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라는 폐쇄적 신앙

오카다 다카시 [심리 조작의 비밀],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by 보리밥고봉


세뇌라 하면 독재정권, 사이비 종교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심리 조작의 비밀'을 쓴 오카다 다카시에 의하면

마케팅, 대중의 투표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는 중요한 요소인 데다가

건전해 보이는 엘리트 교육, 학원, 대학병원이나 블랙 기업에서도 이런 원리가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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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다카시의 '심리 조작의 비밀'이라는 책과 사이비 종교 JMS를 다룬 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 1~3부작을 함께 봤다.


책에서는 주로 사이비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학병원이나 블랙 기업에 대해서는 살짝 운을 띄우는 정도였지만, 그가 언급한 대로 내가 일하던 대학병원과 사이비 종교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1. 지도자들의 비뚤어진 자기애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심리학을 창시한 하인즈 코헛(Heinz Kohut, 1913-1981)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어린아이가 자신을 전능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는 '과대자기(grandiose self)'이다. 이 시기 부모가 거울(self-object mirroring) 역할을 해 주면서 "넌 정말 특별해!", "너무 멋져!" 같은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다. 점차 아이는 현실적인 자기 개념을 형성하고 건강한 자기 존중감을 가져 타인의 인정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면 이 시기 자기애적 결핍을 느끼고 병리적으로 발달하는 경우 자기 과시에 집착하며 끊임없는 칭찬과 인정을 요구하는 과도한 자기애적 성격을 갖거나(과장된 자기, self-grandiosity), 반대로 열등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공허한 자기, empty self). 사이비 교주의 경우 대부분 과도한 자기애적 성격을 갖게 된 사례에 속할 것이다.

두 번째 양상은 '이상화된 부모의 이마고(Idealized parental imago)'이다. 즉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신과 같은 위대한 존재를 숭배하고 그 존재에게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은 자신의 바람을 투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채워전 자기애의 형태이다. 일그러진 자기애를 끌어안고 자기애를 평가해주지 않는 부당한 현실에 분노나 불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이상화된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는 살아가는 의미를 주고 구원이 되어준다. 이는 사이비 교주를 숭배하는 신도들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일 것이다.


독재자, 광신적인 사이비 교주는 첫 번째 양상과 같은 비뚤어진 자기애를 가지고 있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결핍과 착취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그들의 맹렬한 지지를 받는 것 외에는 자신의 가치를 찾을 방법이 없다고 볼 수 있다. JMS의 교주인 정명석은 스스로를 재림예수, 메시아라 칭하고 수많은 신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발기가 잘 되지 않는 할아버지인지라 성기 대신 손가락을 삽입하는 준강간을 하는 처지임에도 건강검진이라든가 하나님의 신부가 되라는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여신도들을 강간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아무리 비합리적인 것이라 해도 교수의 말이 절대적이다. 레지던트(전공의)들은 웬만해선 반기를 들지 않고 어떻게 교수가 그런 결론을 도출했는지 의문을 품지 않기도 한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학병원 교수직을 맡고 있는 사람 중에는 자기애적 인격의 특성이 강한 사람이 정말 많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레지던트들의 충성과 지지로 자기애가 충족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체력을 깎아먹는 노동과 그만한 대가도 받지 못하는 박봉인 환경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2. 외부와의 차단


오카다 다카시는 평범한 젊은이들을 테러범으로 변모시키고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한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채 하나의 목표를 쫓게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소규모 집단에서 사람들을 모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하고, 그 이외의 생활은 할 수 없게 외부의 정보를 가능한 한 차단하면 공동생활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소규모 집단의 규칙이나 가치관에 자기도 모르게 지배당하게 된다.


