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침공

첫사랑의 침공을 읽고

by 나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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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우리는 하나의 완벽한 우주. 사랑은, 더구나 첫사랑은 이러한 우주에 외계인이 침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대사건이다. 서고 누나의 등장도 윤에게 침공이었다. 외계인의 고약한 침공! 서고누나의 곁을 맴돌며, 서고누나가 창조해 내는 시공에서 가녀린 이파리로 팔랑거리는 윤은 영락없는 홍역을 앓는 소년이다.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감정을 표현해 낼 만한 최적의 언어를 찾느라 진땀을 흘리며, 고백할 기회를 만들고, 고백할 찰나를 포착하느라 갖은 애를 쓰는 윤의 타들어가는 마음...... 속은 왜 자꾸 울렁거리는지. 서고는

윤의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파견된 외계인답게 그에게 실연이라는 분화구 하나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지구에서 가장 좋은 사람, 윤을 버려두고. 착륙도 이륙도 제멋대로인 첫사랑! 시시각각 빛이 변하는 돌멩이는 첫사랑의 증표인가.


첫사랑이 사라지고, 폐허나 다름없는 지구(첫사랑이 떠나버린 세상은 폐허)에서 6년 동안이나 윤을 버티게

한 힘의 원천은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외계인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윤은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자원하여

선봉에 나선다. 서고누나와 재회할 길은 그것뿐이니 저돌적이고 용감해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첫사랑

바이러스의 위력이란!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윤은 서고누나와의 산책을 간구하며, 거추장스러운 모든

보호막과 가식을 벗어던진다. 첫사랑에의 회복이 곧 삶이고 살아 있는 목적이 된 윤에게 죽음인들 두려울까.


첫사랑의 침공이 발발하기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첫사랑의 추억이 이별의

아픔을 치고 올라, 눈을 반짝이며 시도 때도 없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데도? 모를 일이다. 결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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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을 못 보는 영, 포이투아 신의 세계에서 실력이 꼴찌인 노란색의 신인 랑. 신과 사람이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인연의 꽃을 피운다. 영은 랑처럼 노란색으로 머리칼을 염색하고, 저마다의 노란색에 둘만의

추억이 서린 이름을 같이 명명하고는 흐뭇해한다. 평범한 노란색이라도 둘만의 추억이 깃들면 색다른

이름으로 거듭나 특별한 빛이 되므로, 그것은 창조의 기쁨이기도 했다. 신의 시계와 인간의 시계는 다르기에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함께 망고스무디를 먹고, 바다를 찾아가 수영도 하며, 순간을

영원처럼 쓰는 영과 랑. 사랑은 서로의 결핍을 충일하게 채우고도 남아, 거대한 에너지로 영과 랑의 성취를

이끌어낸다. 랑 덕분에 영은 까다로운 졸업작품 심사를 통과하고, 영은 랑을 컬루메오 대회의 빛나는 주인공이 되게 디자인 부분을 보완해 준다. 영에게 랑은 최고의 신 그 자체였고 랑에게 영은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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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승작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더 큰 욕심 앞에서 사랑은 서서히 종말로 치닫고 마는데, 빛나는

순간을 함께 해 주지 못하는 랑을 원망하고 밀어내는 영. 랑이 손을 잡아준 덕분에 처음 노란색을 보게 되었을 때의 감동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영은 차라리 노란색을 모르던 시절이 나았다며, 랑에게 야멸치게 이별을

선언한다. 그러나 랑은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게 버려둘 수 없다. 랑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영을 구해

노란색의 정원으로 데려가, 노란색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을 심어준다. 소모적이고 황폐한 이별과 원망의

기억 대신, 활기와 온기, 생명력과 희망이 가득한 노란색, 그리고 노란색의 신과의 기억을 영에게 선물한다. 노란색을 볼 수 없어도, 랑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어도, 영이 더 이상 불행해하지 않도록.

