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표를 붙여 줘~

by 나탈리


KakaoTalk_20241224_234550093.jpg


이런, 이름표가 없다! 이름표 없는 옷이 나오면 순식간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오늘도 목욕 조 선생님을

찾아가 혹시 이 옷의 주인을 아시냐 묻고, 요양보호사 님이 모른다 하면 다시 다른 층에 찾아가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하겠군.' 그날 목욕을 시킨 어르신 명단 위주로 찾으면 간단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지가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그것이 설령 당신 옷일지라도 알 리가 없으므로 그마저 쉽지가 않다.

이름표를 빠짐없이 달아드린다 해도, 세탁한 옷을 정리하다 보면 꼭 한두 개씩, 이름표 없는 옷이 나온다.

하여튼 골치 아픈 순간이다. 어떤 어르신은 일부러 이름표를 떼기도 한다는데, 그런 분의 옷은 이름표를 뒤쪽에 달아 드리기도 한다. 무료한 탓이겠거니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는 이름표를 떼는 것에 그치지 않아, 올이 풀려 끝이 나풀거리는 채로 내려오는 세면수건도 부지기수다. 일부러 실을 잡아당기는 어르신을 요양보호사 님들이 목격했다 한다. 박음질을 해서 올려 보내도 소용이 없었다. 작정하고 풀려해도 도구

없이 힘들 듯한 일을, 무료함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잘도 해내시는 어르신들! 항복입니다, 항복......


어르신들 목욕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 님들도 어느 옷이 어느 분의 옷인지 이름표 없이는 식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이름표 유무를 철저히 확인하면 서로서로 업무가 한결 쉬워질 텐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빈틈이 생기기 마련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주인을 못 찾으면 다시 가지고 내려와 한쪽에 쌓아 놓는다.

쌓아둔 옷들이 무더기를 이루면 동료 선생님은 카트에 싣고 장사를 떠난다. 층마다 올라 다니며 필요한 곳에 무료로 배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을 모르는 옷들은 공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옷이 적은 어르신들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이름표를 붙여 주세요! 메모와 함께 내려오는 옷들마다 이름표를 달기 위해 동료 선생님은 열심히 재봉틀을 밟는다. 한두 개면 몰라도 여러 벌의 옷이 몰리면 이름표에 이름을 적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그럴 때면 하얀 라벨지에 이름을 기입하는 일은 나의 몫이 된다. 재봉틀은 미스 시절에 잠깐 해 보았지만 지금은 자신 없어

손도 못 대고, 선배에게 가르쳐 달라 용기 있게 말할 그날만 꼽아보고 있다. 노안 탓에 인상을 찡그리며

어르신들의 이름과 층수를 적어 넘기면, 동료의 공업용 재봉틀 밟는 묵직한 소리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협연에 끼어들어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낸다. 센터에 어르신 한 분이 새로 입소하면, 그날은 이름표를 사십여 개

가까이 달아야 한다. 일단 모든 옷을 세탁한 후 말려서 숫자를 센 다음, 작성한 이름표와 함께 재봉틀 곁에 놔둔다. 시간이 되면 그날 이름표까지 달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달아, 올려 보낸다.


KakaoTalk_20241224_234510076.jpg



어르신들 목욕을 시킬 때에는 이름표 유무 외에도 주머니 확인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만약 주머니 확인을 빼먹으면, 그리하여 주머니에 이물질이 있다면 세탁 과정에서 타 세탁물과 섞여 오염이 지워지기는커녕 오염이

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볼펜이나 휴지조각이 주머니에 있는 채로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뒤처리는

죄다 세탁실에서 해야 한다. 잉크가 번져 옷이 엉망이 되면 락스를 희석한 물에 담갔다 다시 세탁하기도 하고, 휴지조각은 테이프로 일일이 떼내어 재세탁 코스로 출발! 한 번은 어르신의 잠바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발견한 적도 있다. 세탁 전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거울이 세탁기나 건조기에서 산산조각이 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을 것이다.