정명석이 성폭행으로 감옥에 있을 때도 JMS의 지도자들은 외부의 뉴스는 모두 거짓이며 정명석이 사람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감옥에 있는 것이라고 신도들을 교육시켰다. 교도소 안에서 정명석은 여신도들의 비키니 사진을 받아보고 마음에 드는 여성은 교도소로 면회를 오게 했는데, 정명석의 실체가 폭로된 상황에서 정명석을 면회하러 다니면서도 신도들은 정명석이 왜 감옥에 있는지 검색조차 해보지 않았다. 외부와 차단되어 집단 내의 규칙만 따른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도,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다볼 틈이 없다. 대부분은 그저 잠을 잘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병원이라는 조그만 세상에서 교수에게 인정받고, 그 작은 세계에서 출세하는 것이 둘도 없는 성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 세계의 규칙을 지키고, 교수의 명령에 따르며, 교수와 의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다. 딱히 환자의 안전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전문의 비율이 높아 거의 모두가 의대를 졸업해서 의사 면허가 생겼음에도 추가적으로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4~5년의 수련을 하는 환경에서, 수련 외에 어떤 길이 있는지에도 대부분 관심이 없다. 이는 6년간 의과대학을 다닐 때부터 교수의 말이면 무조건 따르고 외부 대학과 거의 소통하지 못한 채 선배들과 같이 하나의 목표만 쫓아온 결과이다.






3.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한다.


1984년 UN 고문방지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에 의해 수면 박탈은 비인도적이며 불법적인 방법이라고 인정되었지만 잠들지 못하게 장시간 교대로 신문하거나 밤중에 갑자기 깨워서 신문하고 고문하는 방법은 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었다. 소련의 KGB와 나치, 미국 CIA 모두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소음, 빛 등을 이용하거나 차가운 물을 뿌리고 흔들어 깨우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들었다. 북한의 수용소에서는 잠들지 못하도록 장시간 서 있게 하며 반복적인 폭언을 가했다. 더불어 중노동이나 단조로운 작업을 오래 시켜 피로를 축적시키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해서 항상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에 놓이게 한다. 친절하게 대하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심한 욕설을 퍼부어 정신적으로 소모시키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 오랜 시간 놓이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상대의 안색을 살피며 거기에 맞춰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태는 학대를 계속 받아온 아이의 상태와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지나치게 억제하고 타인의 기분을 살피면서 살아온 아이에게는 의존성 인격장애가 형성되기 쉽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서 성립된 애착 관계는 모든 대인 관계의 토대가 된다. 부모가 시도 때도 없이 욕하고 때리는 등 난폭적이거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환경이라면,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의존성 인격장애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강한 의지를 지닌 존재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가 상담을 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사이비 종교에는 보통 신도들마다 일대일로 매칭되어 상담을 해주는 선배 신도가 있다. 신도들은 선배 신도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털어놓고 판단을 의존하게 된다. JMS에는 신도들 간에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멘토 관계가 형성된다. 이 때 멘토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생활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통제자 역할을 하게 된다. JMS에서는 멘토를 통해 정명석과 연결되기 때문에 멘토를 따르는 것이 곧 정명석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멘토의 조언은 사실상 절대적이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신앙이 부족한 신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 둘 개인적인 고민들을 상담하다 보면 점점 멘토 없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의존적인 상태가 된다. 여신도들이 강간을 당하고도 참고 견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 170cm 이상의 정명석 취향의 외모와 몸매를 가진 여신도들은 '언니'라고 부르는 멘토를 통해 '총재님이 널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주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안은 채 정명석을 보러 가게 된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성추행, 성폭행을 당하고 혼란스러운 신도들은 다시 언니에게 상담한다. 그러면 언니는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며 총재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오히려 축하해준다. 언니, 즉 멘토들이 정명석에게 신도를 갖다바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멘토의 말을 믿고 따라왔던 신도는 이 또한 혼란스럽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면 처음에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에서 1년 먼저 수련을 시작한 윗년차, 혹은 의국장, 교수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보니 불가피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상투적으로 보고하는 건도 적지 않다. 새벽에 윗년차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 환자를 앞에 두고 이도저도 못하게 되어 곤란한 경우도 많다. 물론 상의를 하고 좋은 조언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나보다 1년 더 일하기 시작했다고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다. 성폭행이 당연하다는 '언니'들의 말처럼 윗년차가 아무리 바보 같은 멍청한 말을 하더라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멘토가 조언해주는 대로 따르지 않는 건 일종의 반역이다. 신앙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는 신도처럼 의국의 발전, 의학에 대한 배움, 환자에 대한 사명감에 반기를 드는 반동분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때로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의사결정과 폭언에 계속 학대 받아온 아이처럼 윗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 수술과에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수련을 받아도, 심지어는 해당 과 자격증을 딴 전문의가 되어 더 세부적인 분야의 경험을 쌓기 위해 펠로우가 되어도 배우는 것 없이 수술을 집도하는 교수의 폭언 아래 석션이나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전공의법에 의해 레지던트들이 주80시간 넘게 근무할 수 없도록 되었지만 이게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80시간이 넘어가는 경우 일한 만큼의 월급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레지던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병원에서 사는 노예들이다. 실제 일한 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시급을 받을지도 간당간당하다. 쏟아지는 의학지식과 업무로 피로, 불면, 영양 부족, 극도의 스트레스에 처하게 되면 뇌의 전달 물질은 바닥나고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서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빼앗기가 쉬워진다. 아무리 인권을 침해받고 무보수로 노동을 갈아넣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멘토 역할을 하는 윗년차도 교수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는 타직종 직원이 조금 늦게 퇴근하면 오버타임 일지를 작성하고 수당을 신청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게 이상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미 오랜 기간 고문을 당해온 전쟁포로는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당직을 서면 연속 36시간을 일하는데, 보통 36시간을 내리 일해도 일이 끝나지 않아 송장 같은 눈깔로 보수 없는 노동을 계속한다. 이렇게 평균적으로 주 2~3회 당직을 서는데, 잠들지 못하게 고문해서 강제 자백을 유도하는 북한의 수용소와 뭐가 다를까.






