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은 뭐야?

이 질문 하나에 왈칵 눈물이 났다.

by 황하루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질문했다, 엄마는 꿈이 뭐야?


마냥 동물에 가깝던 아이가 자라서

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어느 날은 그냥, 엄마는 꿈이 뭐야? 라고 질문했다.

불현듯 20여년 전의 나의 엄마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정말 옛날이라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 기억 속 나의 엄마가 대답했다.

"엄마의 꿈은 ㅇㅇ이 엄마였지."


그런데 내 꿈은 엄마가 아니다.

한번도 꿈이 엄마였던 적은 없어서,

아이한테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눈물이 고였다.

"엄마도 꿈이 엄청 많았지.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자라면서 계속 바뀌었고

꿈이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 수가 없네."

하는 대답으로 어물쩡 넘어가고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별거 아닌 질문에 내가 포기하고 지나온 내 과거가 떠올랐다.



가진 게 없어서,


어릴적 나는 꽤나 큰 꿈을 가진 아이였다.

무엇하나 특출난 재능은 없었지만,

책을 좋아하고 공부를 곧잘했기에 공부 잘 하면 된다는 판검사가 되고싶었다.

수학을 재미있어하다가 잘해서 항상 만점 받기에,

이과쪽 재능이 있나 하고 의사가 되고싶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집은 내 꿈을 받쳐 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물로 내가 뛰어나서, 더 열심히 해서 그런 원대한 꿈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생 시절,

급식비를 내지 못해 선생님한테 불려가던 소녀는 공부를 더 할 의지를 잃었다.


나의 목표는 큰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 생존을 위한 돈을 버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그 '뭐든'에 불법적이고, 부도덕적인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하고 그렇게 성인이 되어

그저 돈을 열심히 모으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내가 학창시절 내 주변 친척들에게 많이 듣던 말은

"여자가 공부 해서 뭐하게?"였다.

무슨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나 듣던 말 같지만 나는 90년대생이다.

심지어 나와 같은 반이던 남자아이에게서도

"여자는 남자보단 공부를 잘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겨 그 때의 시험에서 그 남자아이를 콧대를 꺾어버렸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돌이켜봐도, 학원하나 그때도 흔한 일일 학습지 하나 하지 않던 나는

초등시절 거의 만점 아니면 한 두개 틀릴정도로 꽤나 영특했으나

내 주변 어느 누구도 내게 큰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안된다고 했다.

어른들도. 그리고 내 환경도.

그래서 나는 그냥 안되는줄 알고 자랐다.



내가 엄마라서,


그래도 성인이 되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회사를 다녔고,

돈을 버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적절히 취미생활을 하며 살던 중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내 미래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된 직장의 따듯한 남편의 존재는 아이를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되어

아이를 낳게되었다.

그리고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과 매우 다르고,

거기에 육아는 변수의 연속이기 때문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큰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회사원이라는 나의 모습에 꽤 만족하며 살던 나로서는

그 안정된 삶과 열심히 일하면 꼬박꼬박 나오던 돈이 사라지고 좌절의 늪에 빠졌다.

한동안은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자서 슬퍼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쏟아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이상, 나는 아이의 보호자였고 엄마였다.

얼마 전, SNS에서 누군가 "왜 아빠가 아닌 꼭 엄마만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 글을 보았다.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 하는 나로선

그 질문은 예전의 나에게 스스로 수백번, 수천번 해왔던 질문이기에 나의 답을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

그런다고 저 엄마의 울분이 가라앉을까, 싶기도 했다.


내 생각은 이랬다.

둘 중 누군가 직장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아빠가 아니라 주로 엄마인 것은

마치 솔로몬의 판단과 같은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육 시설은 꽤나 잘 되어 있어서,

하고자하면 아이를 기관에 온전히 맡기고 엄마 아빠 모두 각자의 일을 하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기관에 대한 약간의 불신과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기관에 온전히 의지 하지 않을 땐 부모 중 한쪽이 양보를 해야하는데

그 한쪽이 대부분 엄마인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선 엄마 아빠의 능력치 차이보단

그래도 아이를 직접 낳은 쪽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더 커서, 인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하기에 아이를 그 깜깜한 시간에 홀로 기관에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나의 일, 나의 돈, 나의 경력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아이와 사랑하는 시간에 더 투자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보통은 아빠보단 엄마 쪽이 더 강하기에,

엄마들이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아닐까...


다른 가정들의 속내를 일일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랬다. 나는 나의 남편보다는 아이를 더 사랑했고

아이는 항상 나에게 더 애틋한 존재여서 내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다른 방안이 없으니 나의 모든 경력을 포기하고서라도 아이를 돌보는 것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소소하게 회사원으로 살아가던 내 기쁨은 잠시 접어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의 '엄마'의 모습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꿈을 꾼다,


어릴 적, 혹은 젊을 적 나는 어른이 되면 꿈을 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버리면 이미 정해진 인생이고 크게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알고있는 백세시대가 열린 지금,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참 길다.


매일 하루하루 바쁘고 열심히 살다가 길을 잃은 것 같던 때

한참 자기계발에 대한 강의들을 꾸역꾸역 듣다가

인생을 잘 살아남기 위해 기록을 하고 꿈을 세워,

나의 꿈에 맞는 계획을 하고 또 그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목표가 있는 삶, 꿈이 있는 삶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그래서 그 때 어른이 된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나의 꿈은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나의 모습은 어떤지 그려보았다.


나는 미래에 북적거리는 아파트보다는 조금 한적한 동네의 주택에서,

집을 가꾸고 정원을 가꾸고 작은 텃밭에서 내가 먹을 작물도 가꾸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고 싶은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을 끊임 없이 읽고

또 나의 글을 쓰고 싶다.

조금은 막연할 수 있지만, 이런 꿈을 그리고 나면 생각만해도 절로 미소지어진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한 작은 걸음으로 나는 매일 일기를 쓰며 기록을 하고,

이렇게 브런치라는 곳을 매개로 나의 글을 쓰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어서,

아직은 아이에게 답하긴 조금 어려운 꿈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의 아이도 꿈을 꾸길 바란다.

나는 내 아이의 꿈이 무엇이든 진지하게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내게 없었던 따듯한 어른이 된 나는

내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고 알려주고

또 실패를 하더라도 그마저도 꿈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경험인 것이라고 또 알려주고 싶다.

자라는 내내, 살아가는 내내 꿈꾸는 것이 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꿈이 있는 아이와 함께 꿈을 가진 내가, 그렇게 같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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