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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Nov 04. 2023

수상한 중고상점에 초대합니다

가사사기 중고상점의 사계를 함께 여행해 봐요

수상한 중고상점은 수상한 소설이다. 중고상점에 손님이 드나들고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등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기대는데, 넘길수록 점입가경으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몰입도를 높여 가는 게 아닌가. 만만치 않은 추리소설인 걸 싶었다. 그리하여 평화로운 오솔길 사이사이에 숨긴 엄청난 보물들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관망할 수밖에 없는데, 어설픈 추리력이나 빈약한 상상력을 동원하여도 감히 짐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가사사기 중고상점엔 머피의 법칙을 맹신하는 사장 가사사기와, 명탐정 코난이나 셜록 홈즈가 울고 갈만한 추리력의 소유자인 히구라시, 그리고 수상한 중고서점의 객식구이자 마스코트인 미나미가 있다. 미나미가 신뢰하는 가사사기는 자칭 추리의 대가인데, 그의 추리는 얼핏 맥락을 짚어내는 듯하면서도 허점투성이여서 웃음을 자아낸다. 매번 '앞으로 한 수만 두면 체크메이트'를 외치며 그는 열혈탐정으로 변신한다.


가사사기의 추리를 완성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일은 언제나 히구라시의 몫. 그는 가사사기에 대한 미나미의 기대를 깨버리기 싫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미나미의 미나미를 위한 미나미의  행복수호자이다. 동시에 그는 오호지 주지로부터 낡은 물건을 고가를 주고 강매당하는 거래의 똥손이기도 하다.


봄. 중고 상품으로 사들인 청동상에서 방화 미수의 흔적을 발견한 중고 상점의 가족들. 그들은 얼마 후 손수건을 찾으러 상점에 온 소년 신타로, 그을린 청동상을 사 간 신지에게서 수상쩍음을 느끼고, 사건을 파헤쳐 보기로 결심한다. 어느 밤, 엄마가 가출하는 걸로 오해하고 뒤를 쫓다 엄마의 범죄를 목격하게 된 신타로. 엄마의 범행을 덮어주고픈 어린 신타로가 행동에 나서다 두 탐정의 추리망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홀로 된 몸으로 할머니의 구박을 감내하며 사는 엄마 스미에와 미혼인 삼촌 신지와 신타로의 두뇌 게임이 실로 흥미진진하다. 청동상의 엄청난 비밀을 지켜 주기 위해 ,

가사사기의 추리를 위해, 미나미의 행복을 위해, 히구라시는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신타로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동시에 엄마 스미에를 곤경으로부터 구해준다.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고픈 히구라시의 넉넉한 마음, 그것은 곧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그가 자신에게 가늠해 보는 주거침입죄는 적용될 수가 없어 보인다. 그의 잠입이 없다면 사건은 미완에 그칠 것이므로.


여름. 목공방의 수습생에서 이제 막 제자로 인정받지만 갈길을 몰라하는 사치코에게 히구라시는 이러한 질문으로 본연의 나를 찾아 준다.


"어째서 강이 굽이굽이 휘어져 있는지 아시나요?"

"물이 높은 곳을 피해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은 이렇게 구부러지면서 뻗어나가지요. 이 강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요. 하지만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인간은 매일매일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동경하며 구부러지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그래요. 그렇게 흐르는 동안은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죠. 제 생각에 구부러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수상한 중고상점 전문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끔 한 사람인도해 주는 히구라시! 히구라시는 미적 감각과 함께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듯하다.


가을. 적자 투성이 가사사기 중고상점이 꽤 괜찮은 거래를 한 적도 있다. 미나미 아빠의 서재 집기를 헐가에 매입하게 되는데, 이는 미나미 엄마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로 인해 그녀는 남편의 물품을 땡처리하고 마음의 빗장까지 걸어 잠근다. 미나미는 가사사기 중고상점에 드나들며 물고기와 고양이에게 치우치는 엄마의 사랑과 아빠의 부재를 잊고자 노력한다. 미나미 아빠 고조가 옆집에 숨어 몰래 딸을 살피는 광경은 애처로움의 극치로 가슴을 후비고, 가장의 속내도 모른 채 원망에 빠져 사는 미나미 엄마도 가엾고, 어리고 무력한 미나미 더더욱 가련하지만, 아빠가 완전히 떠난 게 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겨울. 수상한 중고상점의 하이라이트는 '귤나무가 자라는 절'인 듯싶다. 절이란 오호지이고, 오호지의 주지에게 강매당한 낡은 물건들이 많은 까닭에 오호지 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인 히구라시. 그는 미나미 아빠의 오디오세트를 좋은 가격으로 주지에게 팔고 싱글벙글하는데, 이는 그동안의 불공정 거래를 상쇄키고도 남을 만한 수지맞는 거래였다. 덕분에 주지는 '깡패 땡중'에서 '스님'으로 호칭이 격상되 며칠 후, 크리스마스이브, 주지의 뜬금없는 초대를 받고 중고상점의 사장, 히구라시, 객식구인 미나미가 총출동하여 귤을 수확하게 된다. 주지는 수상한 중고상점의 인력을 동원(초대가 아닌)하여 귤을 수확할 속셈이었지만, 때마침 눈이 내리고 쌓여,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신이 만들어 준 음식을 '흡입'하는 가사가시와 히구라시에게 연민을 느끼는 주지. 한때는 그도 열정적인 럭비선수였고 따뜻한 가정을 꿈꾸던 가장이었다. 미나미는 그에게 기타를 배우고, 입양한 아들 소친을 위해 불공정거래를 행한 그를 사람 좋은 히구라시는 이해하게 되고, 주지는 결국 귤값을 받지 않는다. 이브의 눈발, 그리고 가사사기 중고상점팀과의 교제가 굳었던 그의 마음을 녹이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았을까......


소친과 미나미의 첫눈발 같은 우정.......  깨어진 도자기로 인해 자신의 옹졸한 마음을 들킨 소친은, 도자기 속에서 나온 양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반성하며, 양부모의 크나큰 사랑을 깨닫는다.


그동안 가사사기의 '한 수'가 그럴싸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소친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은 적이 또 있었던가. 훌륭해, 가사사기! 물론 100프로는 아니지만. (미나미처럼 감탄을 던져보기!)

"히구라시 씨가 똑바로 해야지"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한 미나미의 의미심장한 말이 뇌리를 맴돈다. 정녕 미나미는 히구라시보다 한 수 위일까? 작가와 가까운 사람이 히구라시라고 믿으며 종장을 향하던 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도 뒤통수를 긁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처럼 끝까지 수상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수상한 중고서점!


수상한 중고서점의 사계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지 않으신가요?

'가사사기 중고상점 간판 한켠에 '탐정 사무소 겸함'을 덧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의 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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