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산타를 지켜주고 싶은 우리의 노력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큰 명절도 제치고 가장 좋은 휴일이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 나서는 명절의 3일 연휴의 메리트가 단점으로 뒤바뀌어서
그다지 반갑지 않게 되었고, 다른 조각조각의 기념일들은 저마다의 의미는 되새기려고 하지만
딱히 신나는 날은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기념일은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큰 행사여서
교회에 가면 그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과자를 나눠주는 좋은 날이었고
거리에는 흥겨운 캐럴이 흘러나왔고 반짝이는 전구들이 추운 겨울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른이 되어 싫어진 눈도 크리스마스에 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모두 반기고,
그날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점도 좋았다.
그때의 설레는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좋다.
다른 날과 다르게 크리스마스는 보통 11월의 끝무렵부터 준비해서,
12월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는 것 같다.
내가 결혼 후 큰 집으로 이사오자마자 했던 일이 트리를 사는 것이었고,
처음에 예산에 맞춰 마련한 트리가 너무 비실하고 잎이 후두두 떨어져
다시 고르고 고르다 지금의 2M 크기의 트리를 장만하고는 만족했다.
우리 집은 거의 11월 초에 트리부터 설치한다.
아이도 같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라고 있어서
늘 트리를 장식할 땐 아이가 있을 때 하고, 별은 아이가 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분명 먼저 샀던 작은 트리 장식도 안아 올려서 별만 겨우 달 수 있던 아이가
작년부터는 나와 둘이서 트리 장식을 하는데 수월히 도와주었고,
올해는 본인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꾸미겠다며 혼자서 트리 장식을 모두 달았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을 위한 소소하면서도 따듯한 선물을 준비하고,
또 곳곳의 크리스마스 행사도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저마다의 즐거운 모습 속에
우리도 같이 행복한 기분으로 즐긴다.
마무리로 당일은 집에서 거하게 차려,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고
케이크도 나눠먹는- 나에겐 한 달~두 달에 걸친 행복한 이벤트이다.
내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분, 산타의 존재를 아이가 믿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던 것과는 별개로
나의 어릴 적에 부모님은 딱히 크리스마스라고 산타를 위한 준비라던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던가 하는 낭만적인 분은 아니어서
당연히 '산타=가공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나마 기억나는 일화가 동생이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한다며
전날 엄마가 챙겨준 선물을 유치원에 같이 가져간 날, 집으로 돌아와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줬는데 엄마가 산거였고, 산타할아버지는 oo선생님이었어~"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시대의 산타는 그냥 트리처럼, 캐럴처럼,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그런 존재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해가 지나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 산타,
이런 외국문화에 대해서 다양히 접하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산타를 믿게 하는 것이 동심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퍼진 것 같다.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강했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맘때가 오면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선물을 주고 가신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아이가 크고, 친구들도 자라며 밖에서 듣고 온 이야기로
"oo이가 그러는데, 산타가 아빠라던데?"라던가
"oo이네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셨다던데?"라던가 하는 말을 전했지만,
그 집엔 안타까운 일이지만 산타는 믿지 않는 아이들에겐 슬퍼서 찾아가지 않는다며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꼭 올 거라고 전해주었다.
나는 아이가 가능하면 오래오래 산타를 믿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고,
그 마음의 보답으로 선물을 받아 열어볼 때 행복했던 그 마음을 커서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올해의 트리를 설치하고 조금 지나서 나는 올해 아이가 바라는 선물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해마다 늘 장난감이었고, 작년까지도 장난감을 바라던 아이였다.
올해 학교에 갔다고 너무 큰 걸 바라는 걸 아닌지 조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트리에 선물을 적어 걸어두어야 산타할아버지가 확인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 귀띔했다.
아이는 컸다고 "엄마는 절대 보면 안 돼~"라고 신신당부하더니,
몰래 방에 들어가 편지를 적고 트리에 걸어둔 산타 모자에 쏙 넣어두었다.
"다음 크리스마스엔 우리 강아지가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 살게 해달라고 적어야지~"
라는 말을 듣고는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매번 아이가 없는 때 꺼내보는 것을 놓치다가,
불현듯 생각 난 어느 날 아이가 적어놓은 편지를 슬쩍 열어보았다.
.......
진짜 소원을 이를 수 있는 마법 펜던트를 갖고 싶다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여기서 신뢰받는 산타의 존재가 흔들리는 건가...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왔지만,
남편과, 챗GPT와 골똘히 생각을 모으고 고민해서 최선의 선물을 준비해 볼 생각이다.
