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에 필요한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안고 있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었다. 백번 공감한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이루거나 원하던 뭔가를 손에 넣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대신 나를 괴롭게 하던 것들을 잠시 놓아버림으로써 편해질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독서실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두 가지 취미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스탠드를 끄고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내 책상을 훤히 밝히던 스탠드를 끄면 칠흑 같은 어둠에서 고요함이 극대화되었고, 철썩거리던 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로운 우주를 유영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음악을 다운받고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MP3에 넣어야 하다 보니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곡이 유선이어폰에서 흘러나올 일은 없었다. 나는 온전히 내 통제 아래 있는 고요한 우주 속에서 우아하게 산책하기를 즐겼다.
두 번째는 공책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힘을 빼도 된다고 조언해주고 싶지만 당시에는 수능이 학창 시절의 마지막 관문이자 던전의 출구를 지키고 있는 보스몹처럼 느껴졌기에 수능만 끝나면 많은 것이 달라져있을 것 같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공책은 항상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었고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리스트를 적었다. 총 2권의 공책에 수능 D-1까지 무려 973가지의 할 일을 참 절절하게도 써내려갔다. 자세하고 정교했지만, 꼭 대단한 건 아니었다. 야자를 하다가 보이는 신호등과 가로등을 보고는 멋진 야경을 보러 가고 싶어하기도 했고, 일상에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카페에서 여유 한잔을 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사실 할 일 리스트라기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신신당부 모음집'에 가까웠던 것 같다. 둘 중 무엇인지는 그걸 작성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도, 지금에서야 공책을 열어보는 나에게도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 과정을 즐겼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하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권리와 책임을 미래의 나에게 맡겨버렸다.
이 방법이 나에게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크게 2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는 생각을 구체화했던 것이다.
예컨대 빙수가 먹고 싶을 때는 '@@에서 파는 @@빙수 먹으러 가기.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 커피와 함께 떠먹으며 단맛과 쓴맛을 조화롭게 음미할 것.'이라고 작성만 해도 실제로 빙수를 먹고 온 것처럼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 예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그리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작성한 사람조차 강산이 변하고서야 공책을 열어볼 정도였으니.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머릿속에서 엉겨 붙어 생각이 복잡할 때는, 몸이 2개가 아니고서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나를 방해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면 안갯속에서 날 괴롭히던 생각들이 그제야 정체를 드러내는데, 대개는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날 괴롭힐 자격이 있는 대단히 중요한 것들이라면 구체화함으로써 좀 더 손쉽게 대략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정체를 알고 나면 안심하고 내가 하던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욕구의 지연이다.
적어두고 무작정 덮어두자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것들이었기에 미래의 내가 가볍게 넘길 것 같은 주제에는 '중요! 신중히 생각할 것!' 같은 당부의 말씀을 적어두기도 했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고, 가장 믿음직한 사람 또한 나였기에 일말의 의심 없이 나에게 내 욕구를 맡겨버릴 수 있었다. 지금의 내 심경을 잘 아는 사람이 현재 상황을 알아주고 나 대신 힘써준다는 생각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믿고 맡겼기에 나는 잡다한 욕구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그건 현재의 나를 내 통제 아래 두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되돌아보면 욕구의 만족을 지연시킨다기보다는 욕구 자체를 지연시켜 버리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많은 리스트들은 어떻게 되었나? 대부분 이뤄냈나?
놀랍게도 리스트 작성에 소중한 시간을 선뜻 할애한 과거의 나에 반해 나는 그동안 공책을 펴보지도 않았다. 믿고 맡겼는데, 이건 배신이 아닌가?
결론적으로는 아니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에도 대쪽 같은 내 취향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리스트를 참고하지 않고도 내가 원하던 많은 것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생각하던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가 제안했던 서명 디자인 그대로 여러 중요한 서류의 서명란에 그리고 있었고, 보고 싶어 했던 영화나 책은 대부분 지금의 취향에 영향을 미쳤다. 흥미로워하던 만년필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만년필 브랜드와 마음에 드는 잉크 조합까지 생겼다. 시간이 많은 날은 여유롭게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 한 잔 하기를 즐기고, 야경을 보러 갈 때나 별일 없는 퇴근길에서도 불꽃놀이의 낭만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학창 시절 남몰래 주력을 기울였던 일인 만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가장 고되었던 대학병원 인턴 시절, 계속 쏟아지는 업무량과 부당함에도 엑셀파일에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가며 몸이 5개가 아니고서야 안 될 것 같다 생각했던 일들도 하나의 몸으로 정리해 나갔다. 36시간 이상의 연속근무로 사리분별이 안 될 때 더욱 리스트의 효과를 톡톡히 봤던 기억이다.
사고 싶은 게 생겨서 자꾸만 인터넷 쇼핑몰과 후기를 뒤적거릴 때는 아주 구체적인 위시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러면 산만하게 나를 괴롭히던 나의 욕구를 놓아줄 수 있다. 미래의 내가 잊지 않고 나에게 사줄 수 있게끔 당부의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미 손에 넣은 것 같은 착각이 들고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사주면 된다는 생각에 차분해진다.
나중의 나에게 맡긴다고 해서 막중한 책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써둔 것들을 모두 이루려고 강박적으로 애쓸 필요도 없다.
리스트를 다시 열어보지 않고도 내가 생각하던 어른이 되어가고 있듯이, 애쓰지 않아도 거시적으로는 내가 생각하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겠지만 당장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심란해하는 나를 달래는 데 이만한 게 없다. 결국 중요한 건 현재의 내가 내 통제 아래 있다는 느낌이고,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과거의 나는 가장 믿음직한 미래의 나에게 맡겼을 뿐이고, 나의 가치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할지는 시간이 지난 뒤의 내가 다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시간이 지나서 조금 더 현명해지고 여유로워진 내가 관찰자처럼 멀리서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