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쟁이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만' 받고싶다

by 황하루



나의 어린 시절, 어린 나는 항상 사랑이 고팠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항상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했다.

분명 따듯한 심성을 가진 부모님이였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환경 탓일까,

두 분이 서로 맞지 않아서 자주 싸웠던 탓일까,

난 매번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고,

그건 어린 동생도 돌봐야 하는 부모님으로선 당연히

나에게만 전적으로 관심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내 원망의 화살은 동생에게로 돌아갔다.

그 때는 동생이 어리다는 것 외에 부모님 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깨닫기는 못했기에

그저 동생의 존재가 싫고, 나에겐 방해물로만 여겨졌다.


실제 아직까지 기억하는 차별도 있었다.

동생은 포동한 편이고, 나는 마른 아이였는데

동생은 뭘 먹기만 해도 예쁘다, 잘 먹는다,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반면 나는 비리비리하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손아귀에 힘이 없어 색칠도 못한다며

어린 동생과 비교당했다.


가장 서운했던 것은 난 스스로 책을 많이 읽기도 하고,

공부도 꽤 잘하며 욕심도 있는 편이라 어릴 때 내내 성적이 좋아 그냥 수시로 많은 상을 받아왔다.

온갖 교과 성적상에, 종종 교내 무슨 대회의 글짓기상 미술상까지 받아서

돌이켜보면 그냥 이것저것 재능이 많았던 아이인 것 같긴하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상을 받아와서 자랑하면 "응 잘했어~"라는 대답과 함께 서랍으로 그 상이 슉 들어갔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의 박수와 함께 받아오는 상도 그냥 종이쪼가리로 느껴졌다.

동생은 공부 쪽으론 크게 잘하지 못했고 미술에는 꽤 재능이 있었는데,

엄마가 늘 동생에겐 "얜 머리가 있는데, 안 해서 그래"라는 말을 동생의 사춘기 무렵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말을 먹고 자라서 내가 꽤 클 때까지도

난 머리가 좋진 않은데 그래도 성실한 것 같다며, 스스로도 평가절하하며 커왔다.


그래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나는

공부라도 잘하면 친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게 좋아서 열심히 했고,

선생님이 치켜세워주는 게 좋아서 또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아무리 인정받더라도

어린 시절 전부였던 부모님의 관심과 칭찬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여전히 뻥 뚫린 구멍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내가 많이 자란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좋은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이런 저런 이유와 더불어 위의 이유로도 나는 아이를 둘 이상 낳아서 기를 자신이 없었다.

첫째였던 내가 아이였던 시절 내내 너무 슬펐는데, 슬프지 않게 자라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앞으로 배운다고 해도 잘 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키울 때 보니 안타깝게도 남편 역시 아이 둘을 잘 키울 재량은 없어보였다.

한 명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아이가 말이 트자마자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곤

그냥 이 아이 하나만 잘 키워야지 라는 생각을 굳혔다.


아이가 슬퍼지는 게 싫었다는 마음과 동시에,

슬퍼진 아이가 나처럼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싫었다.

지금은 부모가 세상의 전부여서 한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가

정말 사랑스럽고 고마운데,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미움 받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부모님, 나의 엄마를 내내 원망만 하고 안 보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옆에서 보면 친구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로 우리 모녀는 관계가 원만하고,

연락도, 왕래도 자주 하며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런 편안한 사이이다.

다만 현재의 관계와는 별개로 내가 육아를 하면서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 내가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니

자꾸 나의 어린 시절과 연계되어 공연히 엄마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더 어렸을 때 아이를 낳아, 요즘처럼 육아 정보가 많지 않은 시절에

그 팍팍한 생계 속에서 아이를 키운 엄마의 처지와 마음은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육아를 하면 할 수록 내 마음에 구멍을 만든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 나도 지금의 이런 이중적인 생각이 혼란스러운데,

우리아이는 나보다 더 단단하고 멋지게 자랄거라 생각하지만 아직 모자란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 아이의 마음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아이가 나처럼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를 원망하게 될 것 같고, 나는 미움 받고 싶지 않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가장 싫다,


나는 무조건 아이는 아이답게 아이처럼,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땐 철없고 멋모르게 구는 것처럼 자라면 좋겠다.


가난한 집에서 동생과 차별을 받으며 눈치란 눈치는 다 보고 자란 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하는 것도 꽤 많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았는데,

그런 내게 정말 어린 시절 내가 가엾다고 생각되는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반장선거를 하게 되었는데,

내 마음속엔 내심 반장이 되고 싶은 나와 반장이 되면 친구들이 기대 반, 우스개 소리 반으로

햄버거를 돌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부담된다는 마음의 내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반장 후보로 나를 추천했고,

나는 후보자 공약에서 나를 반장으로 뽑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부반장으로 뽑혔다.

