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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결 생각

서늘바람이 불면

환절기의 불청객

by 나탈리


갑작스레 목이 심상치 않다. 평소처럼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여, 잠을 잘못 잤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오른쪽은 그나마 괜찮은데 왼쪽으로 돌릴 때마다 비명이 절로

새어 나온다.

'또 너로구나,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목의 통증!'

미련스럽게도 방심하고 있었다. 해시계의 각도가 달라지고 바람결마다 가을 내음이 묻어난다 싶을 때,

미리 대비책을 세워 놓았어야 했는데...... 시원찮은 관절이 적응기를 힘겨워하며 관심을 가져 달라 요구라도

하듯 신호를 보내오기까지, 그저 무더위가 끝나 좋다는 점에만 온통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파스를 붙이고,

목수건을 둘러 서늘바람을 막고, 겉옷을 걸치고 하였으나, 그것 만으로는 부족한지 증상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을 간신히 달래어 업무를 했다. 틈틈이 목을 주무르고 스트레칭도 해 보아도 뭉친

근육은 도무지 풀릴 생각을 않고, 편두통까지 합세해 나를 힘들게 한다. 삼일째 한의원을 찾았다.


KakaoTalk_20251012_170235447.jpg Gemini 작품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하면서도 자주 오면 안 되겠지요? 속으로 반문해 본다. '아픈 죄인'은,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가운을

갈아입고, 납죽 엎드렸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침상의 일부분이 된 듯 누워 잠잠히 치료를 기다린다.

"물리치료부터 들어갈게요."

말미를 살짝 올려 설명하고 기계를 연결하는 간호사 님의 몸에 밴 친절......

전동 마사지기의 주먹손이 풀리곤 한다.

"살이 너무 없어서 기계가 자꾸 빠지는가 보네요."

간호사님이 다시 붙여 주어도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두 개가 압축이 풀려버린다. 귀찮아 내버려 두었다. 한 십 분 정도 마사지를 받고 나니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얼굴도 못 뵙고, 엎드린 채로 인사를 받고, 엎드린 채로 인사를 드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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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부를 촉진하던 의사 선생님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말씀을 하신다.

"목이 길어서 시원스럽고 좋긴 한데, 이런 목은 목 디스크 오기가 딱 알맞은 목이라, 이상이 있으면 치료를

충분히 받아야 합니다."

이런! 걱정 하나가 또 늘었다.

'코르티솔과 친하긴 싫은데, 걱정 호르몬이 다량 분비될라. 하여튼 치료 잘 받으란 말씀인 게지.'

알코올 내음이 코를 찌르고 드디어 부항과 침 시술 차례가 왔다. 따끔, 따끔, 예리한 침이 무방비 상태의

세포들을 흔들어 깨운다. 긴장과 미세한 떨림과 개미가 야무지게 깨무는 듯한 통증! 횟수를 헤아리다가

말았다.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서라면 열 번, 백번이라도 이 아픔을 참을 수 있으리.

"두통도 있었겠는데요?"

두통까지 짚어내시다니, 되게 신기했다. 열대여섯 번쯤 될 것 같은 침 시술이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가시고 간호사 님이 다가와 전침을 연결한다. 바늘이 톡톡 튀며 고주파를 몸에 흘려보내고, 목 언저리를 어루만지는 듯한 적외선 등의 따사로운 불빛! 케어받는 순간의 안온함에 깊숙이 잠겨 본다.


KakaoTalk_20251012_163758057.jpg Gemini 작품


문득 치료받고 있는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고슴도치 비슷하려나?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엎드려 무얼 하겠는가? 가뜩이나 피가 한쪽으로만 쏠려, 팔도 저리고 손가락은 감각이 없어질까 말까 하는

마당에. 죔 죔을 반복하니 감각이 조금 돌아온다. 휴우-, 치료받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자 발침이 진행되고, 발침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살 것 같다. 마지막 순서인 온찜질 차례.

따뜻한 찜질팩 위에 목과 어깨가 닿도록 천장을 보고 눕는다. 배 위에도 찜질팩, 종아리 밑에 받침대까지

대주니 자세가 더없이 편하다. 이 상태로는 한 시간도 좋이 견딜 듯하다. 달콤도 하여라, 소르르 밀려오는

졸음의 파도는! 간호사 님들의 얘기소리마저 자장자장, 자장가처럼 은은하기만 한데, 아쉽게도 반수면 상태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치료가 끝났다. 가운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나와 목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한결 부드럽다. 항상 이랬으면!


집에 와 치료받은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이는 당장 모니터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거치대를

'주문'하고, 남편은 ‘살이 없어서 그래, 살 좀 쪄!’ '주문'을 외친다. 피부가 가렵다 해도 살, 피곤해도 살,

살 때문이라 한다. 살, 살, 살! 언제부터 살 타령을 들을 만큼 내게 살이 부족했나. 이런 내가 무척이나 낯설다.

갑상선 기능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고, 하루 세끼 잘 챙겨 먹는데 뭐가 부족한가 말이다. 일전에는

동료에게서 갈비가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갈비뼈의 굴곡이 그대로 가운에 비친 모양이다. 갈비뼈가

짝짝이인 것(쉬잇, 이건 일급비밀이랍니다!)까지는 동료가 모르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하여튼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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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 반갑지 않다. 일을 하면 원위치, 치료받으면 좀 낫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만그만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러면 다 나았으려니, 병원을 찾지 않게 된다. 덕분에 통증은 만성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이 시점에선 일자목을 C자목으로 바꾸는 치료를 꾸준히 받아, 올바른 C자형 목이 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꾸준히, 충분히!

침구도 바꾸고 커튼도 갈아야 하고,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 가을, 목 치료에 신경 쓰다 이 아까운 계절을 다

허비할까 두렵다. 보느니 사위어가는 초록잎새들의 애잔한 눈빛, 석양에 물든 날벌레들의 군무조차도

멋스럽고, 투명한 하늘은 모든 것을 포용할 만치 높고 그윽하기만 하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기 싫은 풍경들, 눈길 닿는 곳마다 예술이 따로 없다. 사계절 중 유난히 짧은 가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람은 환절기가

너무, 너무, 너무나도 무섭다. (사슴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프냐, 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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