일단 산타는 신이 나 마법사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준비해야지.
아이의 바람이 단순한 소비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발전한 것 같아 기특한 마음도 드는 한편 상상력이 부족한 엄마는
참... 머리가 아프다.
난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능한 오래오래 동심을 지키고,
제 나이에 맞는 해맑은 아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애어른'인데,
스스로 어렸을 때 항상 사랑받기 위해 '애어른'으로 굴면서 아이다웠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
지금의 내가 가엾고 어렸을 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들은 아이답게 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그 나이에 철없는 행동들은 남을 괴롭히거나 악질적인 행동이 아닌 이상
'아이라서 할 수 있는 철없는 행동이다'라며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 줘야 한다.
아이가 무언가 엉뚱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이니까
어른과 같은 이런저런 계산 없이 바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해지는 것은,
어릴 때 아이처럼 살지 못했던 나 자신이 평소엔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과거의 내가 가엾고 억울했던 기억이 올라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슬프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의 나보다 여유롭고 남들 못지않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어릴 적 갖고 싶던 인형 하나도 사달라는 말을 못 하고
친구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만 했던 그 초라한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결핍 없이 해결해 주라는 뜻은 아니다.
아이의 소망을 이뤄주고, 이뤄주지 못하고의 구분 없이
그냥 아이라서 할 수 있는 행동 그대로는 어른의 눈으로 짓밟지 말고
예쁘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동심, 소원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내 과거로는
언젠가 TV광고에 무슨 외계동물 같은 장난감이 계속 나왔는데,
그 장난감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갖고 싶은데 딱 봐도 비싸 보이길래
어떻게 하면 엄마가 사줄까 고민하다가 스케치북 몇 장에 걸쳐 그림을 그리고
그 장난감을 갖고 얼마나 잘 놀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장난감인지 어필해서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7-8살 정도의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이후에
엄마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로 갔는데 내가 찾는 장난감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뭘 사달라고 조른 기억이 없어서 이게 마지막으로 바랐던 내 소원이기도 했고,
이뤄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크게 남았지만 또 그 시절에 그림까지 그렸던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또 하나는 정말 결핍에 대한 것인데,
당시 유행하던 미미인형이 예뻤지만 비싸서 우리 집에선 사달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내가 그 공주 인형처럼 예쁘게 해서 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가끔 만화 같은데 보면, 엄마 옷 훔쳐 입고 엄마 화장하고 구두 신고 그런 것처럼.
나는 그날 팬티바람에 담요를 드레스처럼 두르고 거울 앞에 서서 잔뜩 뽐내고 있었다.
담요도 모양을 잘 갖추면 나름 드레스 같았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엄마에게 자랑했는데
내 모습을 본 엄마가 무섭게 혼낸 기억이 있다.
그것도 많이 어렸을 때라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빨가벗고 창피하지 않냐며 혼났던 것 같다.
내 드레스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고,
그럼 담요 대신 예쁜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미미인형을 살 수 없는 우리 집이 싫었던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난, 커서.. 어쩐지 딱딱한 표정의 미미인형에겐 정이 안 가지만
요즘 많이 나오는 솜뭉치 인형인데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것엔 참을 수 없어 사고 만다.
물론 아이가 어려서 뭘 알지도 못할 때 내 인형에 대한 욕구를 대변하듯이 실바니안 친구들도 사주고,
일본판으로 좀 귀엽게 나온 아이인형과 그 인형의 옷 입히기 세트 등을 막 사줘 버렸다.
평소엔 인형 생각 같은 건 나지도 않다가 옷 갈아입힐 인형이 없는 아이의 모습이 참을 수 없다던가,
지금도 그 비슷한 느낌의 소유욕이 들면 소비충동이 든다던가 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기에,
그런 바보 같은 소비를 하는 내 모습을 그저 가엾게 여기고
그런 형태로라도 과거의 내가 상처받았던 기억이 조금이라도 옅어진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로 그런 지독한 동심파괴와 결핍은 아이에게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항상 다 들어주면 안 되는 것과 동심을 지켜주는 것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지만,
진짜 이뤄질 수 있을지 말지 계산하지 않고,
거절당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로 꺼낼 수 있는 우리 아이는,
내 바람만큼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갑자기 슬펐던 과거로 이어진 오늘의 이야기는,
요즘 다이소에서도 저렴한 인형옷이 나와서 싹 쓸어와 맞는 인형들 하나씩 입혀주며 즐거워하는
내 사진 중 하나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