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참 사랑스럽다.
그래서 내 마음 속 언제나 일 번이다.(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수치로는
키도 미달, 몸무게도 미달,(이 수치는 영아 시기에 엄마들의 주요 화두이다.)
또 걷는 것도 느렸고 말하기도 빠르지 않았다.
또 무엇이 있을까...
배우기를 시작하면 습득이 느린편이어서-내가 일찍 준비 시킨 탓도 있지만-
한글 떼기를 위해 학습지를 시작했을 때도 공부한지 2년이 다 되었을 때
받침 있는 글자도 더듬 더듬 읽을 수 있게 되었고,
7살이 되어 기관에서 친구들과 같이 훌라후프와 줄넘기 등을 시작하였는데
그 해 겨울이 되도록 줄넘기 한번을 제대로 넘기 힘들어 했다.
그렇다고 내가 좌절하거나 조급해야 할까?
물론 나는 불안이 매우 높은 엄마이다.
내 소개에 적었던가, 한 때 공황장애로 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을 진단받았을 때
그 동안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내가 약해서라고 생각했던 게
마음의 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개운해졌다.
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에게 처음 시키는 훈련이 무엇인지 아는가?
육아를 시작하고 내 첫 고비는 바로 배변훈련이었다.
배변'훈련'이라는 말처럼, 아이에게 대소변이 마려우면 변기에서
해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마려움을 표현도 하지 않는 아이한테
이 것을 알려주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한번 기저귀를 떼고 성공하고 나니, 그 성공이 반복되고 어느새 훈련이 완성되었다.
이 때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리지만,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부모가 해야하는 것은 기다림이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육아서와
육아 교수님, 선생님들의 육아영상을 찾아서 보고 또 보았다.
거기서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아이에게 적용해 보기도 하고,
또 그 방법이 실패하면 좋은 방법이 있나 각종 지식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해냈다.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반복되자 나는 그냥 아이를 믿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아이를 가르칠 때 3개월 이상 이라는 기간을 예상한다.
절대 한 두번만에 아이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시간에 아이가 무언가 잘배울 땐 참으로 감사한다. 이거야말로 럭키비키니까.
그런 내가 정말 아이에게 무지막지 화를 낸적도 있다.
당연히 육아를 하다보면 고비가 오는데, 무탈하다 생각했던 나의 육아에
아이의 5살 무렵이 가장 고비였다.
그건 대소변을 잘 가리는 아이가 소변이 아주 급박할 때까지 참다가,
본인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러 화장실 안에도 못들어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 도와줘"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변기에 안착하는 것까지를 도와주고
"이렇게 급해지기 전에 미리 화장실을 다녀와야해"하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이게 매일, 매번 반복되어도 바뀌지 않아서 강력한 조치로
"그냥 화장실 들어가서 바지에 싸도 돼. 엄마가 치워줄게."라고 했는데
아이는 본인의 바지에 실례를 하는 것도 하지 못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만 하는 것이다.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며 지내던 어느날,
똑같이 화장실 앞에서 반복되는 행동에 그냥 알아서 하라며 아이를 내버려 두었다.
아이는 소변을 누지도 못하고 한 시간을 문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도와달라고 했다.
속이 썩을대로 썩었던 그 날.. 아이 스스로가 지쳐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그제서야 아이에게 이제 이런건 엄마는 끝까지 들어주지 않겠다,
네가 알아서 화장실을 미리 가야 하는거다,라는 훈육으로 끝을 냈다.
내 기억 가장 지독하게 힘들었던 때였고, 다행히 그날을 기점으로 아이의 행동은 많이 고쳐졌다.
이런 별거 아닌 것 같은 행동을 고치는데도 한 삼개월은 걸렸다.
말이 삼개월이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결국 고치긴 했지만 아이와 한시간 넘게 씨름한 것이 내내 마음이 쓰여
그 후로는 더 좋은 방법, 좋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이런 내 노력이 먹힌 건지 이후에 더 크게 아이와 씨름한 기억은 없다.
아이의 잘못을 고쳐주는 것도,
무언가 가르쳐주는 것도 정말 무엇하나 순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것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냥 힘들걸 예상하고 시작하기에 힘듦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육아는 쉽지 않다. 누군가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무언가를 고치고
무언가를 가르쳤을 땐 정말 우리가 같이 해낸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기분.