주머니 검사 좀 재발 확실하게 해 주십사 중간관리자에게 건의를 하면 세탁실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주머니마다 검사를 한 후 세탁을 하라 한다. 빨래가 한두서너 개면 가능하겠지만, 많은 양의 빨랫감을 일일이 검사하기에는 인원도 시간도 모자라니 불가한 일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일 듯한데, 도통 개선이 되질 않으니 동료 선생님과 함께 한숨을 삭이곤 한다.


KakaoTalk_20241225_001122366.jpg


짐보따리 싸 들고 요양을 위해 피난 아닌 피난을 오신 어르신들! 그 누구의 다정한 엄마 아빠였다가,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하여 이리로 피난을 오신 걸까.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입는 어르신이 계신다. 엄마도 추위를 많이 타셨는데, 저 어르신도 추우신 걸까...... 엄마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은 들락날락한다.

바쁜 자녀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며 자의나 혹은 타의로 피난 오신 어르신들! 목욕 중인 어르신들의 신음 소리가 마음을 파고든다.

“아야야, 아파 살살 해! 아파 죽겠어~”

흐느끼며 우는 어르신도 보았다. 요양보호사 님이 왜 우느냐 물으면 아프니까 운다며 가냘픈 흐느낌을 뱉어내신다. 몸을 씻어주는 여타 동작도 어르신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는 크나큰 충격인 것이다.


어린애 같은 어르신들을 달래려, 말 한마디를 해도 상냥하게 하는 선생님도 있고, 좀 쌀쌀맞다 싶게 하는 선생님도 있다. 타인의 엄마 아빠를 돌보는 일을 하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보통 체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힘과, 강한 멘털과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까닭에 이직률이 높은 직종이다. 그래서 헬스나 기타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꾸준히 하는, 진정한 프로들이 많은 생활 전선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41225_000836396.jpg


어눌한 음성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어르신, 좀머 씨처럼 끊임없이 배회로를 오가는 어르신, 내 딸한테

전화 좀 해 주세요, 나 좀 데려가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응? 응석 부리듯 한 말씀만 반복하는 어르신들을, 근무가 있는 날마다 뵈어야 한다. 애잔한 풍경! 엄마도 저러셨을까? 얼마나 집이 그리우셨을까. 모든 어르신들에게서 엄마를 만난다. 아버지를 만난다. 걸어 다니는 어르신들이 너무 부럽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어르신들도 부럽다. 엄마와 비슷한 분을 만나면, 다가가 엄마라 불러 보고도 싶다. 피골이 상접하여 휠체어를 밀고 다니시는 한 어르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던.


겉모습뿐이 아니다. 옷을 정리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무늬와 디자인에 눈길이 분주한데, 개중에는 엄마가 즐겨 입으시던 무늬의 옷들도 간간이 보인다. 꽃 무노(울 엄마는 무늬를 무노라 하셨다) 울긋불긋한 웃옷과 주름바지들. 엄마의 옷에서는 늘 엄마의 체취가 풍겨 나왔었다. 빨아서 바싹 말려도 여전하던 엄마 내음!

주름바지에서도 세련되고 고급진 옷들에서도 누군가가 그리워할 엄마 내음이, 엄마 체취가 배어 있을 텐데. 세련과 고급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옷들은 드라이클리닝이 필수지만, 여건상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므로

보호자나 어르신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 그냥 물세탁을 한다. 그래서 주름바지나, 실크 스카프나, 인견셔츠,

할 것 없이 모든 세탁물에서는, 세제로 지워지지 않는 엄마 내음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다, 마스크를 헤집는다.


순간순간 밀려드는 감상을 구겨 넣으며 바삐 층과 층을 오가다 보면 하루 해가 금세 저물고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점심에 저녁까지 주는 회사는 또 처음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찾는다. 점심조차 안 주고 일을

시켜서, 분개해 마지않던 알바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호사스러운 예우인가.

식곤증 - 감미로운 졸음의 파도에 반쯤 몸을 맡긴 채 퇴근을 한다. 요양 센터의 방방마다 불이 환하다. 어르신들도 어둠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실까. 집에 갈 날을 꼽으며 자녀들을 기다리고 계실까.

"내 딸한테 전화 좀 해 줘요, 나 좀 데려가라고, 전화 좀 해 줘요!"

어르신의 애절한 음성이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KakaoTalk_20241224_23445394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줍은 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