민 온 너희 아버지에게 그런 언어 좀 가르쳐 다오.”
“엄마 남편이잖우? 엄마가 해야지, 엄마도 못 가르친 걸 우리가 어떻게?”
“너희 아버지잖니?”
아이들이랑 키득거리며, 며칠 동안 삭혀 발효될 지경이 다 되어가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날려 보냈다.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 그 순간에는 왜 그리도 사람의 기분을 쥐락펴락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버스에서의 분실물은 역시 포기하는 게 현명할까? 버스에 놓고 내린 물건을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찾았다는
한 블로거의 글을 보았다. 일말의 희망을 안고 대원고속 홈페이지의 분실물 신고 센터에 분실물 신고를
했으나, 실망스럽게도, 버스에서 그런 양산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블로거의 글이 내겐
오히려 희망 고문이 된 셈이다.
'누가 주워 갔으려나, 요새도 남의 것을 주워 쓰는 사람이 있나? 혹 버스회사에서 귀찮으니 없다고 한 것은
아닐까?'
물건 간수를 소홀히 하고서 괜스레 원망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날려 보내려 하는 이 아둔함.
잊히지 않는다. 그날, 곤지암의 청아한 하늘을 이고 양산 없이 받아야 했던 가을볕 세례! 잃어버린 양산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