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음식과 원재료가 주는 힘

소비의 사회에서

by 보리밥고봉


봄에는 달래, 냉이 같은 봄나물을 휘리릭 무쳐 먹고

쭈꾸미로 몸에 봄이 왔음을 알리고 삼겹살을 먹을 땐 꼭 미나리를 곁들이고 싶다.

여름에는 옥수수를 폭폭 쪄서 찰진 두줄 하모니카를 만들고 저녁에 모여 앉아서 수박을 갈라먹으면 좋겠다.

가을에는 사과처럼 아삭아삭한 대추를 씹어먹고

겨울에는 연말연시를 대방어와 함께하고 큰 냄비에 홍가리비를 쪄먹고 싶다.


어떤 재료가 제철인지를 알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돌아오는 계절이면 계절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며 복날, 몸보신 시즌마다 제철재료를 구하다가 적절하게 요리해먹을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비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폭식 후에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확실히 농경사회에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모습인 것 같다. 이제 식사는 생존이 아닌 기호와 소비의 영역으로 많이 넘어왔다.


바나나 한 송이를 사려고 해도 마트에 가면 비슷해 보이는 바나나도 서로 다른 브랜드 스티커를 붙이고 있고, 심지어는 덜 익은 바나나와 잘 익은 바나나를 조합해서 매일 적당히 익은 바나나를 먹을 수 있도록 기획한 상품까지 출시됐다. 과일들이 저마다 브랜드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모습은 백화점에서 로고 플레이를 하는 옷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장보기는 더 이상 설거지 같은 일이 아니다. 쇼핑이 되었다.


나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바쁘고 지쳤다는 이유로 많은 끼니를 외식이나 배달로 해결하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이때쯤부터 스스로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식사가 소비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소비자로서 가고 싶은 식당은 너무 많았고, 배달 앱에서 리뷰를 약속하고 별점을 다는 나는 영락없는 소비자였다. 유독 일이 힘들었던 날이면 퇴근하는 동시에 지체 없이 배달음식을 주문했고 최소주문금액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식은 일종의 과소비 같기도 하다. 나는 이전보다도 음식의 원재료로부터 멀어졌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완성되어 있는 요리를 그저 소비했다.






중학교 때 기술가정 수행평가로 김치볶음밥도 만들고 선반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선반은 두껍고 투박해서 크게 쓸모 있거나 인테리어에 미감을 더하지는 않았지만 내 책상에서 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밀키트를 사서 데우듯이 문구점에서 재단된 목재가 포함된 '선반 만들기' 키트를 사서 망치질하는 정도였지만, 직접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했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사실이 그 선반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던 것 같다. 도구를 직접 사용하고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은 주체의식을 심어주고 스스로 행동과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요리를 하는 것과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인간에게 꽤 중요한 일이다. 약 80만 년 전부터 우리의 조상은 불을 발견하고 불로 음식을 익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인간다워지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불을 관리하고 음식을 익히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모여 앉아 음식을 함께 먹으며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밀감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사회적인 행동이었다. 어린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마이쮸를 건넸던 경험만 떠올려도 이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죽음을 애도하던 원시인류의 의식이 현대 장례식으로 이어지고,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에서 현재의 종교로 이어지듯이, 원시인류 때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었다는 건 인간의 중요한 가치이자 욕구라는 증거이다. 도구를 직접 사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특히 요리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킨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품화된 음식을 소비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만들어진 음식을 산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해 통제받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생산과 창조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고 그저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트에 가보면 김치만 해도 다양한 상표의 제품이 냉장선반을 꽉 채우고 있고, 어떤 배추를 사용했는지, 공장에서 얼마나 자동화되었고 실제 사람의 손을 거치는 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다.


완성된 요리를 사 먹는 게 더 싸겠다는 생각이 드는 가격이지만, 밀키트도 원재료를 직접 확인하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재료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삶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중요한 본질을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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