랑이 떠나가고 새로운 사랑이 꿈(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영을 기다리고 있다. 이별로써 또 하나의 사랑을

키워내는 랑의 사랑이 눈물겹다. ‘세상 모든 노랑’의 ‘번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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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부터 서현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무 살 생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서현은 카페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대신, 지구가 멸망해 버리기를 간절히 비는 지경에 이르는데, 서현의 기도대로 외계 비행 물체의 침공을 받아 지구는 멸망해 버린다. 서현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부터 어차피 혼자였고 아버지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서현이기에.


뼛속을 파고드는 고독 속에서 메로라는 존재를 만난 건 운명이었을까. 서현은 어쩌다 중고 노트북의 메일을 통해, 카뎀 48 행성의 외계인 메로와 교신을 한다. 지구와 서현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메로는, 우주선을 끌고 시간터널을 통과하여 어느 날 홀연히 서현 앞에 나타난다. 운명처럼, 꿈처럼, 억만 광년을 초월하여 찾아온

것이다. 지구에서 홀로 남은 유일한 지구인인 서현의 상처 난 마음을 오롯이 보듬어 주는 외계인 메로!

서현이 화를 내건 불평을 하건, 메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이해로 일관하며 얼음장 같은 서현의 마음을 녹여 주는 데에 열심이다. 서현은 메로와 함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행하기로 한다. 엉망이 된 에펠탑이나

팡데옹, 기울어진 금문교도 평온한 심정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로 인해 찢긴 서현의

마음은 서서히 아물어간다. 메로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 와중에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복병이 방해꾼으로 등장한다. 메로는 서현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지만 방법이 없다.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절절한 외로움, 고독, 뼈가 시린 듯한 추위를 알기에, 서현은 자신이 죽고 난 후 혼자 남겨질 메로가 걱정이다. 메로의 우주선은 카뎀 48 행성으로 메로를 데려갈 수가 없다.

메로는 차선책으로 시간균열점까지 가기로 하는데, 성공한다면 두 존재가 다시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메로가 없는 시공을 견뎌야 한다! 서현은 메로를 잃는 것이 두렵지만, 메로의 약속을 믿기로 한다. 살아만

있으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그동안 서현에게 베풀어준 사랑만으로도 메로는 신뢰받아 마땅한 존재였으니까.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메로는 꼭 약속을 지킬 것이다. 가능성이 설령 제로에 가까울지라도, 제로가 아닌 게 중요하다 하지 않는가. 살아만 있으면, 메로와 함께 광화문에서

북극까지 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다시 아버지를 기다리겠지만, 오지 않는다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버킷 리스트가 적힌 수첩을 메로에게 쥐어주며 잠에 빠져드는 서현의 믿음은 견고하기만 하다.


“겨우 나 때문에 그걸 말면서도 온 거야?”

하찮은 자신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될 메로. 다정하지만 그 미련스러움에 답이 없는 메로에게 서현은 두 손 두 발을 들고 싶다.

“겨우가 아니야. 서현은 이 우주를 통틀어서 내게 유일한 존재인걸.”

둘의 대화(본문에서 인용)가 예사롭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메로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깊으나 깊은

사랑!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마태복음 28:20) 시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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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사랑은 가장 현실적(사람과 사람의 사랑인 점을 들어)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다가왔다. 고정간첩인 아내를 외계인으로 착각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순정남 정훈의 섬세함, 단 하나의 사랑을 지켜내려는 우직함이 낯설다. 드라마나 고전에서나 볼 법한 사랑의 빛깔. 어찌 보면 모자란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위험 앞에서도 주저 없이 뛰어드는 걸 보면 상남자 같기도 한 정훈! 일방통행처럼 보이는 정훈의 사랑에, 철옹성 같던 민정의 마음도 빗장을 풀게 된다. 세상 끝까지 민정을 따라가겠다는 정훈의 각오와 실행력, 용기...... 사랑 바이러스에 감염된 윤의 판박이인 줄 알았다. 하와이안 오징어 볶음을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새 출발에 축복을!


사랑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살아가는 힘. 사랑을 주고받을 때 삶은 비로소 의미를 얻고, 빛과 향기를 입는다. 윤과 서고누나, 영과 랑, 메로와 서현, 민정과 정훈의 사랑과 함께한 며칠이 꿈만 같다.

이제 그만 나를 놔줘, 서현 그리고 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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