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이 또한 지나가기를 바라며

#04. 30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싸워온 시간에 대하여

by De easy
30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싸워온 시간에 대하여


새로운 시작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이 불안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4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만났던 그 시절,


나는 30대 초반,

처음 마주한 그곳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

회사는 모기업에 인수합병된 상태였고,

외국계 기업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낯선 환경 속에서 흔들렸다.


불안정한 회사 상황에

사람 또한 견디지 못하고 들쑥날쑥했다.


모든 문서는 결재판을 들고 다니며

상황의 긴박함과는 상관없이

결재자가 모든 걸 통제했다.


아웃룩은 그림처럼만 존재했고,

엑셀은 그야말로'신세계'였다.

회사 ERP-SAP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운영할 KeyUser는 부재했다.


모든 것이 일사 불난 하게 바뀌고 있었지만

정작 안정감은 제로였다.


회사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 신기한 상황이었다.



‘산휴대체 인력’으로 입사한 상태였고,

나는 들어가실 분을 배려하느라

중간 퇴사란 선택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쓸데없는 책임감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땐 미처 몰랐다.

한국시장에 15년 이상 유지 하고 있었기에

스타트업도 아닌데 스타트업 같은 회사였다는 걸..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입사 첫날부터 인수인계와 실무가 동시에 시작됐다.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

매출 자체가 멈춰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 정말로.


육아로 나는 2년의 공백이 있었고,

다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설레고, 즐거웠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어쩌면 그때 이미 지금의 나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더 불안해했던 거 같다.




더 이전을 돌아보면

나의 20대를 함께한 회사는

여의도 한복판의 체계적이고 규모도 큰 회사였다.

한 층에 백 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했고,

20층까지 있는 건물이라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나이에 정말 멋 모르고 일했던 시절이다.

결혼 후 육아를 위해 과감히 사직서를 낼 때도

아이 좀 키우고 일하면 되지 젊음의 패기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소규모조직, 함께 머무는 시간,

그 안에서의 인간적인 교감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봐 줬다.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다.


나는 입사한 지 한 달이 될 때쯤,

내 역할을 찾기 시작했고, 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다만, 정이 붙을수록 감정은 복잡해졌다.

매출 압박은 날카로웠고,

나의 할 일은 경계가 모한 것들 투성이었다.

각 부서별 인원의 부재로 재경부 마케팅 서비스팀일을 눈치껏 해야 했다.


매출은 매달 5.4.4 주차에 따라

분기 말은 숨 쉴 틈이 없었다.

5주 차는 길어서 매출 목표가 높았고,

4주 차는 짧아 매출일 수조차 부족했다.

프로모션 가격, 운영, 대리점 주문 방식, 정리된 기준은 없었다.

늘 새로웠고, 늘 혼란스러웠다.


그런 환경에서

사수 없이 혼자 업무가이드를 만들어냈고,

시스템의 안정화가 되지 않은 시절이라

ERP 이슈로 인해 IT와 매일같이

안 되는 영어로 문제를 해결해 냈다.


배운 지식은 후배들에게 전했고,

그들을 위해 실무 교육 및 가이드라인을 공유했다.


내입으로 말하는 건 좀 부끄럽지만,

팀에 버팀목과 든든한 기둥역할을 도맡아 해왔다.


나는 경력단절을 이겨내기 위해

나의 30대 시절을 치열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승진과 인정을 받았다.

외국계회사는 한글직책은 별도였고

승진은 영문타이틀을 얻어야 했다.

나는 시니어 타이틀을 얻어냈다.

그 시절 나는 잘 버티는 게 큰 장점이었다.


이후,

나의 40대의 처절한 몸부림 상상조차 못한 때.

나의 찬란한 30대는 지나갔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시절 나에게,

"나다움을 지켜낸 나에게 건네는 작고 따뜻한 응원" 건넨다.


나의 30대는 치열하게 나를 지켜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시절인 40대의 내가 그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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