느리고 굳이 남들과 줄세워 비교하자면 무엇하나 내세울 거 없던 아이가,
그래도 내 마음속의 영원한 일 번이고 사랑둥이인 아이가 자라면서 차츰 잘 하는 것도 생겼다.
대외적으로 잘했다고 칭찬받은 것은 7살에 한자 8급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것이다.
만점을 받은 것도 물론 좋지만,
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1년 내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한자 공부를 꾸준히 해 온 것을 알았고
또 방학기간에는 나와 복습도 열심히 했으며 시험을 앞둔 한달 전부턴 기출 문제를 두 번씩 풀었다.
한자 8급은 가장 쉬운 시험이라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모두 통과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더 뿌듯했던 것은,
해당 시험의 마지막 문항이 8급에서 배우지 않은 한자를 문장에서 유추하여 답을 고르는 것이라
킬러 문항처럼 만점을 받기 어렵게 하는 문항인데
그것마저도 열심히 연습해서 잘 골라낸 것이 뿌듯하였다.
그래서 아이가 자랑할 때 나 역시 배운대로
"엄마 아빠랑 열심히 시험 공부를 한 보람이 있구나.
어려울 수 있었는데, 꼼꼼히 문제 잘 읽었나보네. 정말 잘했어."
라고 아이와 함께 노력한 부분을 칭찬해 주었다.
아이에겐 첫 시험이었지만 하나의 문을 넘은 것처럼,
꾸준히 연습하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하여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 외에도 아이는 7살 무렵부터 놀이터의 철봉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편이지만 내가 잡아주어 철봉을 건너는 연습부터,
매달리기 연습, 한칸 손을 움직여 자리를 바꾸는 연습으로 차츰 연습을 거듭했다.
어느 순간부턴 유치원을 마치면 달려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 번, 두 번, 횟수를 늘리며 철봉 연습을 꾸준히 하였다.
이제는 같은 나이의 누구보다도 쉽게 철봉에서 매달려 노는 아이가 되었다.
덤으로 그 작은 손가락엔 울퉁불퉁한 굳은 살이 깊게 박혀있다.
난 아이의 손은 말랑해서 굳은살 같은 게 생길거란 생각도 못했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도 딱딱한 아이의 손을 만져보곤 깜짝 놀랐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멋있게도 느껴졌다!
요즘 우리 아이는 일 등이다.
무엇이 일 등이냐면... 바로 본인의 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고 한다.
그래서 등교 일 등이다.
사실 날이 추울 때는 잠이 많아져서,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고 등교 준비를 하는 것도 매우 꾸물거려서 답답했는데
요즘 날이 따듯하다 못해 더워지기 시작하여,
아침마다 제 때 일어나더니 준비를 후다닥 마치고 학교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교하면서 오늘도 학교에 일 등으로 도착했다며 씨익 웃는다.
그럼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따봉을 세워준다.
나는 잠이 많은 아이가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 것도 정말 멋지고
학교에 일찍 가보겠다고 늦장 부리지 않고 부랴부랴 준비하는 것도 기특하다.
등교 일 등으로 기뻐하는 아이가 나는 매일매일 사랑스럽고,
아이가 아침부터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덩달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아이들 모두가 잘 하는 것이 하나는 있고,
본인들이 정한 기준으론 일 등인 것도 하나는 있을것이다.
그것이 공부이든 운동이든, 이렇게 등교 준비든 말이다.
예전에도 종종 생각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요즘은 더 자주 드는 생각이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왜 어른의 기준으로, 어른의 잣대로 줄을 세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난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행복한 아이들이 많아야 우리 아이의 친구들도, 우리 아이가 만날 타인도
행복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질 거고 그래야 우리 아이도 더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에서, 소셜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가 많아지면 좋겠다.
또 잠들 때면 내일 뭐하고 놀지, 하고 생각하며 잠드는 아이가 많아지면 좋겠다.
매일 행복한 일을 하나는 찾을 수 있는 아이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도 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한참 공부를 할 나이가 되면 내 생각이 바뀔까?
공부도 어느정도의 좌절을 피할 정도라든가 수업을 따라갈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공부 그거 못하다가도 열심히 파고들면 또 잘 할 수도 있고 그런거니까
인생에서 자기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엇가를 찾기를 바라고 있다.
난 아이가 서울대 수석이나 현 기준 의대 장학생같은 사람이 되는 것 보다도
"내 어린 시절이 정말 행복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지"
라고 말해준다면 더할나위없이 뿌듯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