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진주 여행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 남강 빨래 가라
진주 남강 빨래 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 진주 난봉가 중에서 -----
과연 민요의 한 가락처럼 진주 남강은 산도 좋고 물도 좋았다. 유량도 풍부하여 그 옛날, 호된 시집살이에
지친 옛 여인들이 빨래 함지박을 이고 와, 날이 저물도록 방망이질로 시름을 달래고 돌아가도록, 진주 남강은
넉넉한 품을 내주었겠구나.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 동안, 하늘 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서 못 본 듯이 지나갔을 진주 낭군에 대한 섭섭한 마음마저 아낙은 물살에 둥실둥실 흘려보내었겠구나. 무정한 진주 낭군, 가엾은 진주 낭군의 아내. ( 진주 난봉가를 떠올리면 뒤따르는 불편한 심기, 이 땅의 모든 여인들의 공통된 마음 아닐까.....)
진주성 정문부터 구경꾼을 맞는 갖가지 형상의 유등과 초롱불. 어둠이 촘촘한 그물처럼 사방을 에워싸자
유등은 더더욱 각자의 생김 대로 빛을 발하며 축제의 주인공답게 사람들을 홀려낸다. 유등, 유등 하기에 무슨 등불 가지고 야단일까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행사 규모나 갖가지 유등의 종류와 크기와 수량이 가히 상상을 넘어서는데, 여태껏 이곳도 못 와 보고 뭐 하고 살았나 싶은 한탄까지 들게 만든다. 진주 하면 촉석루, 그리고 그곳에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같이 물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상식 정도만 알았는데, 수학여행 때
왔었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곳에서 전국적인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니!
절에 간 색시처럼 눈만 꿈뻑꿈뻑, 동생과 제부의 안내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전각에서 김 시민 장군에 대한 연극인지 뮤지컬인지가 한창 상연 중인데, 그 웅장한 음향효과에 천지가 진동을 하는 듯했다.
“나는 충의를 맹세하고 진주성을 지켜 국가 중흥의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힘을 합쳐 싸우면 천만의 섬
오랑캐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김시민 장군의 결의에 찬 사자후는 쩌렁쩌렁 메아리치고, 진주대첩의 승전, 그리고 끝내 성이 함락되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도도히 흐르는 남강 물결 위에도 온갖 형상의 유등은 어둠을 저만치 뒷걸음질하게 만들어버린다. 성안의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안부를 전하려 띄웠다는 유등이 지금은 소망등으로, 축제의 주인공으로 밤을 잠들지 못하게 수문장처럼 지키고 섰다.
축축한 잔디를 밟으며 성내를 돌고 또 돌아다녔다. 소규모 무대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기웃대 보고, 나무마다
열린, 삼차원의 배배 꼬인 유등은 어찌 만들었을까 궁리도 해 본다. 맘에 드는 캐릭터 유등 곁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는데, 고 사진이란 것이 낮에 직은 것처럼 선명하지가 않고 괴상해 보인다. 흥부놀부 배경과 가히 괴리감이 없어 보인다. 단군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매운 닭발면과 바나나우유 카카오프렌즈 등등 별의별 캐릭터들이 군데군데에서 어둠을 딛고 존재감을 과시하고들 있다.
유등 속에서 헤어 나와, 세찬 바람을 물리쳐 가며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거닐었다. 저게 뭐꼬? 붉디붉은 터널은? 소망등이 내걸린 아치 터널! 온통 붉고 붉은 염원의 도가니다. 저기에 적힌 염원들이 다 이루어지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행복이 찾아올까. 방해꾼 바람을 피해 간신히 소망등에 불을 붙여 물 위에 띄우는 이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소망을 적고 띄워 보내는 순간의 간절함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아니고 무엇이랴.
강변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푸드 트럭, 유등 만들기 체험 부스,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군밤과 땅콩빵을 나눠 먹으며 차가운 밤바람을 잊으려 애써 보았다. 도로에서 올려다보니 저 멀리
진주성이 아득하다. 저 성을 차지하기 위해 왜군들이 줄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고 위에서는 활로 바위로
막고, 난리도 아니었겠다.
밤이 깊도록 유등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지와 색채와 불빛의 결합이 어둠이라는 배경을 만나 연출해 내는 장면들. 멋드러지고 운치 있는 밤의 축제이자, 남녀노소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거리를 안겨줄 만한 개천 축제로구나 싶다. 진주 유등 축제가 그저 단순히 즐기는 축제로 끝나지 않고, 역사를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글로벌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됨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언니들을 위해 진주 유등 축제를 네 번째로 관람하게 된 동생에게 소박하나마 치하를 던졌다.
"네 번째여도 전혀 물리지 않고 좋았다니, 언니도 좋구나 야! 진주 유등 축제 구경 한 번 잘했다. 다음에 오게 되면 소망등도 마음으로만 띄우지 말고, 물 위로 하나씩 띄우고 부교도 한 번 건너보자꾸나."
국도 아닌 고속도로를 타고 직행, 자정이 다 되어서야 고향에 도착하였다.
초저녁잠이 많은 성님들 얼른 주무시라고 언니 집 앞에 언니들을 내려주고 가는 동생의 한 마디.
“내일, 아니 오늘인가? 하여튼 잘 주무시고 아홉 시쯤, 모여서 고추 꼭대기 땁시다잉?”
김장을 위해 우리 세 자매는 각자 열 근씩 건고추를 샀으며, 1박 2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고춧가루 장만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