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모두가 선생님으로 통한다. 선생님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 어르신이거나 선생님이거나. 이름을
몰라도 괜찮다. 직책을 몰라도 선생님이라 부르면 무리가 없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위생원,
미화원, 실버 바리스타, 실습생, 시니어, 봉사자 할 것 없이 모두 선생님이라 칭한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굳은살처럼 박힌 인식이 한동안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타협의 징검다리를 지나 수용의 단계에 다다른 것 같다.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어르신들이 고맙고, 어색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으니.
한때 진짜 선생님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사랑과 격려로 제자들을 이끌어주시는 진짜 선생님. 선생님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밥 대신 무언가 특별한 것 - 이를테면 암브로시아(Ambrosia) 같은 것 - 만 드시는 줄
알았던 조무래기 시절,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이라도 들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슬프고 암담하기만 했었다. 사춘기는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서서히 눈을 떠 가던 시절이었다. 선생님도 때로는 실수를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감정의 기복에
따라 매를 들기도 하고, 그릇 행하기도 한다는 것을 모르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선생님' 소리에 이따금씩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고교 시절, 학급 임원을 선출하던 3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실장은 남학생, 부실장은 여학생이 맡는 게 관행이라, 적임자 추천을 받고 투표를 통해 일단 실장은 선출되었는데, 문제는 부실장이었다. 추천하는 학생도, 그렇다고 자원하는 학생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자, 담임 선생님은 골치가 아프셨던지 여학생 모두를 앞으로 나오라 하셨다. 이과라 여학생 수가 남학생에 비해 현저히 적어, 은근히 기가 죽어지내던 우리,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 나가니 칠판을 바라보고 서랍신다. 그리고는
열댓 명 밖에 안 되는 여학생을 일렬로 세운 다음 한 명씩 가리키며, 명령어를 던지셨다.
“얘가 부실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엇!”
담임 선생님이 부실장을 뽑느라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란 게 유치한 장난 같은 것일 줄이야. 정말 농담하시는 줄 알았다. 근엄하고 냉철한 눈빛에 경외감을 느끼던 차에 실망만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자존심은 곤두박질, 낯은 화끈화끈! 뒤통수가 간지럽고 자꾸만 엉덩이가 신경 쓰였다. 무슨 미스코리아 뒤태 선발대회도 아니고, 가뜩이나 부끄럼 많고 민감한 때에 그런 일을 겪으니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99프로는 줄어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쪽지에 적어 뽑기를 하시지...... 당시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지금 같으면 시끄러워질 일 아닌가?
결과는 당연, 얼굴이 제일 예쁘고 날씬한 친구가 당선되었다. 독특한 방식으로 선출된 미스코리아 친구는
부실장 역할을 그럭저럭 수행해 냈다.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건 사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때 알았다. 예쁘고 날씬한 게 벼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고금의 진리라는 것을. 차별도
않으시고 매사 일처리도 신속 정확하시던 분, 타박할 게 별로 없던 분이셨지만,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유쾌하지 않던 기억은 선생님이라는 빛나는 이름에 옥에 티처럼 붙어 다닌다. 인간적이고 친근했던 1학년 때 담임선생님에 비해, 지나칠이만큼 과묵하고 차가워,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던 분. 선생님! 저는 그때, 정식으로 부실장을 재선출하실 줄 알았답니다. 선생님의 이미지에 꼭 맞게요......
지금까지 참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렸다. 미스 리, 이 양, 신혼 때는 새댁, 출산 후에는 아이 이름을 따서 누구 엄마 등등. 직장에서 부르는 호칭 또한 다양했다. 이름 끝에 주부님을 붙여 부르거나, 이름 더하기 이모(요식업이 아님에도 그 회사는 이모를 고수했다), ~언니, ~여사님 등등. 직장에서의 호칭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하는지, 근래 들어 이름 끝에 님을 붙이는 호칭이 대세라 한다.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회사도 '님'을
사용하였는데, 이름이 불리는 순간순간마다 돋아나는 닭살을 잠재우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어색하기가
‘선생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선생님은 관공서나 114 같은 전화에서 가끔 듣던 터라 면역이
좀 생겼던가 보다.
선생님 아닌 선생님이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두 번째 겨울을 맞는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순간마다 기분이
숙연해지며 왠지 옷깃을 매만지기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 아줌마라 불릴 때와는 사뭇 다르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마주할 때마다 진정한 선생님은 어르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
소풍 먼저 오셔서 사랑이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고, 약해진 육신일망정 요양생활에 순응하시며,
영원으로 흐르는 순간을 아름다이 채색하고 계시는 어르신 선생님들. 한 해의 끝자락을 지나, 다가오는
새해에도, 온기로운 그 미소가 내내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