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2~3배속으로 손을 놀리기 시작한다. 퇴근을 위해 살고 퇴근을 위해 싸우는 병사처럼 자못 비장하다. 출근길에 나선 지 여덟 시간! 한 시간여를 더 채워야 자유시간이 되고 자유시간이 되면 우리 병사들은 퇴근길에 오를 수 있다.
아홉 시간 중, 점심시간 외의 쉬는 시간은 이십 분 정도. 물 마시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끝이다.
숨쉬는 것 말고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 현장. 식품을 다루는 일이기에 청결과 위생은 기본이다. 갈증이 나도 밖에 나가 해결해야 하니 너무 번거로워 참는 게 다반사다. 내게 수분을 달라, 달라, 달라! 세포들의 아우성을 잠재우고 내달려온 시간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코 앞인 것이다.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숨도 차오르고 땀에 젖은 머리칼이 모자 밖 구경을 하고 싶어 한다. 어깨가 삐뚤어졌는지 한쪽 앞치마 끈만 자꾸 흘러내린다. 부지런히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정리와 청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후다닥 해치운다. 우사인 볼트만큼 빠르다. 다들 집에 떡 붙여 놓고 나옴? 누군가가 농을 던지는 통에 씨익 웃음을 머금으며 쓰레기봉투를 힘껏 묶어 내놓는다.
마지막 현장 점검 후 불을 끄고 탈의실 입장 ~. 10초 내로 옷을 갈아입고 부리나케 나오는 전우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땀에 젖은 채로 떡진 머리, 대충 꿰어 입은 옷과 신발, 구겨진 가방...... 손으로 쓰-윽 한 차례 훑고, 툭툭 먼지를 털어내면 그만이다. 이어 일과를 충실히 마친 전우들에게 와락 안기는 신선한 공기! 알프스의 청량함에 비길 수 있을까? 그 미세한 입자를 들이마시며 내일 봐요, 수고했어요, 안녕, 손을 흔들고는 '떡 붙여 놓은 집'으로 각자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들.
콧노래를 흥얼대며 페달을 밟는다. 애창곡을 서너 곡 부를 즈음 집 근처의 시장에 도착한다. 애마를 소중히 세워놓고 열쇠를 채운다. 아무리 잠깐이라도 꼭 열쇠를 채워야 한다. 혹시나 모르는 사람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찬거리를 앞 바구니에 싣고 복잡한 시장을 탈출한다. 시장 중앙로에선 자전거를 끌고, 사잇길에선 타고, 인파를 헤치고 무사히 북새통을 탈출한 자신에게 칭찬 한 사발 던져 주는 걸 잊지 않는다.
무게중심이 옮겨져도 제법 잘 타는군!
물론이지, 운전 경력이 얼만데.....
드디어 그리운 나의 집. 하루가 채 안 지났는데도 되게 오랜 만인 것 같다. 애마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초췌한 모습의 여인이 거울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누구..... 나?'
'응, 너 맞아요.'
'반가워요 '나'님, 후훗.'
현관문을 열고 바구니를 내려놓으면 퇴근 성공! 그러나, 이는 절반의 성공일 뿐, 전투를 마친 병사는 무장해제 상태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아직 퇴근에 성공을 못한 가족들이 퇴근에 성공하기 전까지. 가정 식당 문을 닫는 아홉 시가 진정한 퇴근 성공 시간이 되는 셈이다. 설거지를 대충 마치고는 소파와 합체, 합체 후엔 피로와 식곤증이 마구마구 몰려와버린다.
감미로운 졸음이여, 나 그대에게 항복 하노라!
졸리운 눈꺼풀만큼 감당하기 힘든 게 또 있을까. 아틀라스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을. 그러니 일개 병사도 항복할 수밖에. 잠에 빠진 병사는 가끔씩 코를 골며 잔다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의 코골이를 확인할 길이 없어, 그럴 리가? 시치미를 떼게 된다.
'설마.... 내가 코를 골아? 아닐 거야.....'
그러나, 믿고 싶지 않지만, 피곤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저녁 식사와 식곤증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숙면의 꿈나라로 가기 위해 즐거운 퇴근길을 지나온 병사. 병사에게 퇴근길은 오솔길이다. 땀과 보람과 콧노래- 삼 박자가 어우러진 희망의 오솔길을, '포로롱 포로롱' 둥지를 향하는 작은 새처럼 날듯이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