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이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엄청난 분노에 휩싸이던 주인공이 다음날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어제까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보던 연인이 둘도 없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의 전개를 성실히 따라가지 않던 시청자는 아리송할 따름이다.
어쩌면 사랑과 증오 사이를 넘나드는 건 종이 뒤집기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미워하는 사람에게서도 매력을 찾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은 흑백논리처럼 단순히 '좋다', '싫다'로 나뉘지 않는다. 연속적인 스펙트럼보다도 복잡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 사랑의 반대편에서 나도 모르게 미운 감정이 피어오른다. 사랑한다고 해서 감정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많이 사랑하는 만큼 증오가 더 크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반대로 너무나 미웠던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의외로 조금은 안쓰러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정신과에서는 비슷한 뜻을 가진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삶은 양가감정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꽤 자주 상반된 감정으로 인해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고, 이는 어떤 관계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꼭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만은 아니다.
아빠는 딸을 정말 사랑하지만, 자신의 충고에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대드는 딸을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공부를 잘하는 단짝친구는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이지만 나보다 뛰어난 모습에 질투하기도 한다.
회사의 새로운 제안에 설레지만 이제야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 부서를 떠나는 게 두렵다.
엄마의 언어폭력에 시달려온 딸은 엄마가 원망스럽지만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
엄마는 멋지게 자란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는 아들이 나를 떠난다는 사실이 서운하다.
정신과 상담과 약물처방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지만 내가 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그만두고 싶다.
이렇게나 버거운 감정인데, 야박하게도 모든 인간은 생각보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양가감정을 접하게 되고 이를 '잘' 다뤄내야만 한다. 정신분석의 아버지이자 많은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양가감정의 시작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데, 이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간략히 말하자면 엄마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아버지로 인해 좌절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걸음마를 떼고, 대소변을 가리던 아이들이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만 3세경부터 경험하게 된다. 아이 딴에는 '내가 곧 엄마이고, 엄마가 곧 나인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 옆에서 계속 친한 척하는 저 사람은 누구지?' 하는 대혼란의 시기인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에게 알 수 없는 반감을 갖게 되는데, 그래도 아이는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존재이다.
이 시기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미운 동시에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이 양가감정을 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데, 여기에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고 공감해 주면서 아이와의 거리를 좁혀 나가면 아이는 점점 양가감정을 통합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아이는 엄마와 갈등이 있을 때도 이분법적으로 '좋은 엄마', '나쁜 엄마'로 구분하지 않고 좋지만 싫기도 한 엄마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다룰 수 있다. 이 아이는 어른도 버거워하는 양가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엄마와 아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커서 세상을 대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준다. 양가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세상은 흑백이 되어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내적인 갈등을 넘어서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에게 잘해줘서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친구는 사소한 갈등으로 상종하지도 못할 놈이 되어버린다. 너무나도 실망스럽고 배신감이 든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모두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뉴스를 볼 때면 세상에는 천하의 나쁜 놈들 뿐인 것 같다. 세상은 흑백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고, 나는 왜 항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도무지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에 존재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못된 행동을 했던 그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결핍이 있었는지 이해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안쓰럽게 여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밉기만 했던 증오의 감정 속에서 그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고, 그 감정들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어간다. 버거운 양가감정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의 깊은 곳에는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온전히 그 사람에게서 느낀 감정일까? 내가 그 사람에게서 과거에 미워했던 다른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에 더 밉고 용서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타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사랑과 증오가 얽히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자신을,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고 이것은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 그리고 성숙의 끝에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용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