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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Mar 05. 2024

은인을 찾아서 1



'당진에서 왔다 갔나?'

'왔다 갔다는데?'

도착 전부터, 아니, 출발 전부터 언니는 부지런히 톡을 보내고 우리는 부지런히 답을 해대었다.

'그분들 얼굴을 아는 막내부부는 잠시 밖에 나갔고, 어쩜 좋아. 우리가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했네.'

'그러게 죄송해서 어쩌지?'

할 수 없었다.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成事不說 邃事不諫 旣往不咎 :논어. 팔일. 21장)라 했던가..... 이미 엎드러진 물이었다.


당진 사람들은 언니의 은인이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 동안, 언니의 힘이 되어 주고,

가족이 되어 주고,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위로하고 감싸고 보듬어 주었다. 은인들은 언니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오고자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둘째 날 낮에 조문을 다녀 갔다.

발인날에사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언니는 송구스러워 어쩔 바를 몰라했다.


죄송하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조문객들 맞고 경황 중이라 그쪽에서 당진이라 말을 했음에도

무심히 흘겨 들은 모양이다. 우리 쪽에서는 언니의 은인을 못 알아보고 그냥 보낸 사실이 영 꺼림칙했고, 차마 언니 볼 낯이 없었다. 백골난망 은혜를 입은 은인들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내었으니.......

"할 수 없지. 내 손님인데 내가 늦어져 못 봤으니, 내가 당진에 답례 차 찾아뵈면 될 일."

언니는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우리 네 자매가 뭉쳐서 답례 인사를 가자!"

엄마의 장례식을 다 마치고 나서 둘째 언니가 의견을 냈다.

"그거 좋겠네. 캐나다 언니는 서울 가서 딸이랑 시간 보내다가 넷째 언니 데리고 당진으로 오고,

우리 팀은 여기서 차 끌고 가면 되겠네."

"그래, 서운하고 죄송스러운 참에 그러면 되겠네."

만장일치로 가결된 의견은 D-DAY(장례식 끝난 다다음 일요일)를 며칠 앞두고 위기를 맞았다. 장례식장에 다녀가신 둘째 언니의 사돈들과 손주들이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다고, 우리의 계획을 포기해야 될 것 같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이 캐나다 언니를 통해 전달되었다.


안 가는 게 낫겠지? 당진 가는 차표는 취소해야겠네, 하며 캐나다 언니는 예매한 차표를 취소했다. 이런, 설레다 말았다. 그놈의 코로나! 징글징글하다. 이제 제발 우리 곁에서 사라져 주면

좋겠는데, 아직껏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니! 할 수 없지. 못 가는가 보다 하고 있는데,

우리 둘만이라도 가자며 캐나다 언니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당진에서는 음식 주문을

이미 다 해 놓은 상태라 꼭 와서 먹고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그러니 일단 코로나

검사를 해 보고, 마스크 끼고서라도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동행하기로 했던 언니의 지인

한 명도 취소했던 차표를 다시 예약하고, 난리도 아닌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몸살기가 있던 막냇동생은 다행히 키트 검사에서 한 줄이 나와서 다시금 갈까 말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 둘째 언니는 막내가 못 가면 제부랑 나란히 차 타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데이 케어 센터에서 일을 하니 조심스러워 부정적인 상태였는데,

막내의 끈질긴 회유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막내의 고집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시월 돼야지(10월생 돼지띠) 고집이었으므로  막냇동생의 의견에 따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었다.


카톡과 전화를 수도 없이 오가며 의견을 조율하던 고향팀은 이러한 내막을 카톡에 공지하는 것을 깜빡했다. 공지한 줄 알았다는 게 더 사실적인 표현일 것이다. 동생과의 통화로  고향팀이 당진에 가기로 한 소식을 입수하여 캐나다 언니에게 알리자, 그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던 언니는 고향에

재차 확인전화를 하고...... 진짜 진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당일치기로 서울로 오려던 우리 서울 팀은, 올라오는 차표를 취소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둘째 언니 집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다. 휴우......


토요일 밤 우리 집에 온 캐나다 언니랑, 아침 일찍 키트 검사를 하여 한 줄을 확인한 후, 터미널로 향했다. 그곳에서 조카와 합류하고, 당진 터미널에서 언니의 지인과 합류를 하였다. 내려가는 팀

네 명, 올라오는 팀 세 명, 도합 일곱 명의 손님이 당진의 은인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답례 차 방문하는 것 치고 너무 대부대인데?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괜히 온 거 아닌가 모르겠어."

"괜찮아, 싹 다 데리고 오래. 그 형님은 사람 오는 것을 참 좋아해."

캐나다 언니는 걱정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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