그래서 엉엉 울며 선생님께 부반장 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울던 내 마음 속에 우리집은 햄버거를 돌릴 돈이 없단 생각이 들어 슬펐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고작 2학년, 그것도 생일이 빨라 만으로 7살밖에 안되던 아이가 본인이 하고 싶던 것보다

집에 돈이 없던 걸 더 걱정해야 했던 걸까.

나는 그 시절,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내가 하고 싶던 것보다

가정형편과 우리집 살림을 걱정하고 눈치보던 어린 시절 내가 너무 가엾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사랑해주려고 애를 쓰지만,

아이에게 물질적인 부분도 결핍을 만들어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다.

그래도 현재 내 아이는 내가 자란 환경보다 훨씬 나은 곳에서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지만, 또 많이 가진 아이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기도 하다.

물론 한도 설정 없이 무작정 모든 것을 해주는 건 안되지만 말이다.

한번씩은 내 못난 결핍이 불쑥 떠올라 다른 집의 외제차, 다른 집의 연례 행사같은 해외여행,

다른 집의 비싼 브랜드 옷 등을 비교하며 혹시 아이가 위축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이가 한번씩 다른 아이를 쳐다보며 '나도, 부러워'라는 의레 아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을 내뱉을 때

언제나 '다음에 해줄게'가 아니라, '우리 집은 저 집과 달라서 다 똑같이 할 수는 없어'라는 말을 하며

혹시 이 말에 아이가 실망한 건 아닐까 내심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부모의 눈치를 보며 뭐가 하고 싶다는 말도 못꺼내고 속으로 누르던 나와,

지금 그냥 친구들이 하는 건 다 부럽다고 생각하는 나의 아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이 아이는 그냥 아이로 자라는 중이라 아이같은 생각을 말하는 것 뿐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잠깐 다른 얘기 같은데,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노견이 된 친정에 있는 강아지는 내가 가장 힘든 20대를 보낼 때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아이로 정말 옆에 있어주는 걸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고 있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맙고 정말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 신생아 무렵에는 그냥 동물같은 아이가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자라면서 수시로, 그리고 매일매일 나를 사랑한다고 해주고 또 나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사람 중에서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순간 나도 같이 자라고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데

사랑에 있어서는 정말 매일 아이를 낳게된 내 결정을 칭찬하고 싶을 정도로,

무한한 사랑을 아이에게서 받는 중이다.


그런 아이와 사랑은 주고 받으면서도,

또 잘자라도록 지켜봐 주면서도 또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한 방법들도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

사랑하기에 사실 무한정 예뻐하기만 하고 그냥 우쭈쭈 해주고 싶은데,

또 사랑하기에 혼자 굳건한 어른이 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등을 떠밀어주고 지켜봐주며

사랑과 성장 사이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물론 나의 이 모든 가르침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를 언젠가 아이가 알아주길 바라며,

아이가 제속도대로,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나아갈 힘을 기르길 바라며,

내 사랑하는 아이가 본인이 가고 싶은 길로 나아가게 되어 우리가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

항상 서로의 마음 속에서 든든한 지지자가 되기를 바라며.



아이가 언젠가 형제가 없다고 불평하더라도,


현재 아이의 성장환경엔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가 드물고,

아이는 커가면서 친구들 사이의 관계가 막막할 때 나보다는 또래인 형제자매 관계를 원할수도 있다.

그건 당연히 아이로서 바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는 부모로서 한 명만 낳아 기르기로 한 내 선택에 의해,

아이의 형제가 단절된 것이니 그저 양해를 구할 것이다.


내 선택에 의해 너가 혼자가 된 것이니, 대신 설명을 해 줄 것이다.

나의 능력과 나의 감량이 이것 밖에 안되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널 잘 키우고 싶은 방법이 이것 밖에 떠오르지 않아

차마 한 명을 더 낳을 순 없었다고.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한 책임으로

엄마 아빠는 온전히 너의 편이 될 것이고,

네가 어른이 될 때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며,

또 우리 건강도 잘 챙겨서 오래오래 네 곁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


아이가 혼자 자란다는 것이,

언젠가 아이가 나를 원망할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때도 아이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나는 아이가 이해할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설명하고

굳건히 아이를 사랑해줌으로서 쭉 사랑받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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