4.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일반적으로 왕따의 가해자인 아이는 애정이 부족한 상태이거나 다른 누군가로부터 학대당한 경험이 있다. 부모에게 속박되거나 무리하게 공부를 강요당했을 때, 방치되었을 떄, 또는 형이나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그 자신도 왕따의 가해자가 되는 일이 흔하다.


정명석에게 여신도들을 조달하던 언니들은 신도들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나? 아니다. 그 언니들도 이전에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던 사람들이다. 모두 처음으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멘토와의 상담에 따라 '총재님이 날 사랑해서 그런거야', '영적 축복을 받은 거야'라고 정당화하면 이 일을 견디기가 수월해진다. 이미 신앙에 모든 것을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던 신도가 스스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인생의 전부였던 신앙을 부정하면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버린다. 이렇게 인지부조화에 대한 합리화를 마치고 나면 새로운 신도를 정명석에게 갖다바칠 수 있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성폭행을 당해왔던 신도의 인터뷰에는 바로 옆에서 처음으로 성추행을 당하는 신도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오히려 안심시켜줬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대학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들에게 의미 없는 노동을 강요하고, 개인적인 일정에 레지던트를 비서처럼 대동하고, 폭언을 일삼는 교수들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과거에 더 끔찍하게 당했다. 지금은 사라진 백일당직으로 백일동안 퇴근하지 못했고, 지금보다 더 심한 폭언과 폭력에 시달렸을 것이다. 교수뿐이 아니다. 교수는 몇십년 전 당했던 학대를 반복하고 있지만, 1년 먼저 수련을 시작한 윗년차들은 가장 최근까지 그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신참을 제대로 괴롭힐 수 있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아무리 부당해도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 절차야. 누구나 이렇게 배웠어.'라고 합리화를 하면 조금 더 견딜만해진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선배가 되고 권력을 물려받게 되면 '나도 저렇게 버텼는데, 쟤도 당연히 참아야 해.'라고 후배에게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단톡방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후배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쌍욕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자신이 해왔던 것처럼 굳이 어려운 절차를 거치도록 복잡하게 만든다.


물론 피해자였던 사람이 누구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되고 있다면, 피해자가 '이건 부당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인지부조화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는 데에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직면의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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